<포럼>大學과 수요자가 구조조정 주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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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

대학 구조조정의 살생부(殺生簿)라 할 수 있는 2018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가 지난 23일 최종 발표됐다. 교육부는 전국의 약 340개 대학을 자율개선대학, 역량강화대학, 재정지원제한대학(I, II) 등으로 구분하고, 이들 중 자율개선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에 대해 정원 감축을 권고하거나 재정 지원을 제한하는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 재정지원제한대학 Ⅰ, Ⅱ로 묶인 20개 대학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서 일부 또는 전부 제외되고, 당장 내년도에 학자금 대출이 절반 또는 100% 제한되는 대학은 11개에 이른다.

사실, 대학 구조조정이 거론된 지는 꽤 오래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고등교육은 분명 과잉 공급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005년 83%로 정점에 이르렀던 대학진학률은 현재 69%로 줄었는데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 고졸자의 대학진학률은 30%를 약간 웃돌고, 미국은 2년제 공립대학인 지역대학(community college)을 포함해도 60%에 못 미친다. 그런데 이들 국가의 국민소득은 우리의 2배가 훨씬 넘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명백히 교육 인플레 현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우리나라의 고졸자 수는 대학 입학정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든, 책임이 어디에 있든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대학의 구조조정이다. 대학 구조조정을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보자.

우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부실 대학의 과감한 정리가 필요하다. 어찌 보면 이번 교육부 발표의 초점은 바로 부실 대학의 정리에 맞춰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실 대학에 대한 정리는 교육 수요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게 옳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대학들은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교육부가 부실 대학의 퇴출을 주도할 경우, 자칫 구조조정이 정치적 논쟁으로 호도될 수 있다.

미국처럼 부실 대학들이 냉엄하게 도태되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참전용사들에 대한 정부의 등록금 보조(G.I. Bill)와 베이비붐 덕분에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미국 대학 중 상당수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생 수가 줄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었다. 하지만 이는 정부 주도가 아닌 대학 스스로의 체질개선을 통해 이뤄졌다. 교육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주도하기보다는 대학에 대한 투명한 정보의 제공과 퇴출 대학의 학생과 교직원에 대한 재배치 등의 업무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대학의 근본적인 구조조정은 대학교육의 다양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문제 대학 몇 개를 퇴출시키는 건 구조조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번 교육부의 발표는 요란했지만 실제로 내년부터 정리되는 대학은 전체 대학의 3%도 안 된다.

이 시점에서 대학들은 그 기능과 목적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다수의 대학이 소수의 명문 대학을 모방하려는 안이한 자세라면 진정한 구조조정은 요원하다. 수백 개나 되는 대학의 역할이 똑같을 수는 없는 만큼, 대학별로 다원화되고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들은 교육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세계 정상급의 연구대학이 우리나라에 수십 개가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다수의 대학은 연구 실적의 양적 증가보다는 교육 내실화에 치중해야 한다.

결국, 진정한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의 주도로 이뤄질 때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