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詩가 찰나를 영원에 이어주는 목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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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교수 시집 ‘숨은벽’ 출간
선배 문인 향한 헌사도 드러나

“제가 아직 당신들, 생명들의 탐스러움에 눈뜨지 못함을, 그 슬픔과 아픔을 제대로 옮기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그럼에도 저의 시는 노래가, 생명을 잇는 숨결이, 찰나를 영원에 이어주는 목선이 되고 싶어 합니다.”

문학평론가이자 학자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방민호(서울대 교수·사진) 시인이 자신의 세 번째 시집 ‘숨은 벽’(서정시학)을 펴냈다. 2015년 두 번째 시집 발표 이후 틈틈이 써온 총 67편이다.

표제작은 북한산의 등반 코스 중 하나인 숨은 벽에 관한 것이다. 숨은 벽은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에 있는 가파른 절벽을 말한다. 높은 봉우리 사이에 숨어 있어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북한산 깊은 곳에 들어가면／ 바깥에서 안 보이는 숨은 벽 있다기에／ 늦가을 산속으로 들어갔어요／…／내 맘 속에 단단하고 높은 벽이／ 안개 속에 사라졌다 새로 보이듯／ 앞에 우뚝 다가서는 것이었지요／…”(‘숨은 벽’ 부분)

‘머리를 찧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던’ 젊은 날 시인의 마음속 벽을 북한산 숨은 벽에 투영해 은둔과 소멸, 빛과 어둠으로 표현했다.

이에 대해 표사를 쓴 신경림 시인은 “어쩌면 방민호 시인에게 시란 ‘숨은 벽’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숨은 벽’은 이 시인의 현실이기도 하고 좌절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하다”면서 “그러나 이 시집 속의 시들이 내용과 관계없이 즐겁고 쉽게 읽히는 것은 그는 보여주기만 할 뿐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현대문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선배 문인들을 향한 헌사도 드러나 있다. 시편 ‘박완서’에서는 “보고 싶어요 누나”를 외치고, ‘그후, 나혜석’에서는 “외로운 혼아／ 이제 고향에 편히 머물라”고 추모한다. 또 ‘매창’에서는 당시 암으로 투병 중이던 최옥정 소설가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최 작가는 지난 13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방 시인은 “시인이란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끌어안는 사람, 그 모든 당신들의 탐스러움을 노래로 옮기는 사람”이라며 “제게 시를 쓸 수 있게 해주신 모든 사람의 일들, 인연 맺은 분들, 물상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해설을 쓴 유성호(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학자이자 비평가인 저자는 창작에 열정과 적공을 부여하며 새로운 존재 전환의 과정을 부단히 치러가고 있다”면서 “이번 시집은 기억과 고백의 양축을 통해 지난날에 대한 회감(回感)으로서의 서정적 직능을 더욱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평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