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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19일(水)
태극기 ‘패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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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오늘 아침부터 너무 긴장하지 않습네까?” 2000년 6월 13일 오후 3시, 평양에서 첫 남북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일정이 너무 바듯해 힘들지 않으시냐고 건네 온 평양식 인사말이다. ‘긴장하다’는 남북이 같이 쓰는 말이지만, ‘로력이 긴장하다’고 하면 일손이 달린다는 뜻이다. 마음을 죄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는 우리의 쓰임과는 전혀 다르다.

서울 표준말과 표기는 같은데 쓰임이 다른 평양 문화어는 많다. ‘일없다’는 말도 그런 부류다. 서울에서는 소용이나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북쪽 사전은, 꺼리거나 걱정하거나 할 필요가 없거나 또는 별고없이 괜찮다, 필요 없거나 싫다고 풀이한다. 분단 70년에 북한의 일상용어만 달라진 게 아니다. 헝가리를 웽그리아라고 하다가 마쟈르라고 바꾸는 등 외국의 국가 이름 표기도 우리와 다르다. 정치적 용어는 사상과 이념이 짙게 묻어난다. 원수(怨讐)를 원쑤, 휴전일을 전승절, 샛별을 노력영웅이라고 하는 데서 느낄 수 있다. 한반도를 조선반도라고 하는 북한은 ‘김일성민족’이란 말도 만들었다.

남북 정상회담은 사용 언어가 같아 다른 정상회담과 달리 통역 없이 진행된다. 그래서 용어의 진의가 중요하다. 이에 못지않게 분위기도 살펴야 한다. 국기는 훌륭한 분위기 메이커다. 18일 세 번째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순안공항에 도착한 서울의 국빈을 맞은 평양 시민들도 그랬다. 환영객들은 국기와 깃발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들 손엔 인공기와 한반도기만 있었다. 태극기는 보이지 않았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는 태극기도, 인공기도 없었다. 연도의 환영·환송객들 손에 손에는 ‘북한 상징’인 붉은 꽃다발만 있었다.

국기는 국가의 얼굴이다. 이번 평양 환영식 때 적기(赤旗)인 인공기 옆에 태극기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적화통일의 대상일 뿐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귀국 예정인 20일, 대통령 특별기가 순안공항을 이륙하기 전 환송식을 지켜볼 일이다. 환영식 때와 마찬가지로 태극기가 또 ‘패싱’되는지…. 대한민국 대통령을 초청해 놓고 북한 ‘당국’ 차원에서 인공기를 흔들려면 태극기도 함께 흔드는 게 의전에 맞는다. 19일 김정은이 평양공동선언 때 서울 답방을 약속했지만 그땐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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