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삶을 찬가로 만드는 것이 이야기의 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원 춘천에 살고 있는 오정희 작가는 강원대 국문과 채록 설화집에서 힌트를 얻어 ‘전설’ 같은 우리의 옛이야기를 엮어냈다. 책읽는섬·ⓒ김예진 제공

- ‘오정희의 기담’ 펴낸 한국여성문학 원류 오정희 작가

전설의 고향·환상특급과 같은
기이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
12년전 글들 손보고 1편 추가
이보름의 친숙한 그림 40편도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
시대와 사상이 가깝게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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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12년 전 펴냈던 글을 손보고 새 일화를 더했어요. 옛사람들의 소박한 삶에 깃든 신화와 집단 무의식 같은 것을 봤고 막연했던 계획을 구체적으로 옮긴 겁니다.”

한국 여성문학의 원류 오정희(71) 작가가 강원대 국어국문학과의 채록 설화집을 바탕으로 쓴 ‘오정희의 기담’(책읽는섬)을 출간했다. 이야기가 쉽고 재미있어 눈 밝은 독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얻고 있다. 지난달 말 찍은 초쇄가 다 나갔고, 재쇄에 들어갔다.

책은 한국의 옛 설화 같은 이야기 8편을 한데 묶은 것이다. 앞의 7편은 2006년 출간했던 동화 ‘접동새 이야기’의 것을 가져와 어른들도 볼 수 있도록 교정해 소제목을 바꿔 단 것이고, 마지막 8편은 최근 새로 추가한 이야기다.

오 작가는 “2006년 나오긴 했으나 널리 읽히지 못한 것 같다. 그대로 두면 이야기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던 차에 고맙게도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인기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나 서양의 ‘환상특급’처럼 기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느 봄날에’는 부모를 일찍 여읜 후 남동생을 지극히 아끼며 살던 누나가 억울하게 죽은 동생을 묘약으로 되살려 내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누나는 자신을 헌신하며 동생을 죽음에서 구해내지만 안락함에 빠진 동생은 누나와의 약속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리운 내 낭군은 어디서 저 달을 보고 계신고’는 한술 더 떠 인간이 구렁이를 낳은 이야기다. 비록 동물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구렁이는 인간 형제들에게 색시를 맞이하고 싶다고 조르고 진짜 인간 여성과 결혼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허물을 벗고 인간이 돼 과거를 보러 떠나는데 과연 그는 돌아올 수 있을까.

설화에 기초한 만큼 전형적인 등장 인물이나 환경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주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선 신선함이 풍긴다. “그 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식의 해피엔딩도 배제돼 있다. 오히려 친숙해 보이는 구조 안에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되새기게 하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쉽게 읽힌다.

존재의 내면 탐구, 여성의 삶과 정체성을 형상화하는 데 앞장섰던 오 작가는 “인생은 저마다 고유하게 빚어가는 자신만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 앞서 살아간 사람들, 그들의 시대와 세상이 한결 가깝게 다가온다”며 “삶을 찬가로 만드는 것은 결국 이야기의 힘”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동양화과 출신 이보름 화가의 그림 약 40편도 책을 더욱 친숙하게 하는 데 한몫한다. 이 화가는 오 작가의 팬임을 자처하며 당초 약속보다 더 많은 컷을 보내왔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오 작가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이를 기념해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오정희 컬렉션’을 펴냈다. 당시 인터뷰에서 오 작가는 자기 검열 때문에 연재하다가 중단했던 장편 ‘목련꽃 피는 날’ 등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176쪽, 1만3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