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진 자연·이미지(Nature·Image) 연작(왼쪽·오른쪽 아래). 주태석(오른쪽 위) 교수는 자연을 더 실감 나게 그리기 위해 “빛과 그림자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노화랑 제공
정년퇴임 앞두고 개인전 여는 주태석 홍대 교수
초기 극사실주의 기찻길 천착
나무·나뭇잎·숲 그리면서 변화
똑같이 그릴수록 조화같이 돼
‘허상통한 실상 극대화’깨달아
“치밀묘사로 캔버스 채웠지만
이젠 비움·여백·공간 생각해”
노화랑서 세번째 개인전‘인연’
자연·이미지시리즈 30점 선봬
“1991년도였어요. 사설 미술학원인 화실을 운영하며 어렵게 지낼 때였어요. 노승진 노화랑 대표님이 전시를 열어주고 그림도 많이 사주셨어요. 형편이 나아지면서 화실을 접고 작업에 전념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이듬해인 1992년 39세의 나이에 홍익대 미대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주태석(64) 홍익대 미대 교수는 노화랑과의 그 같은 인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르다.
1991년 전시 이후 이번이 노화랑에서의 세 번째 전시다. 개인적으로는 1982년 첫 전시 이후 50번째 개인전이다.
노화랑은 주 교수의 개인전을 30일까지 연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1980년대부터 발표해 왔던 ‘자연·이미지’ 시리즈 작품 30여 점이 전시된다. 숲과 초원, 나뭇잎 그리고 빛과 그림자가 언뜻 극사실주의의 정교함을 연상시키지만, 한참 서서 보면 풍경에 대한 과감한 클로즈업과 생략 등을 통해 작가 내면의 서정적 감성을 듬뿍 담아낸 구상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 교수는 홍익대 미대 재학 시절부터 줄기차게 기찻길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려 왔다. 당시 주 교수의 미대 은사가 단색화 작가로 유명한 박서보, 하종현 화백이다.
“교수님들이 아마 ‘기찻길’을 소재로 사실적 풍경화만을 고집하는 저를 탐탁지 않게 보셨을 거예요. 그래도 저로선 ‘내 것 같지 않은’ 그림을 따라 그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제 길을 걸었죠.”
주 교수는 ‘기찻길’ 작품으로 1977년 대학미전 대통령상도 받았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이들이 홍익대 동문인 고영훈, 이석주, 지석철, 김강용 화백 등이다. 그즈음 미국을 중심으로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서서히 주 교수도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10년여를 기찻길을 그리며 하이퍼리얼리즘을 고집하던 그에게 변화가 나타난 것은 나무와 나뭇잎 등으로 이뤄진 숲을 그리면서부터다.
“꽃송이 하나만 해도 똑같이 그리려고 하면 할수록 ‘조화’처럼 그려지는 거예요. 결국 더 사실적인 그림을 위해서라도 ‘빛과 그림자’를 동원해 실상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허상을 통해 실상을 극대화해야 한다고나 할까요. 사실 제 그림은 빛을 그린 것입니다.”
빛 때문일까. 그의 그림은 ‘인상파’와도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 작가 노트에도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단순히 거울처럼 전사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연이라는 그 자체와 직면하는 적극적인 교감과 그 자연을 보는 독자적인 시각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내년 2월 정년퇴임 후 그는 경기 파주 심학산 아래 작업실에서 칩거하며 작품만 할 생각이다. “다 비우고 작업만 하겠다”는 그의 마음 때문인지 작품에도 또다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단 기법상에 변화가 생겼다. 사실적 묘사를 위한 피스 작업(기계에 물감을 넣고 스프레이 식으로 뿌리는 작업) 외에 거친 붓질도 병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화폭에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그동안 치밀한 사실적 묘사로 캔버스를 꽉 채운 작품을 그렸지만, 요즘은 비움과 여백 그리고 공간을 더 생각합니다. 색과 형상을 덜어내고 있어요. 대신 마음을 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전업작가로서의 새 출발을 앞둔 주 교수의 표정에 설렘이 넘친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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