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가을이 오는 소리 사랑의 소리가 들린다. 가을이 짙어져 온통 붉게 물들어갈 때 빨간 고추잠자리가 살포시 내려앉아 나를 안아준다. 2018년 작. 김영화 화백
지금 전국은 온통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형형색색입니다. 골프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홀 곳곳이 활활 불타오릅니다. 날씨도 제법 쓸쓸해져 잠깐잠깐 부는 바람에도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참 잘 왔다. 이 아름다운 골프장 가을 풍경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가 없으니 오기를 잘했다”고 동반한 골퍼가 말합니다. 앞 팀이 밀리자 캐디가 환하게 웃으면서 “커피 한잔 드릴까요?”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아! 좋지요”라고 화답합니다. 그가 따라주는 커피는 내려앉은 날씨와 조금 무거워진 바람을 타고 콧속 깊이 향기를 내립니다. 홀이 밀리는 곳에서 잠시 마시는 커피의 맛은 비할 데가 없습니다. 특히 그가 타온 커피는 일반 커피가 아닌 직접 드립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좀 특별하게 드리고 싶어서 틈틈이 바리스타 과정을 이수해 만든 커피입니다”라는 그의 설명에 커피 맛은 배가 됐습니다. “이거 손님들한테 팔아도 되겠다”는 농담을 건넸는데 캐디는 “그래서 드립커피 마련하는 걸 그만두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의아해하며 이유를 물으니 회사에서도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고 있고, 동료 캐디들도 “혼자만 튀려 한다”고 비난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시쳇말로 TMI(too much information: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정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는 우리에게 맛있는 드립커피를 선물했고 또 잊을 수 없는 가을 골프장에서의 커피 향과 추억을 선사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한마디는 이것뿐이었습니다. “내가 그린콘서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성공한 아이돌 가수 대부분은 모두가 찬성하는 이름과 곡으로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하네요. 방탄소년단도 처음 그린콘서트에 왔을 때 모두가 웃었어요. 이름이 그게 뭐냐고…. 하지만 지금은 방탄소년단 이름과 노래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있나요. 특별한 커피 마시는 분들이 얼마나 감사할까요.”
그 캐디는 “네” 하면서 조금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좋은 것에 동참하지는 못할망정 이를 시기하고 욕을 하는 것은 참 잘못된 일이 아닐까요. 남보다 먼저 일찍 일어나 커피를 갈고 드립해 신선한 커피 향을 골퍼에게 건네는 것만큼 이 가을에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늘은 아무런 행운도 없는 자를 태어나게 하지는 아니하며, 땅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를 길러내지는 않는다”라고 합니다. 그의 소중한 생각과 배려 그리고 가을 골프장에서 따라주는 커피는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가 오해받을까 두려워 원두 값도 주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묻고 싶습니다. 이 깊어지는 가을에 건네는 커피 한 잔이 그렇게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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