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도 놀라 깬다”… 여전한 ‘지진 트라우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 ‘출입 통제’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경북 포항시 흥해읍 대성아파트 E 동 옆을 한 학생이 쳐다보면서 지나가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11월 15일 규모 5.4의 지진으로 강제 퇴거 조치가 내려졌다.

포항 지진 1년… 피해 현장 다시 찾아 보니

879가구 아직 대피소등서 생활
피해 공공시설 중 21%만 복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흉물로 방치
주민 30% 빚내 새 아파트 이주

“언제 무너질지 몰라 지나다니기 무섭고 빗소리에도 지진 악몽으로 잠에서 깨곤 합니다.”

지난 10일 오후 경북 포항시 흥해읍 대성아파트 E동. ‘폐쇄’ 경고문이 나부끼고 있는 이 아파트는 벽면과 유리창 곳곳이 금이 가고 파손돼 을씨년스러웠다. 주민 안전을 위해 경찰 이동초소도 설치돼 있었지만, 경찰관은 보이지 않았다. 주민 이모(56) 씨는 “1년 전 지진 직격탄을 맞고 기울어졌으나 그대로 방치돼 흉물로 변했다”면서 “불안감에 붕괴 꿈을 꾼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바로 옆 한미장관맨션은 갈라진 벽 사이로 빗물 자국이 곳곳에서 보였다. 주민 김모(여·48) 씨는 “빗소리에도 놀라는 등 아직도 밤잠을 설친다. 150여 가구 가운데 30%는 도저히 살 수 없어 집을 그냥 둔 채 빚을 내 새 아파트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오는 15일로 규모 5.4의 포항 지진이 발생한 지 1년을 맞지만, 상흔은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 지진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 포항시는 재난심리지원센터 등을 통해 그동안 9800명을 상담·치유했다. 하지만 39명은 고위험군으로 여전히 지진 공포에 시달려 집중 관리되고 있다. 또 지진 트라우마에 경기마저 침체하면서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 2016년 말 52만2030명이던 포항의 인구는 지난 9월 기준 51만6471명으로 5559명이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시는 지진 트라우마 맞춤형 치유 캠프를 확대 운영하고 지진 트라우마 치유센터 건립 등 주민들이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묘안을 짜내고 있다.

지진으로 5만4139채의 주택이 피해를 보았으나 복구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해 879가구가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 국민임대주택, 임시 주택, 이주단지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 포항시 관계자는 “정부는 복구비로 총 643억 원을 지원했지만, 턱없이 모자라 추가 지원이 없으면 피해 주민의 집단 민원도 우려된다”면서 지난 7월 전파 900만 원에서 1300만 원, 반파 400만 원에서 650만 원으로 인상된 자연재난 복구비용 산정기준을 포항 지진 피해 주민에게 소급 적용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지진으로 공공시설도 172곳이 피해를 봤으나 복구된 곳은 21%인 36곳에 불과하다. 흥해초등학교는 지진으로 3개 건물 가운데 본관동 등 2개 건물이 파손돼 철거됐으며 2020년이 돼야 새로 건립된다. 이 때문에 이 학교 5, 6학년 학생 140여 명은 임시 컨테이너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김모(12) 군은 “친구들이 뛰어다니면 교실이 울려 깜짝 놀랄 때도 있다”고 말했다. 포항 지진 이후 내진 성능을 충족하는 건축자재 사용(건축법), 주택 50% 이상 파손 시 개축(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 국회의원들이 7건의 관련 법률 재·개정을 발의했지만 대부분 낮잠만 자고 있다. 다만, 도시 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 1건만 일부 개정돼 흥해읍 일대가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된 상태다.

포항=글·사진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