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남북관계, 단선적 시각 벗어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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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前 駐유엔 대사

지난 토요일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그동안 양국 정부가 보여준 엇박자와 혼선을 일단락시킨 것처럼 보인다. 비핵화 목표 재확인, 현 수준의 강력한 제재 유지의 중요성, 굳건한 동맹관계 재확인 등에 합의한 것은 바람직한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10월 아셈(ASEM) 정상회의 때 유럽 정상들에게 대북 제재 완화를 설파했으나 비핵화 없이 제재완화 없다는 강한 역풍을 맞고 방황했던 상황을 이번에 마무리했다고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한국을 안보리 제재 공조의 울타리에 잡아두는 한편,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중요하다는 언급을 함으로써 향후 문 대통령의 역할에 힘을 보태 주게 됐다.

그러나 김정은에게는 이번 회담이 내심 달갑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핵시설 목록 신고는 완강히 거부하면서, 그 대신 선행적 제재 완화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 대해 한동안 한국 측의 동조를 얻었다고 생각했던 김정은으로서는 몇 달 전 종전선언 논란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입장에 끌려가는 한국 측의 태도 변화 때문에 제재 완화 희망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배반감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김정은의 답방 실현 가능성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는 김정은이 답방을 남측에 대한 큰 선심으로 보느냐, 아니면 경제적 대가를 얻을 기회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군부와 외무성을 중심으로 비핵화와 답방에 대한 반대론자들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문제는, 문 대통령 귀국 후 북한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이다. 북한이 반발한다고 해서 이제 와서 다시 비핵화 추동을 위한 선제적 제재 완화 입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제는 남북관계 불씨 살리기의 단선적 시각에서 탈피해 판세를 더욱 넓게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세계 전략상 주도권 경쟁 속의 미·중 관계에 있어 드물게 전략적 이해가 합치되는 부분이다. 다만, 완전한 비핵화의 우선적 추구와 북한 정권 붕괴 방지 사이에서 양국 입장은 아직도 악마의 디테일처럼 시각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번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무역 전쟁의 일시 휴전에 합의한 것은 문 정부의 외교적 역할에 긍정적 환경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 직후부터 갑자기 김정은 답방과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외형에만 올인 하는 듯한 성급한 모습은 현명치 못하다. 그보다는 실질 문제로서 중국을 대북 공조에 더 바짝 편입시킬 수 있는 방안과 구체적 비핵화 검증 로드맵에 대한 동맹 간 긴밀한 논의가 우선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G20 회의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남이 없었음은 아쉬운 공백으로 느껴진다. 한 발 더 나가자면 강제징용에 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를 고려할 때 이번 기회에 아베 신조 총리와 비공식 대화라도 이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최근 미국의 어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을 도자기 가게에 들어가 날뛰는 황소에 비유했다. 우리로서는 지난 6월 김정은으로부터 비핵화 약속은 확실하게 받아내지 못하고 한·미 연합군사훈련만 내준 트럼프에 대한 놀람과 실망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외교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자주 냉소의 대상이 되는 요즘,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달성을 위해 강력한 제재의 유지라는 원칙과 중심을 잡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