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요즘 클래식>다큐영화서 울리는 그들의 소리… 진솔하기에 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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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크의…’ & ‘파이널리스트’

두 편의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기다린다. 청중의 마음에 가닿기 위해 내면을 다스리는 음악가들의 모습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다. 대형 픽션 영화보다 진솔한 웃음을 자아내고, 짙은 감흥을 남기는 두 작품을 소개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의 다큐멘터리 영화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사진)의 한국어 제목은 원제보다 개성 있고 예술적이다. 원제는 ‘이츠하크(itzhak)’. 이대로 소개해도 별 무리가 없지만, 한국어 제목은 영화의 주제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펄먼은 행복의 의미와 가치를 정확히 아는 예술가다. 그렇기에 그의 바이올린은 진정으로 행복한 음악을 만든다. ‘행복한 이차크의 바이올린’이었다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이 제목에 녹아있다.

사실 펄먼의 어린 시절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게토에서 생존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펄먼은 4세 때 소아마비를 앓고 평생 장애를 지닌 채 살았다. 주변 사람들은 장애 탓에 그가 음악가로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지만, 그의 반짝이는 음색과 자유로운 음악관은 동료들과 청중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래미상 15회 수상이라는 타이틀보다 더 빛나는 무대들을 펄먼은 무수히 기록했다.

크리스토퍼 누펜 감독이 1978년에 제작한 펄먼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만나볼 수 있다. 앨리슨 쉐르닉 감독은 70대 할아버지가 된 펄먼의 뉴욕 라이프를 자연스럽게 펼쳐 보인다. 야구광인 펄먼이 경기에 초청받아 유니폼을 입은 채 미국 국가를 연주하는 첫 장면부터 그가 권위나 격식이 아닌, 즐거움과 열정으로 살아가는 음악가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대인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곱씹는 한편, 레코딩 스튜디오에 장애인 화장실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고 고백하며 불편함을 못마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예술적 안목이 뛰어난 아내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는 모습은 펄먼이 ‘열의’ 그 자체의 태도로 삶을 대한다는 걸 느끼게 한다. 영화는 펄먼이 역설하는 행복의 가치를 담아내며, 그의 음악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무겁지 않게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그의 빛나는 연주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예브게니 키신·미샤 마이스키·마르타 아르헤리치 등 반가운 얼굴도 다수 출연한다.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이 펄먼의 인생을 되짚어 보였다면 1월 24일 개봉하는 브레히트 반후니커 감독의 다큐멘터리 ‘파이널리스트’는 8일간 벌어진 사건을 마치 장면처럼 포착한다.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열두 명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합숙 기간을 담았다. 170명 중 12인에 포함된 이들은 이보다 더 낯설 수 없는 환경에 처한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저택에 일주일간 머무르며, 모든 통신기기는 반납한 채 울타리 밖으로는 나갈 수 없다는 규정을 전해 듣는다. 한 번도 연주해본 적 없는 악보를 받아들고 각자 약속한 날짜까지 연습한 뒤 2000명 관객 앞에서 선보인다. 예술과 경쟁이라는 부조화한 목적과 수단을 양어깨에 짊어진 젊은 음악가들은 연주회 일정이 가까워져 올수록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가기도 하고, 조금은 체념한 듯 나름대로 적응해가며 시간을 보낸다.

카메라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는 바이올린 부문 한국인 최초 우승자인 임지영이 아닌 이지윤이다. 심리적 압박감에 괴로움을 표하던 이지윤은 결선 당일 벨기에인 심사위원장이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임지영을 불분명하게 호명하는 바람에 눈물을 터뜨리며 무대에 오르는 실수를 했다. 경연 마지막 날인 이날의 풍경을 그린 영화의 후반부는 반후니커 감독이 다른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화려한 무대 뒤의 풍경, 경연을 치르는 이들의 불안감과 정적인 카메라 워크의 묘한 어울림은 이 영화의 개성이자 장점이다.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