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톡>레바논 빈민소년의 슬픈 절규 “나를 왜 태어나게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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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버나움’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에서 태어난 소년의 지옥 같은 삶은 바라보기조차 힘겹다.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꿈은 빈곤의 진흙탕 속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마저 신이 바라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소년은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하다며 자신의 부모를 고소한다. 고소 이유는 “나를 태어나게 해서”다.

수갑을 찬 소년이 법정에 나와 판사 앞에 서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 ‘가버나움’(사진)은 소년이 겪은 비참한 상황을 따라가며 내내 먹먹한 느낌을 전한다. 치아 상태로 미루어 열두 살쯤 된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은 거리에서 과일주스를 팔고, 가게에서 배달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의 부모는 그와 정확히 몇 명인지 모를 동생들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자인의 유일한 즐거움은 바로 아래 여동생 사하르와 집 옥상에서 빈 양동이를 두드리며 노는 것이다. 하지만 초경을 숨기던 사하르가 자신이 일하는 가게 주인에게 팔리듯 시집가자 자인은 부모를 원망하며 집을 나간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놀이공원에 간 자인은 그곳에서 불법체류자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을 만나고, 그와 함께 살며 그의 한 살 난 아들 요나스를 돌본다. 어느 날 위조 체류증명서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던 라힐이 돌아오지 않자 자인은 요나스를 먹이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최악의 상황이 거듭되자 꿋꿋하게 버티던 자인은 끝내 무너지고, 그의 삶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영화 제목인 가버나움은 예수가 기적을 행했던 이스라엘의 도시 이름으로, 혼돈과 기적을 의미한다. 영화 제목처럼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년을 응원하며 따라가 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인이 삶을 이어가는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게 된다.

자인 역을 맡은 어린 배우의 힘으로 영화는 절절하게 흘러간다. 그의 구슬픈 눈동자와 연약한 몸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그의 용기와 생명력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시장에서 배달일을 하던 시리아 난민으로 그의 실제 삶은 영화보다 더 열악했다고 한다. 또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도 실제 불법체류자로, 체포 장면을 촬영한 다음날 당국에 잡혀갔다고 한다. 레바논 출신 나딘 라바키 감독은 비전문 배우들이 겪은 날것의 삶을 진솔하게 스크린에 펼치며 애틋한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며 비로소 기적의 실체가 드러난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출연 배우들의 삶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애써 참아온 눈물이 쏟아진다.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