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영 “고된 연습·불안한 속마음 가감없이 담겨 좋았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2년간 연주활동을 하다가 2017년 독일 유학을 떠나 다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정상에 올랐는데 뭘 더 공부하냐’며 말리는 분이 많았다”며 “사람을 만나면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 많은 경험을 쌓아 오랜 시간 그 경험을 풀어낼 수 있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다큐 ‘파이널리스트’ 개봉앞둔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임지영 등 한인 3명 포함
결선진출 12명의‘8일’영상화

“한국어로 속마음 말하는 장면
처음엔 삭제요청 고민했지만
저 자신 돌아볼 수 있게 해줘

우승자 혼선 빚었던 시상식도
영상 안 보다 다큐보니 이해”

지난 2015년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자가 나왔다. 이 콩쿠르를 비롯해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폴란드 쇼팽 콩쿠르 등 기악 부문 ‘빅3’ 대회에서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하던 한국 클래식계에 오랜 숙원을 풀어주는 낭보가 전해졌다. 주인공은 당시 스무 살이던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 임지영이었다.

한 달 동안 치러지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결선에 오르면 8일간 브뤼셀 인근 뮤직 샤펠에서 머물며 지정곡과 자유곡을 연습한다. 24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파이널리스트’(감독 브레히트 반후니커·사진)는 그해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12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뮤직 샤펠에서 보내는 피 말리는 시간을 따라간다. 임지영을 비롯해 이지윤, 김봄소리 등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3명이 결선에 올랐다.

임지영은 2017년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지금은 베를린에서 살며 공부와 연주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다큐 개봉을 앞두고 한국에 온 그를 만났다.

그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샤펠에 들어가며 인터뷰와 영상 촬영에 동의했지만 어떤 이유로 찍는 건지는 몰랐다”며 “신선한 느낌이 들면서도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독일에서 한국 개봉 영화 리스트를 찾아보다가 이 다큐를 발견했는데 출연자에 제 이름이 있더라고요. 샤펠에서는 연습에 집중하느라 카메라가 다가와도 잘 몰랐거든요. 처음에는 난감했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무엇보다 우승자인 제게 집중한 내용이 아니라 결선에 진출한 모든 바이올리니스트가 고된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서 좋았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다큐에는 이지윤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또 이지윤과 임지영이 샤펠 앞 마당을 걸으며 힘든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도 나온다.

“결선 연주를 하는 순서대로 하루 2명씩 샤펠에 들어가는데 저는 마지막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찍힐 시간이 적었죠. 샤펠에 들어가서 지정곡 악보를 받고 보니 연주가 불가능한 곡이더라고요. 근데 먼저 들어온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많이 불안했어요. 지윤 언니와 얘기 나누는 장면은 감독이 한국말로 말하라고 부탁해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당시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했어요. 열여섯 살에 대학에 조기 입학해 졸업반이 됐고, 바이올리니스트로 도전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관문에 이르러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어요.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고, 아무리 잘해도 우승할 가능성은 희박했거든요. 또 우승을 하더라도 그 이후에 겪을 일들이 까마득했어요. 처음 그 장면을 보고 뜨악했어요. 영화사에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생각도 했지만 그 장면을 보며 당시 제 마음을 100% 이해하게 됐고, 솔로이스트의 외로움을 이겨내며 조금의 즐거움도 찾게 된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멋진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해 콩쿠르 시상식에서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발표자가 애매한 발음으로 ‘임지영’을 불렀고, 임지영이 아닌 이지윤이 무대로 나갔다. 다큐에는 이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는 시상식 전에 연주를 마쳐서 감정이 벅차올라 있었어요. 한국에서 부모님도 오셔서 생각이 복잡했어요. 우승자 이름을 부르는 순간 언니가 나가길래 축하해줬는데 다시 들어오더니 저를 떠밀더라고요. 그제야 제가 우승했다는 걸 알았고, 지난 시간이 떠올라 울면서 무대로 나갔어요. 지윤 언니와는 정말 친한 사이인데 곤란한 상황이 돼서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그 영상을 일부러 안 봤어요. 다큐를 통해 다시 보니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상황이 그랬더라고요.”

콩쿠르 우승 후 2년간 연주 활동을 이어가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간 그는 “독일에서 공부하며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콩쿠르 우승 후 제 삶이 180도 바뀌었어요. 연주 기회가 많아졌지만 저의 발전을 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를린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작년에 거처를 옮겼고, 꼭 하고 싶은 연주는 학교 일정을 조정하며 참여하고 있어요. 욕심이 나도 학교 일정이 중요하면 포기하기도 하고요. 아직 이십 대 중반이니 배움을 더 이어가고 싶어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세요. 또 이 다큐를 통해 클래식 연주자들이 화려한 무대에서 멋진 연주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알아주셨으면 해요.”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