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깊은 사유…‘어느날 문득’ 善惡없는 生을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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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묵담채화 작가 박황재형 ‘돈오돈오’ 출간

‘돈오돈오(頓悟豚烏)는 문득 깨침에 이른 돼지와 까마귀입니다. 돈오(頓悟)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단계를 나타내는 불교 용어로, 문득, 홀연이라는 뜻의 돈(頓)은 지극히 짧은 찰나의 시간을 말합니다. 따라서 돈오란 깨달음을 위한 점진적인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박에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깨달음이란 바로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임에 대한 자각입니다.’

새로 나온 책 ‘돈오돈오’(도서출판 리좀 발행)의 한 대목이다. 저자는 강원 양양의 구룡령 산채(山寨)에서 그림과 조각, 문필 작업을 하고 있는 박황재형(오른쪽 사진) 작가. 스스로 ‘삼희삼락(三喜三樂)’을 누리고 있다는 작가는 이번 책에 우주와 예술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박황재형은 수묵담채화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화가다. 국내외 대학교수, 국선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개인·단체전을 통해 공력을 선보였다. 그림뿐 아니라 전서와 초서를 융합한 글씨체의 서예가로서도 인정을 받았다. 사진 개인전을 열기도 했고, 설악산 주변 자락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조각을 함으로써 전방위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7년 전 홀연히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구룡령으로 ‘행복한 망명’을 했다. 이후 세상과 격절한 채 홀로 작품을 만들고 사색에 몰두했다. 이번 책은 그 고갱이를 모았다. 수묵 중심의 그림, 전서와 초서를 융합한 글씨, 산채 근처에서 구한 돌들로 만든 조각 사진, 그리고 글이 있다. 각 편의 글은 짧지만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금방 읽지만 긴 여운에 잠길 수 있다.

‘우주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우주의 지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며, 우주의 본체에서 보면 천둥, 번개, 태풍, 홍수, 가뭄도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습니다.’

한편, 이번 책을 펴낸 출판사 리좀은 강원 강릉에 자리를 잡고 인문학, 전통, 민속 등에 관한 책들을 펴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박황재형 작가의 강릉고 동창이기도 한 이재복 리좀 대표는 “지역 정체성과 관련 있는 책을 펴내는 일이 힘들긴 하지만, 최소한의 비용만 충당된다면 내일도 모레도 주저 없이 기획하고 찍어 낼 것”이라고 했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