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로부터 이어져온… 한국화의 길을 다시 묻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오는 3월 31일까지 열리는 소장품전에 전시되고 있는 이응노의 ‘공주산성’. 화면을 가득 채운 거친 필선이 일제강점기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면서도 정신적으로 강한 내면을 보여준다.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 대전·충남 미술史 재조명 나선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2019 소장품’展 시작으로
이상범·이응노·장욱진·민경갑
충남출신 대가들 재평가 작업

수묵화·단색화 정체성 혼돈속
한국화란 무엇인가 질문 던져
외국에 한국화 소개위한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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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와 청전, 장욱진, 이응노 그리고 얼마 전 작고한 민경갑과 현역 이종상, 조평휘 선생에 이르기까지 대전과 충남은 한국미술사의 쟁쟁한 작가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한국미술사를 조망하면서 지역미술을 큰 흐름 속에서 평가하는 전시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지난 1월 대전시립미술관장으로 취임한 선승혜(사진) 관장이 해당 지역 출신 거장들을 중심으로 ‘한국미술사’를 새롭게 쓰고 싶다는 계획을 밝혀 시선을 모으고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충남 예산 출신이며, 청전 이상범(1897~1972)은 공주, 장욱진(1917~1990), 이응노(1904~1989), 민경갑(1933~2018)은 각각 연기와 홍성, 논산 출신이다. 현역인 이종상(81) 화백은 예산 출신이며, 대전에서 조평휘(87) 화백이 활동 중이다.

10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선 관장은 “이응노미술관과 같이 한국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를 집중해 연구하고 전시하는 미술관이 대전에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이응노뿐만 아니라 대전 충남은 한국화의 강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수많은 대가를 배출했지만, 본격적인 전시는 아직 전무한 만큼 재조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의욕 때문인지 취임 후 첫 전시인 ‘소장품전, 대전미술 다시 쓰기 1940~1960년대’(∼3월 31일) 전에서도 선 관장은 이응노의 ‘공주산성’, 장욱진의 ‘풍경’ 같은 작품을 미술애호가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새롭게 구매해 소장한 작품을 이번에 소개하는 ‘형형색색 ; 2018 신소장품’전(∼4월 14일)에서는 대전 출신 작가인 이민혁의 ‘눈 내린 후, 옛 충남도청’을 전시, 눈길을 끈다.

선 관장의 지역미술 재조명은 우리 한국미술사에서 풀어야 할 큰 숙제와 맞닿아 있어 주목받고 있다. 해방과 함께 일본풍 그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기간이 벌써 50년이 넘었건만 ‘중국화’ ‘일본화’와 달리 ‘한국화’에 대한 정체성 논의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대부분의 미술애호가들이 한국화란 지필묵으로 그린 수묵화를 이르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서 그려진 동양화를 말하는 것인지 혼동하고 있다. 그 틈새에 서구 미니멀리즘과 데이미언 허스트로 대표되는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풍 미술이 밀려들며 근대미술사는 공백으로 남겨진 채 ‘단색화’와 설치미술 등이 화단을 지배했다.

따라서 추사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대전 충남 지역 미술사의 재조명은 그 자체로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해 또다시 질문과 화두를 던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해외에 한국화를 소개하기 위한 토대 마련이란 측면에서도 의의가 크다.

“대전은 백제, 유학, 근대, 과학을 키워드로 하는 문화력이 매우 강한 도시입니다. 한국 어디서든 KTX로 2시간 이내에 이동도 가능합니다. 미술도 미술사의 전통 속에서 전문성과 능동성을 발휘하며 대전의 위상을 정립한다면 충분히 문화계의 리더로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선 관장은 서울대 미학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마쳤고,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큐레이터,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외교부 문화교류협력 과장 등을 지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와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겸임교수로 연구도 활발히 했다.

한편 대전시립미술관은 선 과장 취임 후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고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에 대해 석 달 동안의 보존처리를 마치고 재가동, 화제를 이끌었다. ‘프랙탈 거북선’은 비디오아트 거장 백남준이 1920년대부터 제작된 300대 이상의 텔레비전, 전화기, 축음기, 카메라, 토스터, 라디오, 박제거북 등으로 만든 작품이며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 당시 재생조형관에 전시됐다. ‘프랙탈(fractal)’은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을 말한다.

대전=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