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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푸드 플러스 게재 일자 : 2019년 02월 13일(水)
조·기장·수수, 거칠고 투박해도… 쌀밥 속 알알이 빛나는 ‘영양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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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보름 오곡밥에 들어가는 조(왼쪽부터)와 기장, 수수. 예쁜 빛깔로 쌀밥을 색다르게 보이게 하며, 씹히는 식감도 밥을 특별하게 변신하게 해준다. 김선규 기자 ufokim@
예쁜 빛깔·구수한 맛 입맛돋워
쌀밥에 부족한 영양성분 보충
은은하면서 순수한 맛 배어나

끈끈한 찰기 있는 ‘찰 품종’
밥이나 떡 만들 때 주로 사용
엿·술 만들땐 ‘메 품종’으로

식이섬유 많아 변비예방 탁월
혈중 콜레스테롤 낮추는 효과


새해 첫 보름달이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은 농경사회의 큰 명절이었다. 새벽부터 부럼과 귀밝이술로 부산했고 오곡밥을 넉넉하게 준비해 묵나물과 함께 여러 끼를 먹었다.

오곡밥에 들어가는 조, 기장, 수수는 모두 볏과(科) 작물이지만 벼와 달리 물을 적게 필요로 하는 밭작물이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건강하게 잘 자란다. 태양에너지를 받아 탄수화물을 만들어내는 광합성 방식이 벼와 다르다. 태양이 강하게 내리쪼이는 거친 환경에서 광합성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세포를 발달시켰다.

거칠고 투박한 듯해도 조, 기장, 수수는 밥에 섞여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한다. 예쁜 빛깔로 쌀밥을 색다르게 바꿔 입맛을 돋운다. 씹히는 식감도 밥을 특별하게 변신하게 한다. 쌀밥에 부족한 영양성분도 보완해 준다. 진하지 않은 향기에서 정직하고 가난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차지고 구수한 맛이다. 은은한 가운데 순수한 맛이 배어난다. 오래된 맛, 그리운 흔적이다.

조는 크기가 작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차조는 청차조가 가장 많이 재배돼 흔히 볼 수 있다. 크기가 작고 푸르스름한 색이 도는데 우리나라 고유의 재래종이다. 메조로는 노란색 좁쌀인 황금조 품종이 재배된다. 우리나라 재배종은 국제적으로 ‘foxtail millet’(여우꼬리 조)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 토종 조 가운데는 이미 여우를 뜻하는 방언이 쓰인 여호꼬리 차조라는 이름이 있으니 재미있다.

조, 기장, 수수를 구입할 때 ‘찰’이나 ‘차’라는 글자가 붙은 이름은 찰기가 있는 ‘찰 품종’이다. 전분이 대부분 아밀로펙틴으로 구성돼 있다. 보통 아밀로스 함량이 10% 미만이다. ‘찰 품종’은 끈끈한 찰기가 있어 밥에 넣어 먹거나 떡을 만들 때 쓴다. ‘메’ 자가 붙은 이름은 아밀로스 함량이 보통 20∼30% 정도인 것이다. ‘메 품종’은 엿을 만들거나 술을 담글 때 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재배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찰 품종’이다.

조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많았는데 오랜 기간 재배해온 만큼 품종 분화가 많았다. 조 이삭 끝이 갈라져 개나 고양이 발처럼 생긴 것도 있는데 지역에 따라 괴양이발 차조, 개발시리 조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수많은 품종이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시중에 판매하고 있는 노란색 기장은 찰기장이다. 조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닮았지만 이삭 모양은 완전히 다르다. 조 이삭은 강아지풀, 기장은 벼 이삭을 닮았다. 낟알은 조보다 조금 더 크다. 크기가 작은 조는 1000개의 무게가 2∼3g 정도지만 기장은 조금 더 커서 4∼5g 정도가 된다. 수수는 더 커서 20g이 넘는다. 수수는 줄기 끝에 열린다. 줄기에 당분이 많은 단수수는 열매가 많이 맺히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잡곡밥은 쌀밥에 밀려났다. 부드러운 질감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은 거친 질감을 지닌 잡곡을 멀리한다. 오곡밥에 들어가는 잡곡 생산과 소비도 점점 줄었다. 2010년부터 조, 수수는 기타 잡곡에 포함돼 공식적인 개별 통계에서 빠지는 설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잡곡의 장점과 유용한 기능성이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받는 식량이 됐다. 거칠고 투박해 보이기만 하는 잡곡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재배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용하는 방법도 다양해 우리 식생활 문화에 깊이 녹아 있는 작물이다. 인류가 생존을 이어가게 한 오래된 식량, 기후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건강한 작물, 지구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유익한 식물, 생산성이 높아 사료와 바이오 에너지로도 쓸 수 있는 자원이다. 강한 생명력으로 거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학적 다양성을 가졌다. 앞으로 지구가 더 더워지고 물이 부족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미래의 식량자원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인류를 살아남게 할 수 있는 식량이다.

잡곡은 논이 적고 산지가 많은 지역에서 주로 생산한다. 조, 기장, 수수 농사는 지력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이어짓기를 피하고 지력을 보완하게 하는 콩과 작물을 연작했다. 5∼6월에 파종하고 9∼10월이면 수확했다. 조를 심고 보리나 밀 같은 겨울 작물을 심고 다시 콩을 심어 지력을 살리는 2년 3작의 전통적 윤작방식은 지혜롭게 농토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조, 기장, 수수는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를 예방하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춘다. 폴리페놀 등 생리활성물질에 의한 항염증효과, 식후 혈당 상승을 일으키는 효소작용을 저해해 당뇨에 유익한 효과를 갖는다. 재배 역사가 오래된 작물인 만큼 민간요법도 많았다. 미음과 죽으로 소화를 돕고 설사를 다스렸다. 좁쌀 뜨물은 땀띠에 발라 진정효과를 냈다.

잡곡을 구입할 때는 빈 껍질이나 이물질이 많은지를 본다. 잡곡을 보관할 때는 햇빛과 습기를 차단하고 온도가 낮은 곳에 둬야 한다. 밀봉해 산소 접촉도 줄여야 한다. 산패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마철 상온에 그대로 뒀다가는 곰팡이가 피고 벌레도 생길 수 있다. 페트병에 가득 담아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서 꺼내어 쓰는 것이 좋다. 빈자리가 있다면 냉동실에 보관하는 것도 좋다.

조, 기장, 수수는 쌀밥에 섞어 먹거나 오곡밥으로 먹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떡으로도 많이 먹었다. 이유식과 죽뿐만 아니라 엿의 재료로도 쓰였다. 죽을 만들어 먹으면 속이 편해 중국에서는 아침에 조죽을 많이 먹는다. 조와 기장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과자 원료로도 이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절미처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옛 추억을 부르는 수수부꾸미는 모양새는 볼품없어도 함께 나누며 즐겁게 먹는 떡이다. 수수경단은 백일상과 돌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다. 붉은 수수경단에는 아이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한국적인 내리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햇님달님’ 이야기에 등장하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는 수수밭에서 수수를 붉게 물들이며 최후를 맞이한다.

조, 기장, 수수는 발효식품 원료로도 이용됐다. 유명한 전통주인 문배주는 찰수수, 메조를 원료로 누룩을 섞어 발효한 다음 증류해 만든다. 보리와 조가 주된 작물이었던 제주도에서는 차좁쌀로 오메기떡을 만들어 보리 누룩으로 발효하는 오메기술과 이를 증류해 만든 고소리술을 생산했다. 생선 발효식품인 가자미식해에는 조밥이 들어갔는데, 조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이 산을 생산하는 미생물의 먹이가 돼 젖산과 같은 유기산이 만들어진다.

중국에서 수수는 고량주를 만드는 원료다. 마오타이(茅台), 우량예(五粮液) 등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초산발효로 식초를 만들어 음식에 활용하기도 한다. 단수수는 당분이 많아 발효하면 에탄올을 만들 수 있는 바이오 에너지 생산 원료가 된다.

신구대 식품영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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