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디지털 ‘철의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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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러시아 네티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지난 10일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추진하는 ‘인터넷 고립법안’에 반대하기 위해 모스크바 중심가에 수천 명이 모이는 등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러시아 네티즌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러시아 인터넷망이 국제사회와 완전 고립된 ‘북한 인터넷’처럼 운용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북한의 인터넷 보급률은 0.08%로 세계 최하위권이며, 이른바 북한 인터넷이란 것은 인터넷망과 차단된 북한 내부용 인트라넷이다.

‘디지털 경제국가 프로그램’이란 명칭의 이 법안은 지난달 하원에서 1차 독회를 통과했다. 아직 2차·3차 독회와 상원 표결 등이 남아 있으나, 현재 러시아 의회 구성 및 정치 상황을 보면 입법화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러시아의 인터넷서비스 사업자(ISP)들이 외국의 인터넷망 접속 차단 시에도 작동하는 자체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러시아에서 발생하는 모든 트래픽을 통신감독 기관인 로스콤나드조르가 통제하는 경로로 전송하고, 웹 트래픽의 출처를 규명하고, 금지 콘텐츠를 차단하는 네트워크 장비 설치 의무를 지게 된다.

푸틴 정부는 러시아의 국제 인터넷망 접속을 전면 차단하는 실험을 조만간 실시할 계획이다. 지난해 9월 발표된 미국의 ‘국가 사이버 전략’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라는 주장인데, 미국이 북한·러시아 등을 사이버 위험 국가로 지목하고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힌 이상, 러시아가 국제 인터넷망과 단절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러시아 자체망인 ‘루넷’을 구축해 기존 인터넷을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내 인터넷 트래픽의 95% 이상을 정부가 지정한 특정 기관을 거치도록 해 러시아와 국제 인터넷 연결고리를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철의 인터넷 장막’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때 인터넷의 발달이 소통을 자유롭게 만들어 세계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했다. 그러나 최근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디지털 공간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만약 국가가 인터넷을 완전 통제한다면 조지 오웰의 ‘1984’ 악몽이 현실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