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北 경제 파탄은 제재 아닌 정권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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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익숙해지면 무뎌지는 것들이 있다.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던 상실감과 슬픔도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고 익숙해진다. 그러려니 하면서 지내게 된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국에서 나온 소식은 북한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에 관한 것이었다. 회담 전부터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를 부분적 철거를 착수하기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아직 그 의도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을 비난하진 않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관료가 연이어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대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인식이다. 북한이 미국과 명시적 합의를 하지 않았으므로 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북한이 처음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의 충격과 그 당시의 상황을 모두 잊은 탓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중국과 러시아가 포함된 국제사회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이 북한에 제재를 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국제사회가 금지하고 있으므로 북한의 합법적 권리가 아닌데, 시간이 흐르면서 무뎌졌다.

이번에 발표된 유엔 제재위원회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2016년 가을 미국의 연구기관과 북한의 제재 위반 사실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여론의 반응은 대단했다. 북한과 불법적으로 사업을 한 중국 사업가는 체포됐고, 그 사실이 국제적 뉴스가 됐다. 이번 반응을 살펴보면 우리가 얼마나 무뎌졌는지 알 수 있다.

2016년은 북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재가 시작된 해다. 이전의 제재가 대량파괴무기(WMD)의 제조 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거래, 그리고 그에 관계된 개인 및 기관에 대한 제재였다면, 2016년에 시작된 제2270호부터의 제재는 북한 경제를 직접 조준하고 있다. 2017년 12월의 제2397호 제재에 이르러서는 북한이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여러 분야에서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민생용 수출도 그것이 제재의 효과를 낮추는 데 악용되자 기준을 한층 강화했다. 북한이 민간 부문에서 획득하는 수입과 WMD 프로그램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 구조상 민간 부문과 국가 부문이 분리되지 않고, 그 정치 구조상 국가 권력이 사적 부문의 소득을 국가 부문으로 전용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제재 보고서에서는 북한의 제재 위반 행위를 적시하면서 여러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 북한이 그냥 제재를 당하고만 있어야 하느냐, 당연한 자구책 아니냐 하는 반응이 있는 것은 단순히 이 상황에 너무도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이번 유엔 제재 보고서의 핵심은, 북한이 지속적으로 제재를 위반하고 있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지금 제재를 푸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하는 이유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하노이에서 말한 대로 지금의 제재는 북한의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북한 주민의 어려움이 제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의 어려움은, 제재 때문이 아니라 제재가 부과될 것임을 알면서도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강행한 북한 정권 때문이다. 참고로, 이번 보고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승인해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