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비핵화, 거짓말, 그리고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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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문·트럼프 워싱턴 ‘북핵’ 회담
제재 통한 완전 핵 폐기 재확인
동맹 갈등 키운 鄭·康 교체 필요

비핵화 유도용 남북경협 위험
北 자발적 비핵화 가능성 없어
비폭력적 북핵 해법은 제재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워싱턴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마무리됨에 따라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 후 한·미 간에 불거졌던 각종 논란은 일단 해소될 듯하다. 하노이 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되지 않자 워싱턴에서는 문 정부에 대한 불신이 쏟아지며 갈등이 확산되는 기류였지만, 정상 간 맞대면을 통해 북핵 폐기에 대한 공감대를 넓힌 것은 다행이다. 하노이 회담과 워싱턴 회담에서 재확인된 것은 미국의 목표는 완전한 북핵 폐기(FFVD)이고, 제재와 국제 공조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란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때 완전한 북핵 폐기 관련 구상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뒤 “아직 딜(deal)을 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며 회의장을 떠났다. 미·북 회담을 핵 폐기가 아닌 핵 군축 회담으로 몰고 가려는 김 위원장의 구상엔 관심이 없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핵 폐기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데 이어, 11일 정상회담에서도 완전한 북핵 폐기를 강조했다. 2020 대선 정국이 개막되면서 민주당은 사사건건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지만,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초당파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여기서 후퇴할 여지는 없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를 확인하고도 귀국해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다시 얘기한다면 정상회담 효과는 소멸될 것이다. 정상 간 신뢰도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이 앞으로 할 일은 자명하다. 우선, 하노이 회담 후 한·미 갈등을 자초해 ‘거짓말쟁이(liar)’라는 소리까지 들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장관을 교체해야 한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처음으로 미국에 전한 정 실장의 신뢰도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추락했고, 비핵화에 대한 무지로 외교 엇박자를 낸 강 장관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상대를 거짓말쟁이라고 할 땐 더 이상 카운터파트로 상대하지 않겠다는 뜻이 배어 있다. 그런 만큼 동맹의 대의를 견지하며 북한 문제를 다룰 인사들로 외교팀을 쇄신해야 한다.

둘째,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 ‘조기 수확론’ 등으로 포장된 남북 경협 예외론을 접어야 한다. 미국 및 국제사회가 북핵 제재를 강화하는데도 문 정부가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유도하겠다며 예외적 요구를 하는 것은 남북 공조로 국제 제재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럴 경우, 남북경협에 억지춘향식으로 동원된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에 저촉돼 제재를 당할 수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문정인 특보는 지난 3월 관훈클럽 토론회 때 이런 우려가 제기되자 “청와대에서 충분히 대책을 세우고 있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셋째, 북한의 선의에 기대 비핵화를 이루려는 순진한 발상을 접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 대신 경협과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북한이 핵을 내려놓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자발적 비핵화를 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위장된 북핵 용인론’이다. 여기엔 김 위원장이 핵으로 동족을 위협하겠는가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제재로는 핵 폐기를 이끌 수 없다는 교조적 제재 불신론이 깔려 있다. 제재 무용론자인 김연철 통일부 장관 임명을 방미 전 강행한 것도 이 같은 의지 표명으로 볼 수 있다.

제재는 북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영국이 브렉시트 논란으로 정치가 마비된 상태에서도 호위함을 한반도 주변에 파견해 북한의 불법 환적 감시 활동에 나선 것은 국제 공조를 통해 북핵 폐기를 비폭력적으로 하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보여준다. 미국은 제재로 북핵을 풀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곧바로 플랜 B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2017년 말처럼 대북 군사옵션 카드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이 비핵화 대신 경협과 제재 완화를 재차 얘기한다면,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가 되기 위해 번지점프를 하는 행위와 같다. 그것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개방적인 무역 국가인 한국엔 자살골인 동시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번영을 이끈 한·미 동맹에 대한 자해 행위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극히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