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TV세상>묻히기엔 아까운 ‘은행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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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뱅커’

MBC 수목극 ‘더 뱅커’는 은행을 배경으로 한다. 법조 드라마는 법원에서 연애하고 의료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한다고 했지만, 이 드라마는 은행에서 연애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러브라인 없는 장르드라마가 뜨는데, ‘더 뱅커’에서도 러브라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진 않는다. 지상파 드라마의 변화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꽤 모험적이다. 일반적으로 러브라인 없는 드라마는 러브라인에 필적할 만한 자극 요소를 배치하는데 그게 강력사건이다. 대표적으로 살인사건이 그런 경우여서 tvN ‘비밀의 숲’, SBS ‘열혈사제’ 등이 모두 살인사건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KBS ‘닥터 프리즈너’에는 엽기적인 형집행정지 조작이 있었다. 반면에 ‘더 뱅커’는 그런 자극적인 사건을 배치하지 않았다.

대형 은행인 대한은행의 노대호 감사(김상중 분)가 이끄는 감사팀이 은행 비리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살인, 협박이 난무하는 다른 장르드라마와 달리 화이트칼라 직장인의 일반적인 직무활동을 통해 은행의 민낯을 드러낸다. 물론 중반부에 이르러 흉기피습사건이 등장하긴 하지만 최근 드라마들에 비해선 자극성이 낮다.

작품은 은행의 잘못된 영업이 서민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며 시작됐다. 노대호 감사는 지점장 시절 은행이 시키는 대로 파생상품 영업을 했다가, 거기에 투자한 처가가 풍비박산 나는 일을 경험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중소기업들에 큰 피해를 끼쳤던 파생상품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노대호에겐 은행의 영업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

‘대출을 갚지 못해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일은 당사자에게는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청천벽력 같은 일이지만 이곳 은행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는 일상적인 업무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의 실수와 잘못으로 조금의 억울함과 상처가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바로 이것이 노대호의 신념이고,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가 은행에 바라는 정신이기도 하다. 은행은 사기업이지만 금융기관이라고 할 정도로 공공성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은행이 수익성에 치중하면서 공공적 성격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있다. 이 작품에서 노대호는 ‘은행은 금융기관’이라면서 은행의 공공적 책무성,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또, 감사의 중요성도 그린다. 감사가 정말 제대로 일할 때 얼마나 조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다.

하지만 크게 호응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자극성이 없는 설정이 문제였고, 박진감이나 위기감도 부족했다. ‘비밀의 숲’이나 ‘닥터 프리즈너’처럼 긴박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 은행과 서민의 관계를 파헤칠 것처럼 시작했지만, 중반엔 은행 내부 정치와 고위층과의 결탁이 그렇게 현실적이지 않은 형태로 그려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래도 연애 없이 은행 내부를 본격적으로 그린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 국회의원 자제 채용비리와 같은 현안 풍자가 배치된 점도 흥미롭다. 이대로 묻히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