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고용시장 밖 국민은 ‘비국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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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은 KBS와 대담하면서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公約)이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그 이유로는 고용시장 바깥의 자영업자 등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는 최저임금을 16.4%나 인상했던 2017년에도 전문가들이 수없이 지적했던 사안이다. 그다음 해인 2018년 10.9%를 인상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문 대통령은 전문가들의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올해는 아무래도 버거웠던 모양이다. 대선 공약대로 ‘2020년 1만 원’을 달성하려면 올해 19.76%(1650원)를 인상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제시한 해결 방법이 개운치 않다는 점이다. 내년에도 최저임금을 인상하긴 하되, 그 인상률은 현 상황을 고려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알아서 결정하라고 지침을 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연히, 공익위원들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급기야 같은 날, 류장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본인을 포함한 8명의 공익위원 전원이 사퇴한다고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문 대통령은 이번에도 고용시장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수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도 대담에서 인정했듯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람들은 고용시장 밖에 있는 국민이다. 여기에는 자영업자는 물론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해 보지도 못한 청년실업자, 하루가 멀다고 사업장을 전전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포함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고용시장 밖에 있는 국민에게 송구하다고 사죄하면서도 최저임금 위원들에겐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정도로 임금을 인상하라고 지침을 내린 셈이다.

각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위권이다. 이는 굳이 경영계에서 제시한 통계가 아니더라도, 최근 빈센트 코엔 OECD 국가분석실장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언급한 내용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발표문에서 한국의 2017년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51%로 OECD 평균에 근접했으며, 최근 2년간 인상분(29%)을 고려하면 OECD 상위권이라고 했다. 이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계나 경영계 측에서 제시하는 통계자료를 근거로 인상률의 적정성을 따지는 게 더는 필요 없음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다가올 2020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시장 밖에 있는 국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 문 대통령이 이날 대담에서 “지난 2∼3월 청년고용률이 아주 높아졌고, 청년실업률이 아주 낮아졌다”고 했음에도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이 지난 3월 역대 최고치인 25.1%나 됐다. 중소기업연구원도 지난해 자영업자 폐업률이 87.9%로 전년 대비 약 10%나 늘었다고 발표했다. 그 주된 원인은 규모가 영세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에 대기업과 똑같이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 최저임금 인상 문제는 대선 공약 실천이라는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청년 실업자들의 생존 문제다.

우리 헌법은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고용 증진, 중소기업 보호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고 있다. 만약 2020년에도 고용시장 밖에 있는 국민을 외면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한다면 이는 대기업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실업자와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을 희생시킨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2020년 최저임금 동결론이 설득력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