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정치의 존재 이유 허물 ‘들러리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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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 정치학

국회를 흔히 민의의 전당이라고 한다. 국회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제도 속에서 녹여 내는 역할을 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모든 사회는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갈등 없는 사회는 거짓이 지배하는 사회다. 그런데 사회적 갈등은 무한 투쟁을 유발한다. 사회에는 갈등을 둘러싼 싸움을 제어할 수 있는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와 국회가 필요하다.

국회와 정치에는 ‘싸움의 규칙’이 있어, 갈등이 무한 투쟁으로 번지지 않게 만든다. 즉, 사회적 갈등을 국회 또는 정치라는 이름의 ‘링’ 위에 올려놓고, 정치인들을 통해 대신 싸우게 하면 무한 투쟁은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번 임시국회 개원 과정을 보면, 과연 국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과정에서 타협과 양보는 아예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타협과 양보는 힘이 강한 쪽이 먼저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이번 국회 개원 과정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했는데, 시간상으로 기다릴 만큼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 속에 상대의 입장을 얼마나 역지사지(易地思之)했으며, 양보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냥 기다리기만 해선 정치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국회 개원 과정에서도 정치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일부터 시작되는 6월 임시국회가 정상적인 정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긴 무리인 듯하다. 일각에선 검찰총장·국세청장 청문회 등이 예정돼 있어 자유한국당이 이를 명분 삼아 국회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이는, 상대방은 가만히 있는데 스스로 명분을 찾아서 국회로 들어가라는 것이 된다. 한국당 입장에선 청문회도 중요하지만,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국회 복귀 명분을 주길 바랄 것이다. 과거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먼저 나서서 야당을 설득하고 막힌 정국을 뚫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당이 청문회를 하겠다며 국회로 복귀하긴 힘들 것이다. 한국당이 청문회에 참가해 여러 가지 의혹과 문제 제기를 한다 해도, 청와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명을 강행할 수 있고, 그래서 이번 청문회 역시 요식행위였음이 입증될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한국당 입장에선 건지는 건 아무것도 없이 권력의 입장과 체면만 세워주는 들러리 역할을 했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이번 국회 개원 과정이나 지난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밀어붙이는 과정을 볼 때, 현 집권 측의 정치력은 상당히 부족하다.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에 상정하는 과정에서 집권 여당과 이른바 범여권은,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정치력 부재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국회 개원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경제 청문회라는 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는지는 몰라도, 고민하는 모습과 어느 정도의 선에서 양보하는 모습은 최소한 보여줬어야 했다.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권력에 의해 운영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꽃피울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핵심은 역지사지와 상대에 대한 존중 및 양보로 요약될 수 있다. 권력이란 칼을 쥔 쪽에서 그럴 마음이 없는 경우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민주주의는 말로 되는 것도, ‘느낌’에 의해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권력에 의한 정치의 회복을 보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