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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08월 27일(火)
도플갱어 같은 세 여성… 자기 안의 ‘댈러웨이 부인’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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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디 아워스’ 속 버지니아 울프가 집필 중인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관한 생각으로 고민에 빠져 있다. 울프 역은 니콜 키드먼이 맡았다. 키드먼은 이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  1951년 로라 브라운 역의 줄리앤 무어
▲  2001년 클래리사 본 역의 메릴 스트리프.

■ 윤성은의 스크린 인물학 - ⑮ ‘디 아워스’와 버지니아 울프

1923년 작품 구상하는 울프
1951년 소설 읽는 주부 로라
2001년 뉴욕 사는 클래리사
하루 동안 겪은 일 교차 편집

울프 ‘꽃은 직접 사겠다’ 쓰고
로라, 같은문장 소리내서 읽고
클래리사, 직접 말하는 것처럼
소설 소재·주제 영상에 활용

로라·클래리사 갈등하는 모습
댈러웨이 부인의 현신 보여줘
울프, 소설과달리 극단적 선택


버지니아 울프와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굳이 함께 떠올리게 되는 것은 우리 세대 교육의 부정적인 일면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생소했던 외국 작가의 이름 하나를 각인시켜 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성인이 돼 처음 받아든 술잔 앞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라는 시구를 읊조려 보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닌가. 전후 ‘신시론’과 ‘후반기’ 등 모더니스트 그룹을 이끌었던 박인환은 만리타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작가의 죽음을 이처럼 뜨겁게 추모한다. 자신이 울프보다 훨씬 짧은 생애를 살다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모더니스트답지 않은 시의 서정성, 낭만성은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나, 노래로도 만들어졌을 만큼 우리에게 애송되는 시임에는 틀림없다.

미국의 저명한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는 첫 장편으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라는 희곡을 발표한 바 있다. 196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 작품에는 버지니아 울프가 아니라 환상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미국인 부부가 등장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고발하는 이 연극의 제목에서 버지니아 울프란 곧 현실이요, 환각에서 벗어난 삶을 의미한다. 이렇듯 예술가들이 울프의 이름을 작품에 차용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울프는 20세기 초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당대의 지성이자 페미니스트로서 가장 먼저 호명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녀는 열세 살에 어머니를 잃고 신경증을 앓기 시작해 평생 환청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세상에 작별을 고했던 불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중들에게는 이러한 울프의 인생사가 그녀의 작품들보다 더 잘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울프는 자신의 병리적 증세와 경험을 일기에 꼼꼼히 기록하고 작품에 반영시켰던 작가로, 그녀의 소설에는 죽음에 대한 철학,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짙게 서려 있다. 의식의 흐름 대로 기록된 난해한 서사는 비평가들에게 종종 공격받았던 것처럼 허영이나 허세라기보다 엉켜 버린 그녀의 머릿속 그대로였을 것이다.

▲  소설 ‘댈러웨이 부인’.
데뷔작 ‘빌리 엘리어트’(2002)부터 놀라울 만큼 숙성된 연출력을 보여준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두 번째 작품 ‘디 아워스’(2002)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스크린으로 소환한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울프가 자살하는 1941년 3월 28일을 먼저 보여준 뒤, 각기 다른 공간과 시간에 살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이 하루 동안 겪는 일을 교차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1923년 영국 리치먼드에서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가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을 구상 중이고, 195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파트에서는 그 책을 읽고 있는 중산층 주부, ‘로라’(줄리앤 무어)가 등장한다. 2001년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클래리사’(메릴 스트리프)는 소설 속 댈러웨이 부인처럼 아침 일찍부터 파티를 준비 중이다. ‘디 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어느 하루와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작품을 조명하는 동시에 수십 년의 세월을 통과하며 그 시간과 연결된 하루를 살게 되는 이들에 대해 서술한다. 따라서 첫 10분은 이들의 연관성을 인식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달드리는 철저히 계산된 촬영과 편집, 음악을 통해 환상적인 시퀀스를 만들어낸다.

우선, 영화는 주인공들의 남편(들)과 동거인이 공히 아침 일찍 집으로 들어온다는 설정으로 시작함으로써 세 사람 각자의 시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전달한다. 침대에 누워 있던 주인공들이 괘종시계 및 탁상시계의 알람 등을 들으며 잠을 깨고, 세수하고, 일과를 시작하는 데까지 쇼트들은 긴밀하게 작동해 마치 세 사람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는 도플갱어, 혹은 작가와 그가 창조하고 있는 소설 속 인물의 관계로 느껴지도록 만든다. 가령, 울프가 세수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 다음 쇼트에서는 세수하던 클래리사가 고개를 드는 식이다. 이 중 유효한 대사 없이 뮤직비디오처럼 진행되는 약 6분간의 영상에서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세 사람의 물리적, 정서적 연관성에 대한 확신과 함께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음악이 사라진 11분경, 짧은 쇼트들로 세 개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마지막 부분은 울프가 방금 떠올린 소설의 첫 문장, “꽃은 직접 사겠노라고 댈러웨이 부인은 말했다”를 중얼거리고, 그 책을 읽고 있는 로라가 똑같은 구절을 소리 내 읽은 후, 클래리사가 동거인에게 “샐리, 꽃은 내가 직접 사야겠어”라고 말하는 쇼트로 마무리된다. 마이클 커닝햄의 동명원작이 소설이라는 매체적 한계로 인해 할 수 없었던 것을 스티븐 달드리의 ‘디 아워스’는 독창적인 영화 언어로 성취해내고 있다. 고백하건대, 이 작품처럼 초반 10분만으로 이미 내 인생의 영화가 돼버린 작품은 거의 없었다. 원작(소설)보다 나은 영화가 없다는 속설을 부정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작품이다.

‘디 아워스’는 일반적인 전기 영화와 달리 버지니아 울프의 삶은 물론이요, ‘댈러웨이 부인’의 소재 및 주제를 종횡으로 활용해 세 여성을 엮어놓는다.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로라와 클래리사는 각자 시대를 대변하는 주체이면서 버지니아 울프와 ‘댈러웨이 부인’의 이해를 돕는 기능까지 하는 인물들이다. 로라는 소설을 읽는 동안 행복한 주부라는 자신의 외피를 의심하게 되는 댈러웨이 부인의 첫 번째 현신이다. 두 번째 현신인 클래리사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옛 애인이자 저명한 작가인 리처드에게 아예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녀가 리처드의 캐루더상 수상 축하 파티를 준비하면서 과거의 편린들을 떠올리며 방황하는 모습은 댈러웨이의 부인과 거의 일치한다.

물론, 영화의 중심에는 ‘댈러웨이 부인’ 집필 당시의 울프가 있다. 실제로 울프 부부가 리치먼드로 이사한 것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이었고, 이는 울프가 수면제 백 알을 먹고 두 번째 자살을 시도한 이듬해이기도 하다. 1922년, 울프는 심장병과 결핵 진단을 받게 되는데, 의사들은 런던이 그녀의 병에 좋지 않다며 계속 리치먼드에서 요양할 것을 권유한다. 영화는 댈러웨이 부인처럼 런던 산책을 즐겼던 울프가 이곳에서의 생활을 얼마나 갑갑해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울프는 자신이 자유를 잃고 감금돼 있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전쟁 트라우마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셉티머스’나 ‘디 아워스’에서 에이즈 환자 ‘리처드’(에드 해리스)는 이러한 울프의 불만을 대변한다. 특히, 셉티머스는 환자 개인의 의향과 관계없이 의사들에 의해 요양원행이 결정되는 사회 제도에 반감을 드러내는 캐릭터로, 결국 자살을 실행한다는 점에 있어 울프와 더 많이 겹쳐진다. 잘 자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새로운 작품에 골몰하는 울프의 모습은 여느 예술가들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거의 한평생을 따라다닌 병의 무게만큼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니콜 키드먼은 쇠약함과 강인함, 까칠함과 부드러움, 불안과 공포가 공존하는 버지니아 울프를 적확히 체화해냄으로써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데 성공한다.

드물게도, 울프는 자신의 병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죽기 전날까지 써내려간 그녀의 일기에는 자신의 병세가 세세하게 쓰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죽음을 택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허망한가. 한 남자의 자살 소식을 듣고 잠시 발코니 앞을 서성였던 댈러웨이 부인이 다시 현실로 복귀하는 소설과 달리, 그래서 희미하게나마 삶의 가치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그녀는 영영 우즈강에 몸을 맡긴다. 남편 레너드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울프는 ‘한 자도 쓸 수 없고, 한 줄도 읽을 수 없다’고 말한다. 글이 삶의 전부였던 그녀에게 이 상태는 이미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종교적, 윤리적인 관점과는 별개로 그것이 울프 자신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타자가 고통을 재단하려는 시도는 대개 폭력으로 끝나기 마련이므로.

‘댈러웨이 부인’은 원래 ‘디 아워스’라는 가제에서 출발했다. 커닝햄의 소설 제목이 ‘디 아워스’인 것은 세 여성 사이에 놓인 수십 년의 시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댈러웨이 부인’의 원제가 그것이라는 이유가 더 크다. 과거, 국내에는 이 책이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중 ‘The Years’도 ‘세월’로 출간된 경우가 있으므로, ‘댈러웨이 부인’을 암시하기 위해서는 ‘디 아워스’가 더 좋은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울프가 존재하는 시점에서는 ‘디 아워스’가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며 자기 안의 댈러웨이 부인을 발견하는 이들에게도 이 제목은 유의미하다. 울프의 시간은 우즈강에서 멈췄지만, 그녀의 작품은 매초 매분 시간을 잠식하며 더 크고 새로운 생명력으로 21세기의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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