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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병종의 시화기행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07일(木)
철없는 소년처럼… ‘사랑의 사고’를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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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적인, 너무나 뉴욕적인 우디 앨런의 농담과 진실사이

맨해튼
젊음으로 넘실대는 그 거리를 가로지르며
페인트 통 들고
웬 구부정한 노인 하나 걸어간다.
나의 적(敵)은 시간일 뿐이야, 중얼거리며
청춘의 물결을
연어처럼 교묘히 비키고
거슬러 오르며
그렇게 걸어간다.
청춘?
사실 너희들에게 그걸 통째로 넘겨주긴 아깝다구
계속 중얼거리며
알랑가몰라 내 지나간 옛 사랑이 이 42번가의 코너를 돌 때
딱 이만큼에서 우연처럼 만나게 되어있다구.
중얼거리며
마침내 우중충한 도시를
색칠해가기 시작한다.
부서지기 쉬운 게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사랑은 힘이 센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그렇게 색칠해 간다.
석양이 될 때까지
그렇게 사랑의 이야기로 색칠해 가다가
이번에 들들들들. 낡은 영사기를 돌려 그 색칠한 도시를
이야기로 만들어 보여준다.
청춘이라고 했나?
그것을 너희들에게 통째로 넘겨주긴 아깝다니까.
내 사랑이야기를 들어봐.
이 거리를 떠나간 연인을 소환하고
흘러간 이름들은 초혼(招魂)하여
하나씩 불러낸다.
예술의 벨에포크, 그 시대의 파리를 오마주하며
마레지구의 한 허름한 카페로
헤밍웨이, 피카소, 랭보, 피츠제럴드를 불러낸다.
바보들아
사랑도 예술도 70쯤 돼야
그 경계가 보인다구.
아스라하고 푸르스름하고 보랏빛인 그 경계, 신비하잖아
80이면 더 좋지.
더 아스라하고 더 몽롱해질 테니까.
그러니
책장을 넘기듯
내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를 들어봐.
그것은 청춘의 불꽃이 아니고
일생에 걸쳐 일어나는 사건이야
조용히 오래 타오르는 불길이라고.
과거와 현재, 우연과 농담을 섞어
내놓는 내 사랑의 레시피를 맛보기 전에는
함부로 사랑을 말하지 말라고
그것도 뉴욕식 사랑, 영화 같은 사랑을.


■ ⑧ 우디 앨런 영화속 뉴욕

“이봐, 사랑도 예술도
70살쯤 돼야 보인다네”
말하는 것처럼
청춘보다 더 청춘스럽게
도시에 색깔 입혀

블록버스터 홍수속에서
한땀 한땀 이야기 엮어
‘뉴욕식 사랑’ 창조


극장과 영화관의 거리 브로드웨이를 걷다 보면 뉴욕적인, 너무나 뉴욕적인 한 노인과 그가 만든 영화가 생각난다. 아니 숫제 그의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의 영화에 뉴욕이 하도 많이 나와서 현실과 영화가 교차되는 까닭이리라.

우디 앨런, 질기게도 오래가는 영화의 장인(匠人). 문득 신문의 부고란 같은 것을 보며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지 싶지만,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 앨런은 계속 신작을 만들어낸다. 그것도 새로 색칠한 청춘과 사랑이야기만을 엮어서, 게다가 가끔은 생뚱맞게 자기가 쓴 대본에 스스로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하며 옛사랑도 만나고 진지하게 인생을 이야기하다가 사라진다. 심지어 오래전 그 남성성이 탈각돼 버린 것 같건만 엉뚱한 연사(戀事)를 일으켜 세상을 놀라게 한다.

‘거봐 내가 뭐랬어 사랑은 어느 한때의 불꽃이 아니라 일생에 걸쳐 일어나는 사건이고 불길이라니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랑 밖에 난 모른다는 식이다. 스스로 부도덕 사전에 등재될만한, 영화 아닌 현실 속 사건을 만들어 내며, 그는 그렇게 영화와 현실 사이를 부지런히 들락거린다. 어찌 보면 노인인데 어찌 보면 철딱서니 없이 사고 치는 소년처럼, 그렇게 끊임없이 들락거린다.

문제는 그가 만든 영화가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심심한 듯 짭조름하고 무덤덤한 듯 파고들어 온다.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쏟아 놓고 끼어들고 토라지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후회하고 만나고 다시 헤어지고 한숨짓고 다시 사랑하며, 전화번호부 두께의 책처럼 사랑이야기를 쏟아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그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자칫 신파조로 흘러갈 듯한 경계에서 쿨하고 시크하게 이야기를 뒤집어 맛깔스러운 요리처럼 내놓는다.

앨런 영화의 중독성은 바로 그 특유의 요리 레시피에 있다. 언젠가 먹어본 듯한 새콤달콤하면서도 시크한 요리. 배의 포만감보다 혀의 미각을 섬기는 듯한 그만의 방법에 있다. 또 하나는 특유의 문학성. 마치 잘 쓴 단편소설집 한 권을 읽는 듯한 느낌을 영상을 통해 전해주는 것이다. 독특한 시각의 문자화가 이뤄지는 까닭에 지루할 틈이 없다. 세상이, 아니 뉴욕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는 가끔 영사기를 거꾸로 돌리는 플래시백 기법을 즐겨 쓰며 파리, 로마, 베네치아처럼 시간이 보다 느리게 흐르는 성싶은 도시를 찾아서 노마드처럼 옮겨 다니며, 그러나 철저하게 미국풍, 뉴욕식 사랑 영화를 만들어낸다. 뉴욕식 레디메이드에 유럽식 손맛을 낸다. 그리하여 심각하지 않으면서 무겁고 깃털처럼 가벼우면서 찔끔 눈물도 한 방울 흘리게 하는 그만의 스타일로 만들어 낸다.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의 홍수 속에서 신기료장수 노인처럼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며 사랑이야기를 엮어내는 이 영화 장인. 도대체 도시를 사랑으로 색칠해가는 앨런 스타일의 사랑이야기는 언제 그 막을 내릴 것인가. 그의 영화에 빠져들다 보면 문득 감독이 삼사십대의 푸르디푸른 청춘의 나이인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 버전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야, 사랑이고 말고, 오직 사랑, 사랑뿐이라니까. ‘사랑은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며 사랑은 모든 것의 답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의 사랑이야기. 아직도 이 도시 어디선가에서 시간의 물레를 자아올리듯 과거와 현재, 우연과 인연을 섞어 퍼즐처럼 그렇게 사랑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노인이 있어, 어떤 노래의 제목처럼 다행이다. 아직 그런 감독이 있고 그런 영화가 있어서 다행이고 말고다. 이 번쩍거리고 흘러가는 뉴욕에서 시간의 이삭을 줍는 그런 노인이라니. 다만 이제는 부디 사랑과 관련한 사고만 치지 말기를. 우리네 인생도 사고 치기에 너무 늦은 나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거나 스스로 즐기듯 논란과 비난의 복판으로 걸어 들어가곤 하는 우디 앨런식 영화는 아직도 조용히 진행 중이다.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Woody Allen
로맨스 코미디의 匠人… 파행적 사생활로 논란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다양한 형식의 영화기법으로 그만의 로맨스 코미디풍 영화를 만들어낸 수공업적 장인(匠人)이었다. 감독이 되기 전 카바레에서 스스로 쓴 대본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기도 하며 독특한 현장 감각을 익히게 된다. 돈을 주제로 한 ‘돈을 갖고 튀어라’(1969년), 정치풍자 영화인 ‘바나나 공화국’(1971년), 철저한 뉴요커인 그가 뉴욕의 자화상을 그려낸 ‘맨해튼’(1979년)으로 이른바 가벼움과 진지함, 로맨스와 코미디를 섞은 이른바 우디 앨런 스타일을 굳히게 된다. 이후 뮤지컬적인 요소를 도입한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everyone says I love you·1997년)’와 끝없이 진실과 농담 사이를 오가는 ‘해리 파괴하기’(1997년), 파리 예술의 벨에포크 시대를 예찬한 ‘미드나잇 인 파리’(2011년) 등을 내놓으며 전방위 현역 영화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내 미아 패로와의 사이에 입양한 한국계 딸인 ‘순이’와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는 등 영화 외적인 파행을 보이기도 했고 그때마다 논란과 비난의 와중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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