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광양회’
야심 숨기고 계파없이 자기관리
권력 잡은 뒤엔 절대권력화 착수
- ‘무소불위’
중화민족 부흥·공산당 영도 무기
반부패 투쟁으로 2인자 허락 안해
- ‘내우외환’
일국양제 독주… 홍콩 등 극렬 반발
섣부른 패권선언… 美 견제에 직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전후 리더십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경청하는 스타일의 통합·조정형 리더십은 권력을 장악한 이후 돌변해 전례 없는 ‘패권형 리더십’으로 바뀌었다. 시 주석은 중국이 처한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중궈멍(中國夢)’ 실현과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공산당의 전면적 영도를 무기로 내세웠다. 중국이 전통적으로 구축해온 사전 후계구도 가시화 작업도 그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기약 없이 미뤘다. 사실상 1인 천하다. 전 분야에 걸쳐 물불 안 가리고 진행되는 ‘시진핑의 굴기(굴起) 프로젝트’는 거꾸로 전 세계 지도자들의 경계심리를 자극했다. 그가 뚫고 나가야 할 과제가 만만찮은 이유다.
◇절대권력의 리더십으로 돌변 = 그는 상하이(上海)시 당 서기였던 2007년 10월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서열 6위 상무위원에 올라 차기 지도자로 확정됐다. 그는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아들로, 태자당(혁명 원로 그룹의 자제들)이지만 계파색이 약해 양대 계파인 상하이방과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의 ‘비토’가 없었다. 상하이방의 ‘오너’이자 2002년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나 당시 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를 정점으로 한 공청단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는 시 주석이 ‘통합·조정형’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는 평판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후덕해 보이는 외모에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2000년 한 잡지 인터뷰에서 한 고조 유방과 촉한 유비의 덕과 화합력을 극찬하며 “그들은 얼핏 보면 무능해 보이지만 유능한 인재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능력이 뛰어나 지도자로 추대됐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인화 단결’을 최우선 덕목으로 여겼다. 실제로 1982년 말단 지방 관료부터 상하이시 서기까지 25년간 그의 정치 이력에 누구와 갈등을 빚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권력을 잡은 뒤 그의 리더십은 주변의 도전을 허락하지 않는 강력한 패권형 리더십으로 바뀌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공산당의 고질병이었던 반부패 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해 인민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속내는 대규모 정적 숙청 과정이었다. 집권 1기(2013~2017년) 동안 ‘파리(하위 관료)’는 물론 ‘호랑이(고위 관료)’들까지 추풍낙엽처럼 스러졌다. 군부 내 장쩌민 인맥과 후진타오 비서실장 출신인 링지화(令計劃) 전 중앙판공청 주임, 상무위원 출신의 상하이방 저우융캉(周永康) 등 계파를 가리지 않았다. 숙청된 자리에는 자신의 부하인 ‘시자쥔(習家軍)’으로 채웠다. 이런 방식으로 시 주석은 당·정·군을 완전히 장악해 들어갔다. 시 주석의 방침과 노선, 정책 등을 비판하거나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이 점차 사라졌다. 온라인 통제도 강화했다. 최고 지도부나 당에 비우호적인 여론은 숨 쉴 공간이 없어졌다. 집권 1기 동안 ‘시진핑 1인 체제’의 기반이 완성된 셈이다.
◇어릴 적부터 품어 온 야심 = 시 주석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표변한 것 같지만, 집권 전 그의 행보에서 충분히 예견이 가능했다. 그는 야심을 숨기고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필화 사건으로 숙청을 당하면서 문화대혁명(1966~1976년) 당시 농촌으로 하방(下放)돼 7년간 힘든 생활을 했다. 공농병 장학생으로 뒤늦게 명문 칭화(淸華)대를 졸업했고, 복권된 아버지 덕에 국방부장 비서라는 편한 자리를 맡았다. 그런 그가 돌연 험지인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 서기 자리를 스스로 선택했다. 말단 관리부터 행정 경험을 쌓아 올라가자는 정치적 포부 때문이었다. ‘위키리크스’는 시진핑 친구 발언을 인용해 “그는 청년기 때부터 이례적으로 야심이 컸고, 자신만만했다. 또한 집중력이 뛰어났고, 상을 타는 데 열중했다”고 소개했다. 상하이시 서기 취임 뒤 시에서 마련한 화려한 사저를 보고는 당 원로들의 요양원으로 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자신의 권력의지를 감추고 겸손하고 절제하는 자세로 실력을 배양하는 ‘도광양회’ ‘외유내강’형 스타일이었다. 시 주석의 멘토였던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그에 대해 “강인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1인 독주를 지향한 시 주석은 장쩌민·후진타오를 넘어 공산혁명과 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毛澤東)급 반열에 오르기 위해 덩샤오핑(鄧小平)의 유산을 부정했다. 덩이 마오 시절의 ‘1인 독재’ 회귀를 막기 위해 도입한 집단지도체제와 당정 분리, 격대지정(현 지도자가 한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 지도자를 미리 지정하는 것), 국가주석 임기제(10년)를 차례대로 허물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당장(당헌)과 헌법에 삽입하고,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때는 국가주석 3연임 금지 규정을 없애는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의 장애물을 제거했다. 정상적인 집권 기간인 2022년까지 3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6세대’ 후계자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마오 시절의 ‘인치(人治)’까지는 아니지만 마오만큼의 강력한 1인 체제를 구축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중궈멍과 공산당 영도가 무기 = 시 주석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정당화하기 위해 두 가지를 내세운다. 집권 초부터 주장했던 자신의 장기 비전인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궈멍’ 실현과 이를 위한 공산당의 전면적 영도가 그것이다. 2049년 중국 건국 100주년 때까지 초강대국 미국을 따라잡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자는 목표가 중궈멍이다. 시 주석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100년 동안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치욕의 역사’를 극복하고 세계 역사 무대의 주역 시절로 되돌아가자(復興)는 민족주의, 애국주의에 근거한 구호를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부유하고 강하고 존중받는 중국이 되도록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빈부 격차 확대와 사회 통제 강화로 대중의 불만이 커지고 물질 만능주의 확대로 공산당의 이념과 통치 정당성이 흔들리자 민족주의라는 ‘깃발’로 대중을 유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민족 부흥의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중국 공산당이 전면에 나서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가 바로 ‘공산당 영도 사상’이다. 특히 시 주석은 소련의 실패 사례에서 공산당 영도 강화의 근거를 찾는다. 그는 “소련 공산당은 경제를 개혁하기 전에 공산당의 사회 통제를 완화했고, 당의 부패와 당에 대한 군의 충성심 부족을 방치했다”며 “그래서 무장해제된 당은 적들의 체제 전복에 아무도 맞서 싸우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산당의 영도력이 튼튼하지 못해 소련이 망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시 주석의 인식이 ‘당이 일체를 영도한다’는 마오 시절을 풍미한 구호를 지난해 헌법 개정 때 다시 집어넣게 된 배경이다. 지난 10월 말 열린 제19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는 국가 거버넌스(통치·治理) 체계와 거버넌스 능력의 현대화 추진을 핵심 주제로 내세웠다. 최진백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 교수는 최근 ‘중국 공산당 제19기 4중전회와 미·중 관계 전망’ 보고서에서 “이번 결정은 당 중앙이 통일적 영도를 이끌어가고, 그러한 당 중앙은 시진핑에 복종하는 시진핑의 절대권력을 의미한다”며 “중국이 결국 장래에 신권위주의 체제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거센 도전 자초 = 시 주석은 강력한 리더십의 이유로 대내외 도전을 들지만, 이는 거꾸로 자초했다는 평가다. 권력 집중화 자체가 리더십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밍싱페이 미국 클레어몬트 매케나대 교수는 최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게재한 기고에서 “시 주석이 강력한 권력 장악에도 불구하고 대내외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이유는 권력 집중화 자체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측근들이 시 주석의 견해와 어긋나는 정보는 거르고 입맛에 맞는 정보만 선별해 보고하는 데다 강력한 권위를 가진 지도자의 무오류성 이미지 때문에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정책을 수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장기화하고 있는 홍콩의 반중국 시위 사태와 신장(新疆)위구르·티베트자치구 등에서의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고조, 내년 1월 11일 대만의 독립 성향 지도자인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높아진 재선 가능성 등 내우외환으로 원심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실제 버락 오바마 미 정부 시절부터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가 강해졌지만, 시 주석은 중궈멍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미·중 갈등이 격화됐다. 홍콩과 대만 사태 등도 시 주석이 무리하게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밀어붙이다가 내부 반발에 직면한 측면이 크다. 이런 이유로 중국이 내년에 대내외 위기가 가중되면서 ‘중진국 함정(중진국에 접어든 국가가 선진국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하는 현상)’과 ‘투키디데스 함정(기존 패권국에 신흥 패권국이 도전하면서 전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 이론)’에 동시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안팎에서 제기된다.
■ 시진핑의 인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혁명 원로이자 부총리를 지낸 시중쉰(習仲勳)의 아들로 ‘태자당’의 일원이지만 이들과는 거리를 뒀다. 그는 지방 관료부터 시작해 성(省)급 서기에 오르는 20년 이상의 관료 생활 동안 업무에서 호흡을 맞추면서 능력과 충성심이 검증된 인사를 요직에 앉히고 있다. 이른바 시 주석의 사람들을 뜻하는 ‘시자쥔(習家軍)’이 핵심 인맥이다. 이 밖에 개인적 인연으로 알게 돼 능력을 눈여겨 둔 인사나 학맥으로 연결된 인사도 일부 중용하고 있다.
나이: 66
학력: 칭화(淸華)대 화학공정과 기본유기합성 전공, 칭화대 마르크스주의 이론 및 사상 정치교육학 석사, 법학 박사
이력: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 비서, 허베이성 정딩현 서기,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 닝더·푸저우시 서기, 푸젠성 부서기·성장, 저장성 서기, 상하이시 서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왕치산 국가부주석, 왕후닝 상무위원, 류허 부총리, 천민얼 충칭시 서기, 리창 상하이시 서기
왕치산 국가부주석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의 사위인 왕치산(王岐山·71) 국가부주석은 시 주석과 같은 태자당 출신으로, 196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 당시 같은 지역에서 하방 생활을 하면서 교류했다. 시 주석 취임과 동시에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로 반부패 사정을 총지휘해 ‘시진핑의 오른팔’로 불렸다. 2017년 10월 19차 당 대회 때 물러났으나 지난해 3월 국가부주석으로 복귀해 시 주석의 외교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왕후닝 상무위원
왕후닝(王호寧·64) 상무위원은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에 이어 시 주석까지 3대에 걸친 ‘이데올로기 책사’로 불린다. 장쩌민의 ‘3개 대표론’과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이라는 지도 이념을 고안했고, ‘이미지 메이킹’도 담당했던 최고의 브레인이다. 시 주석이 국가부주석 시절 정권 브레인 역할을 맡았다. 이후 시진핑의 ‘중궈멍(中國夢)’과 ‘신형 대국관계’ 이론을 설계했다. 중국 특색의 정치 제도를 강조한다.
류허 부총리
류허(劉鶴·67) 부총리는 시진핑의 ‘경제 책사’다. 시 주석과 베이징 101중학을 함께 다녔고, 하방 생활도 공유했다. 런민대 공업경제학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 석사를 받았다. 시 주석 집권 1기 5년간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을 맡아 각종 경제 정책을 입안했다. 미국통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3월 국무원 경제 담당 부총리로 승진한 뒤 미·중 무역협상 중국 측 대표로서 중국 경제를 지휘하는 최전선에 있다.
천민얼 충칭시 서기
천민얼(陳敏爾·59) 충칭시 서기는 시 주석의 저장성 서기 시절 핵심 인맥으로 꼽힌다. 시 주석은 2000년 3월부터 5년간 저장르바오에 ‘즈장신위(之江新語)’라는 칼럼을 실었는데, 이를 기획하고 초고를 썼다. 사오싱시 사범전문대학 중문학과를 나온 그는 시 주석의 후광으로 저장성 선전부장에서 구이저우성 부서기, 성장, 서기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2017년 차기 유력 주자였던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서기가 실각한 후 그 자리에 앉았다.
리창 상하이시 서기
공산당 중앙당교 공상관리학 석사를 졸업한 리창(李强·60) 상하이시 서기 역시 시 주석의 저장성 서기 시절 인맥이다. 당시 당 위원회 비서장을 맡아 시 주석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 중앙위원 후보에 불과했는데, 2017년 19차 당 대회 때 중앙위원, 정치국원으로 2주 만에 두 단계를 도약했다. 베이징 정가에서는 시 주석의 신임 속에 그가 2022년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후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김충남 특파원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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