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한담 >‘동백꽃 필 무렵’서 부부 연기한 오정세·염혜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정세(왼쪽)와 염혜란은 식사를 하며 실제 부부처럼 알콩달콩 얘기를 나눴다. 질문을 받으면 염혜란에게 “얘기해도 돼?”라고 허락받는 오정세의 모습에서 자영에게 주눅이 든 규태가 보였다. 아래 사진은 ‘동백꽃 필 무렵’속 두 사람의 연기 장면. 신창섭 기자

“첫날부터 서로 몸 부딪치는 신 찍으며 금방 편해졌죠”

오정세 “10년전 연극서 혜란이 보고 강한 인상받아
우는 장면이었는데 정지된 표정으로 슬픔 쏟아내”

염혜란 “대중이 몰라준다고 무명배우라고 생각 안해
빨리 유명해지면 빨리 저물뿐…앞만보고 가려고 해요”

“둘이 비슷한 생각을 하며 성장하고 있을 거예요.”(오정세),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아요. 그 바퀴가 조금 다른 사이클로 돌아가고 있겠죠.”(염혜란)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 KBS 2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부부 연기를 펼친 배우 오정세와 염혜란은 이혼을 진행하는 상태로 마무리된 극 중 인물 노규태와 홍자영의 관계가 여전히 이어져 있을 거라고 말했다. 오정세와 염혜란은 가상도시 옹산의 군수를 꿈꾸며 여기저기 나서는 규태와 냉철한 성격의 이혼전문 변호사 자영을 맛깔나게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자신보다 똑똑한 아내에 대한 열등감에 빠져 밖에서라도 대접받고 싶어하는 규태와 순수한 규태에게 반해 결혼했지만 그가 바람을 피운다고 오해한 자영은 남처럼 지내다가 마지막에 서로 사랑하던 초심으로 돌아간다. 염혜란은 “이혼이 마무리된 게 아니었으니 헤어지진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다시 법적으로 부부가 됐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오정세도 곰곰이 생각하더니 “아마도 서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하며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음식점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다정하게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동백이(공효진) 말처럼 규태가 자영에게 100% 잘리지는 않은 듯했다. 드라마 종영 후 한 달쯤 지난 17일 두 배우를 만나 작품에 대한 여운과 촬영 뒷얘기를 들어봤다.

드라마에서는 규태가 자영에게 “누나”라고 부른다. 실제로도 염혜란이 오정세보다 한 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어떤 호칭을 쓸까. 오정세는 둘 사이에 뭔가 비밀이 있는 듯 염혜란에게 눈짓을 주며 “얘기해도 돼?”라고 물었다. 염혜란이 끄덕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19)76이고, 정세는 빠른 77이라 ‘정세야’라고 부르며 친구로 지내요. 저도 생일이 늦어서 달수로는 얼마 차이 안 나요.”

오정세도 염혜란을 “혜란아”라고 부른다고 했다.

“달수로는 한참 누나죠. 근데 제가 학교를 일찍 들어가 ‘야자’ 하죠. 혜란이는 제게 ‘이 새끼, 저 새끼’ 해요. 얘기해도 되지? 뭐든 허락받고 말해야 하거든요(웃음).”

“드라마 끝낸 후에도 둘이 자주 만나냐”고 묻자 염혜란은 “뭘 둘이 만나요?”라고 정색했지만 오정세는 실실 웃으며 “일주일 전에도 만났다”고 답했다. 염혜란은 “드라마 끝내고 출연 배우들 다 모이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언제부터 알고 지냈을까.

“10년 전쯤 우연히 ‘차력사와 아코디언’이라는 연극을 관람하며 혜란이를 처음 봤어요. 30초 동안 정지된 표정으로 슬픈 감정을 쏟아내더라고요. 그때 강한 인상을 받았죠.”(오)

“제 연극을 봤다는 걸 기사에서 보고 알았어요. 같이 아는 친구가 있어서 술자리에서 만난 적 있었는데 그때는 연극 얘기를 안 했거든요. 재미있는 친구고, 사람 잘 챙기는 좋은 사람이라는 소문을 들어왔죠. ‘동백꽃 필 무렵’의 파트너가 정세라는 얘기를 듣고 좋았어요.”(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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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과 규태는 딱 봐도 안 어울리는 커플이다. 명문 법대 출신 변호사인 자영은 입시학원 다닐 때부터 공부밖에 몰랐고, 공고를 나와 안경사로 일하고 있는 규태는 공부 빼고 다 잘했다. 자영은 ‘행간이 없어 보이는’ 규태에게 반해 맞선을 청했고, 먼저 프러포즈해 결혼에 이르렀지만 규태가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자 이혼을 결심한다. 생활연기에는 일가견이 있는 오정세와 염혜란이지만 처음에는 규태와 자영처럼 어색했다고 한다. 어느 시점에서 두 사람의 부부 ‘케미’가 폭발했을지 궁금했다.

“처음 만난 날 집 안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한꺼번에 몰아서 찍었어요. 물을 끼얹고, 거품을 뒤집어쓰는 등 몸을 부딪치는 장면이 많아서 찍으면서 금방 편해졌어요. 서로 사랑하다가 갈등이 싹트는 부부가 아니라 처음부터 갈등으로 시작하니까 힘들긴 하더라고요. 규태와 자영처럼 실제로도 후반부에 들어서며 서로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염)

“부부가 외로운 공간에서 따로 사는 정서가 있었기 때문에 초반 어색함이 연기에 도움이 됐어요.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서로 편하게 잘 대해주는 사이가 됐죠. 후반부에는 신나더라고요.”(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는 질문에 염혜란은 규태가 살인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 체포되는 순간 액션 배우처럼 빠르게 차를 몰고 와 “영장 나왔어요? 증거 확실해요?”라며 카리스마를 내뿜는 드리프트 장면을 꼽았다. 또 오정세는 경찰에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으며 자영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밝혔다.

“규태의 지질함과 자영의 멋짐이 대비되는 장면이에요. 원래 대본에는 없었는데 정세가 제 바지 뒤춤을 잡더라고요. 감독님께 ‘얘가 나를 잡네요’라고 말해서 그 장면을 다시 찍었어요. 드라마에서 자영은 많이 나오지 않지만 규태 분량은 많았어요. 정세가 어마어마한 연기를 하는 걸 보면서 뿌듯했고, 저와 만났을 때도 장면이 잘 나오면 행복했어요. 좋은 파트너를 만난다는 건 행운이죠.”(염)

“취조실에서 경찰이 ‘아내를 사랑합니까’ 하고 물으면 ‘네 존경합니다’라고 답하는 장면이었는데 한마디 더 하고 싶더라고요. 까멜리아에서 우리 부부의 갈등이 시작됐으니 성장하는 모습도 까멜리아에서 따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까멜리아 앞에 붙어 있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를 애드리브로 했어요. 혜란이와 연기하면서 엄마 같은 든든함을 느꼈어요. 누구와 싸워도 이길 것 같고, 제가 실수해도 안아줄 것 같은 느낌요.”(오)

“취조실 장면을 다른 방에서 따로 찍었어요. 대본에는 규태 대사가 짧았는데 뭘 더 중얼거리더라고요. ‘뭐라고 했냐’고 물으니 방송에서 확인하래요. 드라마에서는 자영이 놀랐고, 방송을 보며 저도 또 놀랐죠(웃음).”(염)

이번 드라마를 통해 두 배우 모두 몇 단계 도약했다.

“복이 들어왔죠. 좋은 작품을 하며 큰 사랑까지 받았으니까요. 이 드라마 전에는 ‘도깨비 엄마’로 불렸어요. 요즘은 사람들이 저를 ‘변호사님’이라고 불러요. 배우가 캐릭터 하나를 각인시키기도 어려운데 저는 여러 개를 갖게 됐잖아요. 대운을 얻었다고 생각해요.”(염)

“지하철에서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서도 저를 못 알아봐요. 그런 데 자극받진 않아요. 그저 이렇게 오래 연기하고 싶어요. 기복이 심한 게 두렵거든요.”(오)

오정세는 1997년 영화 ‘아버지’에서 단역을 맡으며 연기의 길에 들어섰다. 염혜란은 1999년부터 연극무대에서 연기력을 쌓았다. 20여 년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떨까.

“연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만, 좋은 스트레스를 지닌 채 즐겁게 연기하고 있어요. 처음 단역을 맡았을 때도 행복했어요.”(오)

“저는 무명시절이 없었어요. 연극 할 때도 염혜란이 누구인지 다 알아주셨어요. 대중이 몰라준다고 무명은 아니잖아요. 빨리 유명해져 봤자 빨리 저무는 일밖에 없죠. 되돌아보지 않고 늘 앞만 보고 가려고 해요.”(염)

두 배우에게 “다음에는 어떤 역할로 만나고 싶냐”고 물었다.

“혜란이와 어떤 역할로 만날지에 대한 기대가 커요. ‘와 이 역할로 다시 만났네’라는 느낌이 기대돼요.”(오)

“새 작품 들어가면 정세가 할 역할이 없나 물어보게 돼요. 근데 정세가 요즘 너무 바빠요. 꼭 다시 만나고 싶은 배우예요.”(염)

규태는 그리도 꿈꾸던 옹산군수가 됐을까. “두 표 차이로 떨어졌을 거예요. 절대 찍지 않겠다던 용식(강하늘)이 진짜 안 찍었을 거고, 동백이도 안 찍어서 그렇게 됐을 거예요(웃음).”(오)


16년전 ‘살인의 추억’서 만날 뻔한 두 사람 인연

염혜란이 스크린에 처음 나선 건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통해서다. 그는 이 영화에서 형사들이 살인 용의자를 쫓다가 불쑥 들어간 집 툇마루에 앉아 부침개를 부치던 소현 엄마 역을 맡았다.

이날 인터뷰에서 오정세가 자신도 이 영화 오디션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자 염혜란도 깜짝 놀랐다. 오정세가 ‘살인의 추억’ 오디션에 합격했으면 두 사람의 인연은 16년 전에 시작될 수도 있었다.

오정세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이 누구인지도 몰랐어요. 그저 연기가 하고 싶었죠. 수백 번 떨어졌지만 기회만 있으면 계속 오디션에 참여했어요. 왠지 제목만 듣고도 하고 싶어지는 작품이었어요. 그 영화 스태프 중 아는 분이 있어서 정보를 얻었어요. 바보 캐릭터가 하나 있으니 그쪽으로 초점을 맞추라고 하더라고요. 미리 경찰 역할을 준비했는데 바보 역할을 추가해 준비했죠. 당시 대표적인 바보는 영구였어요. 이에 김을 붙이고 열심히 연기했는데 떨어졌어요. 영화를 보니 그 바보가 아니더라고요(웃음). 개봉 후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런 실수가 저의 소중한 자산이에요.”

염혜란도 봉 감독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촬영 현장에 처음 갔는데 아무도 저를 못 알아봤어요. 두꺼운 외투를 입고 분장까지 한 채 현장에 올라가는데 스태프가 막아섰어요. 배우라고 했더니 봉 감독님이 저를 보고 ‘염혜란 왔다’고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단역까지 귀하게 여기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동백꽃…’ 생각하며 먹는 특별한 칼국수

‘동백꽃…’ 생각하며 먹는 특별한 칼국수

오정세와 염혜란은 점심으로 칼국수와 모둠전, 문어숙회, 제육, 빈대떡 등을 먹었다. 칼국수는 노규태와 홍자영에게 특별한 음식이다. 음식을 먹으며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우린 역사적인 날 항상 칼국수를 먹네”(염). “언제 또 먹었더라”(오). “자영이가 축구하고 온 규태를 차에 태워 제부도에 가서 칼국수 먹였잖아”(염). “아∼자고 간다고 칫솔 사라고 한 날”(오). “그래 칼국수 먹는 날은 외박하는 날이야(웃음)”(염). “그래. 운전은 내가 할게(웃음)”(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