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돌아온 ‘리베카’… ‘4力’ 다해 기적을 낳다

■ 양준일 ‘리베카’

연말 시상식에서 호명되지 않은 후보자의 표정을 주로 살핀다. 박수를 쳐주고 요란스레 수상자를 안아주기도 하지만 가슴 속에선 이런 노래가 스쳐 가지 않을까. ‘오랫동안 기다려왔어/내가 원한 너였기에/슬픔을 감추며 널 보내줬었지/날 속여가면서 잡고 싶었는지 몰라’(임재범 ‘사랑보다 깊은 상처’ 중).

상 받은 자 주변에는 상처받은 자가 있게 마련이다. 어느 동네건 영광과 상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린다. ‘상처뿐인 영광’(1956)이라는 복싱영화가 있다. 폴 뉴먼을 스타로 만든 작품인데 영어제목을 최근에야 알았다. ‘저 위의 누군가 날 좋아한다’(Somebody up there likes me). 신앙고백 같기도 하고 숨은 영향력을 빗댄 것처럼도 들리지만 미래를 짝사랑하는 이에게 구원의 메시지인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배우 김혜자 씨를 지난주에 만났다. 그가 식사 중에 뜻밖의 질문을 했다. “양준일 씨 실제로 본 적 있나요?” 그에 대한 기억을 노래로 대신했다. ‘처음서부터 넌 좀 특이했어/눈빛으로 대화하는 너의 얘기/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어/그래도 난 좋았어’(양준일 ‘판타지’ 중). 김혜자 씨가 답했다. “시간이 지나도 본질적인 건 안 변하는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이 두 사람 모두 비상하다. ‘그것’을 알아낸 배우와 ‘그것’을 지켜낸 가수. 여기서 ‘그것’은 스타의식이 아니라 스타성이다. 차이는 간단하다. 본인이 ‘난 스타야’ 이러면 스타의식, 사람들이 ‘넌 스타야’ 이러면 스타성이다. 무엇이 오래가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하는 일은 많아도 되는 일이 없는 경우가 태반인 음악동네에서도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여전히 희망 섞인 주문이다. 죽을 힘(死力)을 다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4력(능력, 매력, 노력, 협력)이 어우러져야 목적지에 도달한다. “지금 한국이 난리가 났는데 아직 거기서 서빙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니 온라인 탑골공원에서 소환된 슈가맨 양준일(사진)에게도 4력이 있었다. 그의 능력은 노래보다 춤과 패션 감각이다. 그에게 노래는 몸으로 표현한 이야기일 뿐이다. ‘사랑을 한단 말을 하고 있지만/그대와 나만 알아듣는 말 아무도 몰라’(양준일 ‘가나다라마바사’ 중).

그의 매력은 구겨지지 않은 외양이다. 가난은 있어도 궁상은 없다. ‘눈물을 멈추리라/나의 사랑 리베카’(‘리베카’ 중). 젊음의 특징은 젊어 보이는 거다. 늙어 보이는데 자꾸만 젊다고 주장하면 그건 불쌍해 보이는 거다. 하지만 비주얼이 젊어도 말과 표정이 받쳐주지 않으면 매력은 반감된다. 동화 속에 갇힌 왕자처럼 그는 즐겁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 자신을 못 알아볼 정도로 젊어지고 있어요.” 세 번째 스테이지 ‘노력’으로 넘어가자. 인터뷰에서 밝혔다. “제 머리에 가득 차 있는 나의,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이라 그럴까요. 그것을 버리느라고 노력을 거의 뭐 생활처럼 했었어요.” 그는 음악에 매달리거나 무대에 구걸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행운은 만나는 것이지만 행복은 만드는 것이다. 혹시 서빙도 뮤지컬의 한 장면처럼 하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힘은 바로 협력이다. 온라인세상이 그에게 문을 열어줬고 달라진 세월(뒤바뀐 대중)이 그를 받아줬다. “더 이상 저의 과거가 저를 괴롭히지 않는 것 같아요.” 결국 세상은 세월의 적수가 못 된다. ‘이제는 말을 해줘요/감춰진 진실/말을 해 줘요’(‘리베카’ 중). 세상이 보여주는 건 현실일 뿐, 진실을 보여주는 건 언제나 세월이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건 순리를 넘어 섭리다. “세상은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요. 그냥 지금 이 감사함을 계속 가져가세요.” 어린 팬이 묻는다. “어떻게 내 미래보다 이목구비가 뚜렷할 수 있어요?” 천연덕스러운 답이 돌아온다. “원래 미래는 뚜렷하지 않아요.”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