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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글로벌 포커스 게재 일자 : 2020년 01월 22일(水)
해리 부부, 英 왕실서 한발짝 떨어지려다… 사실상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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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밀랍인형을 전시하는 영국 런던 마담 투소 박물관의 왕실관에서 해리(앞줄 왼쪽) 왕자와 메건 마클(〃 오른쪽) 왕자비의 인형이 치워졌다. 뒤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뒷줄 왼쪽부터), 남편 필립공,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 윌리엄 왕세손의 인형이 보인다. 박물관 관계자는 “해리 왕자 부부가 왕실 고위직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에 대한 대응”이라며 “이들의 밀랍상을 왕실 세트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 ‘하드 브렉시트’에 비견되는 ‘메그시트’

해리, 평소 파파라치에 불만
어머니인 다이애나 언급하며
메건도 희생양될까 두려워해

여왕 “뜻 존중” 빠르게 수용
해리 부부 희망과는 다르게
직책 박탈하고 재정지원 없애
왕족 부정적 여론 의식한 결정

해리 “이렇게 끝나버린 점이
엄청난 슬픔을 가져와” 밝혀
메건은 배우 활동 복귀할듯


“왕실에서 한발 물러나겠다”고 선언해 왕실을 발칵 뒤집어놓은 해리 왕자가 사실상 퇴출 결정이 내려지자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왕실에서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지 수일 만에 그는 “이렇게 끝나버린 점이 엄청난 슬픔을 가져왔다”고 토로했다.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비의 독립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빗대 메그시트(메건의 왕실 탈퇴·Meghan+Exit)라고 불러온 현지 매체들은 “영국 왕실의 이번 결정이 하드 브렉시트와 비슷하다”고 규정했다. 영국이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해 EU를 완전히 떠나는 것처럼 해리 왕자 부부가 호칭과 직책을 잃고 왕실로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매끄럽지 못한 대목이 많다는 의미다. 도대체 해리와 메건 부부는 왜 화려한 왕실 생활을 포기하고 도망가듯 탈출하려 할까. 아니, 무엇이 이들 부부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면서까지 왕실 밖으로 나가도록 내몰았을까.

◇메그시트의 기폭제는 파파라치 언론=해리·메건 부부는 언론에 노출되는 왕족의 삶에 불행을 느껴 독립을 선언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타블로이드 매체에 불만을 표해 왔다. 일부 언론은 해리 왕자의 휴대전화를 해킹하고 메건 왕자비의 사적인 편지 내용을 보도했다. 사생활을 침해해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타블로이드지와 독자에게 메건 왕자비는 특히 공격하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타블로이드지는 메건 왕자비가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여서 왕실 직원들이 일을 그만뒀다거나, 손윗동서인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에게 화를 내 눈물을 흘리게 했다는 보도를 했다. 아들 아치 해리슨의 세례식을 비공개로 치른 점, SNS를 사용하는 방식에도 비난이 이어졌다. 해리 왕자는 선정보도를 위해 따라다니는 파파라치를 피해 이동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언급하며 아내 메건까지 언론의 희생양이 될까 두렵다고 밝혔다. 해리 왕자가 결혼 전부터 언론에 환멸을 느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형인 윌리엄 왕자와 달리 언론의 관심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카메라 촬영이나 기자의 질문에 대놓고 화를 내기도 했다.

▲  할리우드 배우 출신 메건 마클 왕자비가 2017년 방영된 미국 법정드라마 ‘슈츠’ 주인공으로 출연한 모습.

결혼 전 영화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메건 왕자비의 자유로움 추구도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메건 왕자비는 미국 법정드라마 ‘슈츠(Suits)’에서 주연을 맡은 바 있다. 그는 앞으로 디즈니와 계약해 방송·영화 활동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21일 AFP통신에 따르면 해리 왕자는 영국을 떠나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메건 왕자비, 아들 아치와 재결합했다. 이날 런던에서 열린 영국-아프리카 투자 정상회의에 마지막 공무로 참석한 해리 왕자는 밴쿠버에 도착했다. 이들 부부는 적절한 시점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이주할 가능성도 관측되고 있다.

◇해리·메건 부부의 희망과 다른 왕실 결정=왕실 탈출 선언에 처음에는 격노했다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결국 물러서 “둘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말로 수용의 뜻을 밝혔다. 이후 메그시트의 구체적인 조건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리·메건 부부가 독립을 통해 원하던 바와 실제로 내려진 왕실의 결정에는 큰 간격이 있다. 해리 왕자와 메건 왕자비는 왕실 의무의 일부만 이행하는 절충안을 바랐지만, 왕실이 단호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텔레그래프는 “해리 왕자 부부가 왕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한 발짝도 설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적 자금을 받지 않으면서 여왕과 영국연방, 군에 계속 봉사하기를 희망했지만 슬프게도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는 해리 왕자의 말이 이를 방증한다. 해리 왕자 부부는 왕실 제도 내에서 진보적인 새로운 역할을 개척하기 위해 변화를 선택한다고 했지만 이들은 아무런 역할도 얻지 못했다. 여왕과 영연방에 대한 의무를 이어가고 싶어 했으나 직업으로나 공적으로나 더 이상 왕족이 아닌 이들은 의무도, 순방도 없어진다.

재정 문제 역시 해리 왕자 부부는 왕실과 동상이몽을 꾼 것으로 확인됐다. 왕실이 이들 부부가 사용 중인 윈저성(城) 프로그모어 코티지를 리모델링하는 데 들어갔던 240만 파운드(약 36억 원)의 재정 지원을 반납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해리 왕자 부부는 지출의 5%에 해당하는 왕실 교부금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아버지 찰스 왕세자로부터 받는 생활비의 95%를 포기할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소식통에 따르면 찰스 왕세자는 1년을 시험 기간으로 삼아 해리 왕자 부부에게 단기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이후의 지원에 대해서는 왕실 구성원들과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왕실판 ‘하드 브렉시트’의 이유=해리·메건 부부에 대한 왕실의 결정은 영국 내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해리 왕자 부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왕실 의무의 일부는 이행하고 일부는 이행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북미와 영국을 오가면서 생활하겠다는 이들의 희망에 대해 “왕족은 내킨다고 비행기를 타고 주말여행을 갈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BBC의 왕실 전문 기자 조니 다이몬드는 “왕족과 유명인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책임감이며 왕족에게는 규칙이 따른다”고 강조했다. 왕실 일원이라면 국민에게 보기 좋은 완벽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하고, 이 같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독립한 해리 왕자 부부의 경호와 해외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도 논란이 됐다. 실제 이들 부부가 새로운 수입 출처가 생기기 전까지는 공공 기금을 포기하지 않을 거란 관측이 많았다. 의무는 방기한 채 권리만 누리려 한다는 비판에 왕실 전반에 대한 부정적 여론까지 커질 위기였다. 결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프로그모어 코티지 리모델링 비용을 반납하라는 이유도 이 돈이 국민이 낸 세금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국민의 광범위한 합의에 기초해 유지되는 영국 왕실은 여론의 반응을 항상 의식할 수밖에 없다. 왕실의 존립 여부는 국민의 지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으나 공화주의자들은 군주제를 폐지하자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왕세자 부부의 이혼과 죽음, 왕실 일원들의 잇단 추문 의혹, 의전을 위한 과도한 예산 등으로 영국 왕실은 비판받은 바 있다. 왕실 존속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번 메그시트 사태처럼 발 빠르게 대응해 왔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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