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원 “性的성향따른 고용차별은 위법”… 성소수자 권리 새분수령

“트랜스젠더 등 이유 해고 안돼
민권법 보호 받는다” 판결내려
보수성향 고서치 대법관 주도

미국 대법원이 개인의 성적 지향·성 정체성에 따른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결정이 성소수자 운동 역사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에 대한 미국 사회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15일 AP통신,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제7조가 동성애자·트랜스젠더에게도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이날 결정은 예상외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과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찬성 6 대 반대 3으로 판결 났다. 주심인 고서치 대법관은 “답은 분명하다.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개인을 해고하는 고용주는 다른 성별의 직원들에게는 묻지 않았을 특성이나 행위를 이유로 그 사람을 해고한다”며 “정확히 민권법 제7조가 금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은 동성애자 남성 2명과 트랜스젠더 여성 1명이 실직 후 성적 지향·성 정체성을 이유로 해고돼 차별을 당했다며 제기했다.

이번 판결은 미 LGBT 근로자 약 810만 명의 노동과 생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성소수자 권리 신장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될 전망이다. AP는 “대부분의 주는 직장 내 차별로부터 성 소수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969년 성소수자들이 차별에 항의하는 ‘스톤월 항쟁’을 벌이고, 2015년 대법원이 동성혼 법제화를 선언한 후 또 한 번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가 나온다. NYT는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과는 달리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2일 보건 분야에서 트랜스젠더 권리 보장 법안 철회를 확정한 후 내려진 판결이어서 더욱 대조된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판결을 받아들인다”며 “몇몇 사람은 놀랐지만 그들이 결정을 내렸고 우리는 그들의 판단에 따라 산다”고 말했다. 한편 보수단체는 고서치 대법관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서치 대법관은 전임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과 마찬가지로 보수 성향인 데다, 헌법 해석 시 법 조항 외적 요소와 입법부 의도를 배제하는 ‘원문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리 세베리노 사법위기네트워크 대표는 “이번 판결은 보수적인 법 사상의 왜곡”이라면서 “스캘리아 대법관은 후임자가 원문주의를 엉망으로 망쳐놓았다는 사실에 실망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