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김보희 화업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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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자연은 우주의 진리를 품고 있는 매개체다. 작은 씨앗 한 톨은 생명의 시작인 동시에 꽃과 열매가 소멸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순환의 질서를 담고 있다. 나무 한 그루도 씨앗부터 싹을 틔우고 줄기를 키워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감내해온 시간을 함축하고 있다. 인간의 삶도 시간의 흐름 속에 피고, 시들고, 진다.” 씨앗과 활짝 핀 꽃과 시든 꽃잎을 크게 확대해 그린 그림에 ‘자화상(Self portrait)’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한 한국화단의 원로 금우(琴雨) 김보희(68) 화백의 말이다. 한지(韓紙)뿐 아니라 캔버스도 자주 활용하면서, 먹과 함께 강렬하고 화사한 색채의 서양화 물감까지 거침없이 사용하는 그를 두고 한국화단 일각에선 이단아(異端兒)라고도 하지만, 그는 “한국화와 서양화의 본질적 차이가 크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형태는 구상(具象)이지만 흐릿한 배경과 의도적 생략으로 추상의 특성도 드러내며 풍경화의 새 지평을 열어온 한국화가’ ‘자연의 풍경에 특별한 시각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으로 채색 한국화의 현대적 가능성을 키워온 예술가’ 등 그를 일컫는 표현은 다양하다. ‘하찮은 일상적 주변 정경에서도 시적(詩的)인 정서를 느껴 화폭에 담아내는 작가’라고도 한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 관장은 “김 화백이 상상력으로 재창조해낸 세계는 현실을 해독(解毒)해 사색의 삶을 되찾게 하는 정원”이라고도 했다.

그는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1974년 졸업하고, 1980년 첫 개인전을 열면서 미술계에 공식 데뷔했다. 인물화·정물화에 이어 풍경화로도 확장한 그는 북한강·남한강과 동해·서해 등을 찾아다니며 먼동이 트는 새벽의 신비로운 효색(曉色)을 비롯해, 낮의 색, 저녁의 색 등을 독창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신혼 여행 때부터 풍광에 매료된 제주도에 2005년 마련한 거처에서 작업하며 서울을 오가던 그는 1993년 교수로 부임한 모교에서 2017년 정년 퇴임하면서 완전히 제주에 정착해, 눈이 시리게 아득한 수평선과 푸른 하늘과 초록의 자연 등을 그려왔다. 서울 삼청로 금호미술관에서 지난 5월 15일 개막한 그의 화업(畵業) 50년 기념전 ‘Towards’가 오는 12일 끝난다. “보고 싶은 것, 보여 주고 싶은 것, 있게 하고 싶은 것, 같이 즐기고 싶은 것만 그렸다”는 김 화백의 대표작 55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