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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0년 08월 26일(水)
‘칭송의 메아리’에 에워싸인 권력자… 결국 ‘자기환상’에 파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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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이철형 작가

■ 김태환의 이야기철학 - ⑤ 나르키소스와 키타라 연주자

에코의 비극은 자아의 상실… 나르키소스의 죽음은 자아의 과잉서 초래
트위터 팔로어들은 현대판의 에코… 맹목적인 지지로 나르시시즘적인 정치인 양산 부추켜


서투른 키타라 연주자가 벽에 회칠한 집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벽이 메아리치면서 목소리가 아주 곱게 들렸다. 그는 자기가 노래를 잘한다고 믿고 무대에 나섰지만 관객들의 야유를 받고 무대에서 쫓겨났다.

메아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에코라는 여신으로 의인화된다. 수다스러운 에코는 헤라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 제우스가 바람피우는 것을 돕는다. 에코에게 속은 것을 안 헤라는 분노해 에코에게 벌을 내린다. 이제 에코는 결코 스스로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남이 하는 말의 뒷부분만 따라 할 수 있는 신세가 된다. 독립적 주체성을 상실한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다.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눈앞에 두고도 자기 뜻을 전하지 못하고, 나르키소스가 꺼내는 말을 불완전하게 반복할 뿐이다. 대화가 불가능하고 에코의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절망한 에코는 동굴에 숨어 몸을 잃고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목소리로만 남게 된다. 에코 신화는 고유한 자아의 독립성을 상실한 자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자아 상실의 비극은 사랑의 좌절에서 정점에 이른다. 자아를 상실한 자, 고유성을 지니지 못한 자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도 불가능하다. 진정한 사랑은 각자 독립적이고 고유한 인격을 갖춘 타인 사이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에코 신화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에코의 사랑을 거절한 것이 나르키소스라는 사실이다. 나르키소스 역시 비운의 주인공이다.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물속의 소년이 사랑할 수 있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물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절망 속에서 죽어간다. 에코의 비극이 자아의 상실에서 왔다면, 나르키소스의 죽음은 자아의 과잉에서 온다. 에코의 경우 고유한 자아의 상실이 타인과의 만남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나르키소스에게는 자아밖에 없기에 타인에게 이르는 길, 사랑의 길이 끊어지고 만다.

에코의 비극과 나르키소스의 비극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르키소스의 비극은 이미 에코의 비극에서 예고됐다고 할 수 있다. 자아를 잃은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르키소스의 그림자,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르키소스의 소리 그림자가 된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에게 구애받은 셈이다. 그는 소리 그림자 에코의 구애를 거절했지만, 공교롭게도 자신의 물그림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림자의 사랑을 버렸지만 다시 그림자를 향한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나르키소스는 자기 그림자를 뛰어넘지 못한 채 허망한 사랑의 숨바꼭질 끝에 절망한다. 그림자와의 사랑, 진정한 타인에게 이르지 못하는 자신과의 사랑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나르키소스의 숙명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찬미를 의미하는 나르시시즘이라는 말은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이 신화를 액면 그대로 읽으면 나르키소스는 나르시시스트라고 보기 어렵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말을 복제하기만 하는 에코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물에 비친 소년에게 사랑을 느낀 것도 소년을 자신의 분신으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소년을 타인으로 생각했기에 사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물속의 아름다운 소년이 자신의 그림자임을 알았을 때 나르시시즘적 자기만족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나르시시즘은 나르키소스의 성격이나 심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르키소스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표현된다.

우화 속의 키타라 연주자는 어떤가? 나르키소스와는 반대로, 키타라 연주자는 회칠한 벽에서 메아리치는 노랫소리가 자신의 목소리임을 알고 있으며, 바로 그렇기에 스스로를 찬탄한다. 그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로, 객관적으로 형편없는 노래를 주관적으로 아름답다고 착각한다. 그는 자아도취 속에서 메아리를 통해 보강된 자신의 목소리에 매혹되고, 자신에 대한 환상을 키워간다. 대화가 불가능하도록 무의미한 반복만 하다 버림받는 나르키소스의 에코와는 달리, 키타라 연주자에게 에코(메아리)는 매혹적인 자아의 분신으로 나타난다. 키타라 연주자는 자신을 똑같이 따라 하는 에코를 사랑하며, 에코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에 확신을 품는다.

키타라 연주자와 유사한 나르시시스트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우쭐해진 늑대가 있다. 늑대는 석양에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내가 이렇게 거대한데 사자가 두려울 게 무엇이냐’고 혼자서 큰소리친다. 키타라 연주자의 목소리를 되울려 주는 메아리가 그러하듯 석양의 긴 그림자도 늑대의 자기 환상을 부추긴다. 늑대는 나르시시즘적 성향으로 인해 자아를 강화해주는 듯한 빛의 현혹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늑대와 키타라 연주자의 자기 환상은 곧 깨져버린다. 환상에 빠진 자아는 얼마 가지 않아 타인의 세계, 냉엄한 객관적 현실에 부딪힌다. 뻐기던 늑대는 사자의 먹잇감이 되고, 키타라 연주자는 고운 목소리를 믿고 무대 위에 올랐다가 망신만 당하고 쫓겨난다. 그림자는 허망한 환영이다. 사자의 이빨 앞에서 늑대는 그림자 없는 작은 몸뚱이로 축소된다. 무대 위에서 가수의 목소리는 에코 효과가 만들어낸 후광이 벗겨진 채 듣기 싫은 소음으로 전락한다. 나르시시즘적 환상은 자기만의 사적이고 고독한 시공간 속에서만 잠정적으로 존속하며 강건한 타인의 세계에 부딪히는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린다. 나르키소스 역시 진짜 현실에 직면해 자신이 오직 자기 안에 포획된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파괴된다.

우디 앨런의 2013년 영화 ‘로마 위드 러브’에서는 샤워실에서 샤워하는 동안에만 멋지게 노래할 수 있는 장의사 잔카를로가 등장한다. 그는 키타라 연주자의 먼 후예다. 그는 다만 남 앞에 서기를 꺼리는 수줍은 나르시시스트이기에 혼자만의 고독한 노래로 만족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왕년의 오페라 감독인 제리가 사돈이 될 장의사의 집을 방문했다가 샤워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매료된다. 결국 잔카를로는 제리에게 설득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디션장에 서지만, 정작 심사자들 앞에서는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 그의 노래는 키타라 연주자의 노래처럼 사람들 앞에서 조롱거리가 된다. 낙담해 집에 돌아온 제리가 ‘샤워할 땐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인데’라고 의아해하자, 제리의 아내는 비웃듯이 대꾸한다. “당신도 샤워할 때 노래하잖아. 샤워할 땐 누구나 가수지.” 그 순간 제리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샤워부스 자체를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이다. 잔카를로는 평소처럼 샤워부스에서 샤워하면서 노래 실력을 뽐낸다. 그는 단숨에 대스타가 된다.

잔카를로의 샤워부스는 키타라 연주자의 회칠한 벽과 유사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두 경우 모두 벽이 소리를 흡수하지 않고 최대의 반향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목소리를 풍부하게 해주고 깊이와 울림을 더해준다. 키타라 연주자가 자기 목소리에 환상을 품게 된 이유다. 그런데 제리는 그러한 환상의 효과 자체를 무대 위에 올린다. 이제 샤워실의 ‘에코’는 단순히 자기 환상을 품게 하는 현혹적인 그림자 그 이상의 의미를 얻는다. 에코는 자아의 불필요한 반복도, 과장된 허상도 아니다. 에코는 자아를 반복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자아를 강화한다. 에코 효과를 통해 증강된 자아는 타인의 세계에 나가서도 파괴되거나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타인을 장악한다. 이솝우화의 근간을 이루던 이분법, 고독한 자아의 주관적 환상과 냉정한 타인들의 객관적인 현실 사이의 이분법이 허물어진다. 샤워실 안에만 머물러 있던 자기만족적, 자아도취적 노랫소리가 세상의 빛을 보고 객관적으로 인정받는다. 타인조차 환상을 깨지 못하고 오히려 그 환상에 정복당한다. 나르시시즘은 면역성을 갖춘다.

물론 영화 자체의 맥락에서 샤워부스 에피소드는 평범한 인간과 톱스타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뛰어넘는 유머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오늘의 나르시시즘에 대한 우화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유력 정치인이 트위터 같은 매체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세상에 내보낸다. 트위터는 팔로어들로 에워싸인 공간이다. 트위터러가 발송하는 메시지에 팔로어는 하트 버튼을 눌러주고, 찬동하는 댓글을 남겨주며, 리트위트해준다. 이질적인 타인은 팔로어에서 차단당한다. 트위터러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한 내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트위터러와 팔로어의 관계는 서로 다른 타인 사이의 대화적 관계가 아니다. 팔로어는 21세기의 에코들이며, 에코들의 반복과 긍정은 트위터러의 자아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트위터러에게 자신의 계정은 스스로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사적 공간이다. 그는 완벽하게 동조할 준비가 돼 있는 팔로어들 사이에서 마음대로 혐오와 차별의 발언을 내뱉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들을 짜 맞춰 자기 나름의 진실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트위터러의 메시지는 그 사적 공간 너머로, 타인의 세계에까지 퍼져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메시지는 사적이면서 공적이다. 샤워실에서 노래하는 동시에 무대 위에 선 잔카를로처럼, 트위터러는 팔로어들의 응원으로 가득한 자기 계정 속에서 발언하는 동시에 그렇게 숱한 에코를 통해 증폭된 목소리를 객관적인 현실, 적대적인 타인의 세계에까지 발산한다. 에코들이 형성하는 굳건한 장벽이 나르시시즘적 트위터러를 현실의 반격에서 보호해주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나르시시스트의 환상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질적인 타인 사이의 교류를 전제하는 대화적이고 민주적인 전통적 공론장의 이념은 외부의 공격에 면역을 갖춘 나르시시즘적 증강자아의 난립 속에서 무력해진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21세기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는 자신을 칭송하는 에코의 무리로 주위를 에워싸려는 경향을 자주 보인다. 그러한 권력자의 공간은 사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인 성격을 띤다. 나르시시즘적 권력자의 꿈은 그 공간을 무한정 확대하는 것, 그리하여 통치 영역 전체를 자신을 위한 샤워실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혹시 그 반대편에 민주적 지도자의 이상을 설정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말을 무조건 복창하는 에코를 견딜 수 없이 따분해 하는 나르키소스 같은 권력자가 아닐까.

서울대 독문학과 교수


■ 용어설명

키타라 : 고대 그리스의 발현악기. U자 모양의 나무로 된 공명통에 세로로 줄을 친 악기로 왼쪽 가슴에 안고 오른손 손가락이나 상아 픽으로 연주한다. 현의 수에 따라서 3현, 4현, 5현, 6현 등으로 불렸다. 중세 들어 하프나 류트에 밀려 모습을 감췄으나 키타라라는 이름은 기타, 치터 등의 어원이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울로스가 디오니소스의 피리라면 키타라는 아폴론의 악기다. 아울로스가 디오니소스의 황홀·정열·관능을 상징한다면 키타라는 아폴론의 균형과 조화, 그리고 냉정한 지성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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