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아베 사임·차기총리 선거와 향후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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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주요 파벌 지지 업고 단숨에 ‘대세’… “주요 정책 계승”
아베 ‘上王 정치’지속 가능성… “다음 선거가 진짜다”분석도

‘자수성가 아이콘’스가, 北문제 계기로 아베와 친분
초대 관방장관 임명되며 아베 최장기 집권에 큰 공
우익 이미지 강하지만 신사참배 반대했던 일화도
“선거 직후 중의원 해산·조기총선”시나리오 솔솔

한국과의 관계를 1945년 광복 이후 최악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병으로 사임하면서 전후 최장기인 8년 가까이 이어져온 ‘아베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와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온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후임 총리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하는 분위기여서 아베의 상왕(上王) 정치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다소 갑작스럽게 사임 소식을 알렸던 아베 총리의 기자회견 이후 열흘간 급박하게 돌아간 일본 정계의 현주소를 10가지 테마를 통해 정리해본다.

1. 정치 타이틀 여럿 거머쥔 아베

아베 총리는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으로 일본에서 입헌군주제가 시작된 이래 역대 최장기간 집권했다. 2006년 당시 52세 나이로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면서 전후(戰後) 최연소 총리 타이틀을 얻었다. 제90대 총리로서 2006년 9월 26일부터 2007년 9월 26일까지 366일간 짧게 집권한 후 물러난 그는 이후에도 정치활동을 이어가다 재기에 성공한다. 2012년 9월 26일, 다시 자민당 총재직에 오른 뒤 총선에서 압승하며 정권 교체까지 이뤄낸 것이다. 그의 2차 집권기는 지난달 24일로 연속 2799일간 지속되면서 종전 기록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1901∼1975) 전 총리(2798일)를 넘어섰다. 집권하는 동안 6번의 국정 선거에서 내리 승기를 잡으며 ‘1강’ 체제를 공고히 구축했고, 양적 완화·저금리·엔저 등을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 정책을 통해 강력한 리더십을 이어왔다.

2. 궤양성 대장염에 두 번째 중도 사임

1차 집권 때인 2007년 9월에도 아베 총리는 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임기 도중 사임했다. 당시 그는 하루에 수십 번씩 화장실에 가야 했고, 밤에도 잠을 못 자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한다. 1차 집권기 병이 악화하면서 중도 사임한 이후에는 ‘아사콜(ASACOL)’이라는 약이 잘 듣는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아베 총리가 정기 건강검진을 받은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게이오대 병원을 일주일 간격으로 방문한 것을 두고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분분했다. 기자회견 직전까지도 아베 총리의 측근들은 그의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는 취지로 발언했지만, 아베 총리는 사임 의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8월 초순 궤양성 대장염 재발이 확인됐다”고 언급하며 지병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결과적으로 아베 총리는 궤양성 대장염 때문에 두 번이나 임기 도중 사임한 총리가 됐다.

3. 스가 관방장관에게 기운 판세

후임 총리로 유력한 스가 장관은 제1차 아베 내각에서 입각에 성공한 후 제2차 아베 내각 출범과 동시에 관방장관에 임명돼 아베 내각의 최장기 집권에 상당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일본 내에서도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아키타(秋田)현에서 딸기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홀로 상경, 혈혈단신으로 일본 정계에서 살아남은 그는 여느 유력 정치인들과 달리 세습 가문 없이 정권 서열 2위에 올라 ‘자수성가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그는 39세 나이에 요코하마(橫浜) 시의회 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후 ‘그림자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실력을 키웠고, 이후 오부치파·고치카이(현재의 기시다파) 등 자민당 내 주요 파벌들에 적을 두다 북한 문제를 계기로 아베 총리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요코하마 시의원 시절 경험을 통해 “인사야말로 조직을 장악하는 열쇠”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그는 중앙 무대에 올라선 후에도 인사권 행사를 통해 정권의 메시지를 관료가 스스로 느끼게 한다는 ‘손타쿠(忖度)’ 정치를 대대적으로 펼친다.

4. 스가 출마 선언 “아베 정권 계승”

지난 2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스가 장관의 주요 메시지는 “아베 정권의 계승”이었다. 사임 발표 당일 아베 총리가 착용했던 것과 색깔·무늬가 유사한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두면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아베노믹스 지속,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한 외교 등 아베 내각이 추진해 온 주요 정책들을 되풀이했다. 특히 아베노믹스와 관련해선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를 최상의 상태로 올려놓았다”고 평가할 만큼 믿음이 상당하다. 그가 북한과 일본을 오가는 화물 여객선 ‘만경봉호’ 입항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던 때인 2002년, 당시 관방 부장관으로서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던 아베 총리와의 정치 인연이 시작됐다. 1차 아베 내각 때 총무상으로 발탁된 그는 아베 총리가 지병을 이유로 총리직을 내려놓은 후 그의 재기를 위해 가장 힘썼던 인물로 알려졌다.

5. 한·일 관계 전망은?

스가 장관의 국가관도 우파 이데올로기에 기초하며, 아베 총리가 취했던 기본 기조를 답습하는 ‘아베 시즌2’를 이어갈 확률이 높다. 그는 지난 6일 산케이(産經)신문 인터뷰에서 “일·한(한·일) 청구권협정이 일·한 관계의 기본”이라고 못 박았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는 아베 총리의 입장을 반복했다. 이 밖에 아베 총리가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평화헌법 개정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스가 장관이 우익 인사로 이미지를 굳힌 것은 2013년 한·중이 일본의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표지석을 설치하려 하자 안 의사를 “범죄자”로 칭하고, 2014년 중국에서 안중근 기념관이 개관하자 “테러리스트”라고 재차 발언한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부터다. 다만 그가 우익적 가치관을 실현하는 데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014년 일본 주간 잡지 ‘선데이 마이니치’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국가관이라는 것이, 제게는 그다지 없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그가 뼛속까지 우파는 아닐 것이라고 소장파 정치학자 나카지마 다케시(中島岳志) 도쿄공업대 교수는 분석했다. 이러한 주장은 지지율 하락, 미·일 관계 악화 등을 이유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반대했던 일화로도 뒷받침된다. 관방장관 직을 맡은 2012년 12월 이후 스가 장관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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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총재 선거 어떻게 치러지나

메이지유신 이후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에선 일반적으로 집권당의 대표가 중의원(일본의 국회를 구성하는 양원 중 하나로 하원에 해당)에서 과반의 동의를 얻어 총리직에 오른다. 집권 자민당이 중의원 전체 465석 중 285석을 차지하고 있기에 자민당 총재가 곧 총리가 되는 셈이다. 자민당 당칙에 따르면 총재 선거를 치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정식 절차에 따르면 소속 국회의원(394명)과 당원(394명)이 모두 한 표씩 행사하게 되는데,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국회의원에 각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지부 연합회 대표 141명만 참가하는 약식 선거를 치를 수도 있다. 자민당은 지난 1일 총무회에서 아베 총리의 사임이 약식 선거의 요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기자회견 직전까지도 아베 총리가 사퇴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자민당 내 그의 측근들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리더십 공백을 빨리 메워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자민당 당칙은 선거 고시일부터 실제 투표까지 최소 12일의 기간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주 예외적인 비상사태임을 고려해 이를 7일로 단축했다. 절차는 8일 선거 고시 후 14일 투·개표, 16일 임시국회에서의 지명 순으로 진행된다. 당원 지지층이 탄탄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을 비롯해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상 등은 이 같은 결정이 민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다만 최근 진행된 조사에선 스가 장관이 이시바 전 간사장을 꺾고 1위에 올라 여론마저 스가 장관에게로 기우는 모습이다.

7. 스가, 단숨에 유력 후보 오른 배경

현재 자민당 내에서 주요 파벌에 속해 있지 않은 스가 장관이 선거 고시도 전에 승기를 잡은 데 대해 일본 정계에선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베 총리가 사임을 공표하기 직전까지 “총리직에는 관심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스가 장관이 갑자기 선거전에 등판해 단숨에 유력 후보로 떠오른 것은 주요 파벌의 수장들이 그를 사실상 추대했기 때문이다.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등이 ‘위기 상황에서 정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파벌들을 규합하자 판세는 단숨에 스가 장관 쪽으로 기울었다. 애초 아베 총리가 “레이와(令和·2019년 5월 1일부터 사용된 일본의 연호)는 기시다의 시대”라며 자신의 후임으로 언급했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은 호소다파·아소파 등에 구애했지만, 정치인으로서 뚜렷한 정체성이 없는 데다 정조회장으로서 코로나19 등 현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한 약점 등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정치 원로들의 마음을 얻는 데에도 실패했다. 19명의 소수 파벌(이시바파)을 갖고 있는 이시바 전 간사장은 총재 선출 방식이 약식으로 최종 결정되는 순간부터 명확하게 열세에 놓였다.

8. 日 정치 좌지우지해 온 파벌들

자민당 내 파벌의 기원은 1955년 당이 결성됐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사권과 자금을 매개로 ‘당 속의 당’으로 군림해온 주요 파벌들은 자체 조직과 내부 규칙을 두면서 일본 정치의 흐름을 결정해왔다. 현재 최대 파벌은 아베 총리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무상이 2대 회장직을 맡았고, 아베 총리 본인도 한때 몸담았던 호소다파(세이와정책연구회·98명)다. 아베 내각에서 총무회장, 간사장 대행 등 주요 당직을 거쳐 온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전 관방장관이 수장으로 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맹우인 아소 부총리가 이끄는 아소파(시코카이·54명)와 한때 100명이 넘는 최대 계파였던 다케시타파(헤이세이연구회·54명)가 공동 2위다. ‘포스트 아베’로 여러 번 거론됐던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이 아소파 소속이며 다케시타파 소속 유명인으로는 차기 관방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이 있다. 이 밖에 ‘실세’ 니카이 간사장의 니카이파(시스이카이·47명)와 자민당 내 보수파 본류로 분류되는 기시다파(47명)도 규모가 꽤 된다. 주요 파벌들은 매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여 같은 종류의 도시락을 먹으면서 단합 의지를 다지는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9. ‘킹 메이커’ 니카이 도시히로

니카이 간사장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막역한 정치인으로 한국에 잘 알려져 있다. 1999년 10월 한·일장관회의에서 문화·관광 분야 장관으로 만나 지금까지 21년간 ‘의형제’ 관계를 유지해온 사이다. 당내에선 서열 4위의 파벌을 이끌고 있지만, 인사·공천·자금관리 등을 총괄하는 간사장(사무총장격)으로서 사실상 서열 2위다. 아베 사임 정국에서도 총재 선거 방식을 결정할 권한을 쥐고 있으면서 주요 파벌들의 움직임을 주도해 ‘킹 메이커’로 떠올랐다. 스가 장관과는 비서 출신, 지방의원 출신 등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데다 과거 중의원 예산위원장에 있던 그의 실력을 인정한 스가 장관이 아베 총리에게 니카이 간사장을 자민당 3역 중 하나인 총무회장에 임명하도록 건의했다는 뒷얘기가 나온다. 작년 가을 개각 때 아베 총리가 기시다 정조회장을 간사장에 앉히려고 했지만, 니카이 간사장이 유임될 수 있도록 조력한 인물도 스가 장관으로 알려졌다. 니카이 간사장은 아베 총리의 사임 발표 직후 스가 장관과 접촉하면서 자민당 내 알게 모르게 퍼져 있던 ‘스가 대망론’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10. 다음 선거가 진짜다?

애초 ‘포스트 아베’ 후보군에는 스가·기시다·이시바 외에도 고노 방위상, 고이즈미 환경상, 모테기 외무상,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전 총무상,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자민당 간사장 대행 등 여러 사람이 거론됐지만, 파벌 간의 야합으로 일제히 불출마를 선언하고 나서면서 나흘 만에 3파전으로 압축됐다. 새 총리의 임기가 공식적으로는 내년 9월까지로 짧은 만큼 자민당 내에선 ‘차차기’ 총리에 대한 관심도 높은 상황이다. 이번 선거가 스가 장관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어 기시다 정조회장과 이시바 전 간사장의 진짜 승부는 1년 뒤 총재 선거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만 자민당 내에서 총재 선거 직후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판세를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스즈키 ？이치(鈴木俊一) 총무회장은 지난 6일 BS TV에 출연해 “새 내각에 대한 기대가 높을 때 국민의 신뢰를 구해야 한다”면서 ‘중의원 해산·조기 총선’ 시나리오에 다시 불을 지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