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이명박 ‘공정사회’ 교훈과 文의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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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설문 분석 방법 가운데 하나가 언급된 단어의 빈도수를 확인하는 것이다. 연설자가 중요시하는 주제와 관련된 단어들이 반복해서 언급되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사에서 유난히 ‘공정’을 강조했다. 원고지 29장 분량의 기념사에서 공정을 37번, 불공정을 10번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공정의 문제가 중대 현안임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대통령의 시각에서 공정의 문제는 적폐의 잔재로 남아 있는 특권이나 반칙의 문제다. 유감스럽게도 조국·추미애 두 전·현직 법무부 장관의 비리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공정의 가치를 역설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기치로 내세우던 중에 있었던 인사 파동이 떠오른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8·15 경축사에서 후반기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로 ‘공정한 사회’를 제시했다. 그런데 8월 8일 개각에 따른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의 도덕적 비리들이 드러나면서 공정사회의 첫걸음에 걸림돌이 발생했다. 야권에서는 ‘이게 공정한 사회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언론과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김태호 총리 후보와 2명의 장관 후보가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이 전 대통령이 애초에 제시한 공정사회는 사회경제적 공정이 핵심이었다. 구체적으로 공정사회는 친서민·중도실용 노선에 바탕을 둔 공평한 기회의 확대였다. 그러나 국민이 생각하는 공정사회는 제도개혁이나 공정경쟁보다 훨씬 폭넓은 것으로, 사회지도층의 법적·도덕적 책임이 선행조건이었다. 합법 여부를 넘어서 지도층의 높은 도덕적 기준이 준용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제도 개혁을 통해서도 국민이 원하는 공정사회로 공감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교훈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에, 조국 사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또 법무장관과 관련된 특권 및 불공정 시비가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이 결정적 한 방 없이 추 장관의 비리 의혹을 재탕하는 무능력에 국민은 짜증스럽다. 여기에 더해 야당 의원을 면박하면서 의혹 제기에 가장 큰 피해자는 추 장관 자신과 그의 아들이라는 발언에 코로나에 지친 국민은 분노와 함께 허탈함마저 느낀다. 지금의 정국은 뻔뻔한 여당과 무능한 야당으로 요약된다.

이미 사실로 밝혀진 보좌관의 아들 휴가 연장 민원 전화만으로도 추 장관이 사과해야 할 사안이다. 다분히 특권층의 압력으로 비치며, 보좌관이 해야 할 업무가 아니라는 점에서 추 장관은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낮은 자세를 보여야 한다. 법무장관이자 5선 의원의 ‘소설 쓰시네’로 시작해서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자기중심적 발언들 속에서는 자중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날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공정을 바라보는 눈이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공정의 기준은 다양하거나 대상 인물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져선 안 된다. 공정이 사회의 중심 가치가 되기 위해서는 작금의 진영논리를 떨쳐 버려야 한다. 국민적 합의가 도출된 공정의 구체적 기준을 세우는 일이 급선무다.

문 대통령은 공정이 사회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고 했다. 공정이 법적 해석의 범위를 넘어 사회적 규범과 도덕성의 영역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과연 현 정부 인사들의 특권적 행태가 대통령이 제시한 공정의 범주 내에서 용인될 수 있는가. 불법이 아니라는 말로 공정을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