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현택환>“‘끝장연구’하려면 체력만큼 돈도 중요… 기초·응용과학 구분짓는 건 웃기는 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현택환 교수가 대당 수십억 원 하는 고가의 전자현미경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현 교수가 생각하는 과학

“과학자는 가난해야 한다고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노기술(Nano Technology)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현택환 교수에게 그다음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이냐고 묻자 나온 답변이다. 그는 최근 나노텍의 의료 분야 응용에 관심이 많다. 벌써 뇌전증(간질) 예측 논문을 한 편 써냈고 알츠하이머·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질환, 크론병·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새로운 나노 접근법을 적용,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아직 교수 정년은 9년 정도 남았지만 70살 넘어서도 연구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면서, 그 진정성의 증거로 ‘테니스 체력 단련’을 실례로 들었다. 평생 손에 잡지 않던 골프채를 든 지는 채 2년이 안 되지만, 테니스는 20년 이상 꾸준히 지속해 전국 교수테니스대회에서 8강 진입을 두 번이나 할 정도의 수준이다. 훌륭한 파트너와 조를 짠 덕분에 복식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는 ‘좋은 인간관계론’도 여전했다.

“체력이 튼튼해야 연구를 잘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주제에 매달려 논문을 쓸 때까지 ‘끝장 연구’를 하려면 10년 가까이 걸리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체력이 중요하고요, 또 하나 돈도 중요합니다. 물론 연구비도 잘 타내야 하지만, 돈 잘 버는 실생활 접목 기술을 만들어내야 하죠. 미국의 노벨상 클래스에 들어간 학자 중 많은 사람들이 벤처기업을 2~3개씩 창업하고 있습니다. 교수 이력서에 ‘언제 무슨 기술로 기업을 창업해 주식회사로 상장시켰다’는 창업 경력을 자랑스럽게 나열합니다. 물론 직접 창업해 교수를 그만두고 사장이 되는 일은 드물지만, 최소한 자신의 원천기술로 설립된 회사의 기술고문을 맡습니다. 과학자는 가난해야 한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는 기초학문인 화학과를 졸업했지만 지금 응용학문인 공대에 소속돼 있습니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구분은 웃기는 일입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연구는 응용 연구와 가장 맞닿아 있다(Really fundamental, highly applied)’라고요. 현실 세계와 무관할 것 같은 입자물리학, 천체물리학 같은 최전선 기초과학의 발견도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응용 연구로 이어집니다. 인류의 생활을 바꾸는 거지요.”

현 교수는 연구실의 퀀텀닷(QD) 기술로 회사를 세워 이를 일본 소니 TV에 판 미국 동료 과학자 모운지 바웬디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다국적제약사 화이자에 조 단위의 돈을 받고 신약 원천기술을 매각한 리처드 실버먼 노스웨스턴대 유기화학과 교수 등 많은 예를 들며, ‘과학자 재벌’을 이상하게 여기는 우리나라 풍토를 이젠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8년 자신이 개발한 ‘균일한 나노입자 대량합성’ 연구 결과를 한화석유화학에 기술 이전하면서 43억 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공개되면서 말 못할 마음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상세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구체적인 액수가 외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실수”라고 말을 흐렸다.

“제가 만든 기술은 100% 메이드 인 코리아입니다. 이런 원천기술을 많이 보유한 나라가 강대국이 됩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취임 직후 과학 화두를 던지는 전통을 이어갑니다. 빌 클린턴은 나노텍, 조지 W 부시는 수소, 버락 오바마는 뇌과학이었죠. 기술 강국 미국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초기 단계지만 매우 중요해서 먼저 치고 나가야 할 분야를 선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미 국립보건원(NIH),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에너지청(EIA) 같은 거대 연구기관들이 일제히 인재와 투자를 집중시킵니다. 우리나라도 2000년 국가과학기술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지요.”

그는 노벨상 1호도 좋지만 후배들이 좋은 연구를 하도록 이끌고 싶다는 꿈 역시 감추지 않았다.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 미국의 앨런연구소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현 랩(lab)’도 세우고, 노벨상 같은 ‘현 프라이즈(prize)’도 만들어보라는 기자의 덕담을 굳이 부인하지 않으며 염화미소(拈華微笑)로 화답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