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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 게재 일자 : 2020년 11월 24일(火)
물리학만으론 사회현상 이해 한계… ‘애정 어린’ 미시적 시선 함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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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밥장 작가

(17) 코로나부터 경기 변동까지… 물리학이 설명할 수 있을까?

물리 시스템을 연구대상 삼는 통계 물리학… 최근 ‘사회 물리학’으로 확대
빅데이터 기반한 연구 등으로 사회현상 이해에 도움 커지겠지만
통계적 패턴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량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


물리학이라는 상당히 큰 학문 안에는 여러 연구 분야가 있다. 통계 물리학도 그중 하나다. 천체 물리학자는 천체를, 입자 물리학자는 입자를, 반도체 물리학자는 반도체를 연구하지만, 통계 물리학자는 통계를 연구하지 않는다. 통계를 연구 방법으로 이용한다. 통계 물리학은 연구의 대상이 아닌 방법이 이름에 있어 독특한 물리학의 한 세부 분야다.

우리가 어떨 때 통계를 이용하는지 생각해 보자. 초등학교 때 배우는 막대 그래프도 통계의 한 표현 방식이다. 같은 반 친구들 모두의 키가 어떤 방식으로 분포하는지 궁금할 때, 통계를 이용해 막대 그래프를 그리면 한눈에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 가장 키가 큰 학생의 키가 몇인지, 키가 중간 정도인 학생의 키는 어느 정도인지 막대 그래프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특정한 학생 한 명의 키가 궁금하면 자를 대고 숫자를 읽으면 된다. 이렇게 잰 딱 하나의 키를 굳이 막대 그래프로 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하나가 아닌 여럿이 궁금할 때 통계를 이용한다. 통계 물리학도 마찬가지다. 많은 입자가 모여 이뤄진 커다란 물리 시스템(system·系)이 통계 물리학의 전통적인 연구 대상이다.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통계라는 방법론의 망치를 손에 든 통계 물리학자는, 무엇이라도 많이 모여 있어 통계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를 재밌어한다. 모여 있는 것이 물리학의 입자든, 사람이든, 아니면 많은 데이터든 말이다. 통계 물리학 교과서는 많은 ‘입자’로 이뤄진 물리계를 다루지만, 통계 물리학 연구자들은 많은 ‘사람’으로 이뤄진 사회라는 시스템에도 흥미를 느낀다. 세상에는 못이 아닌 것이 훨씬 더 많고, 못이 보인다고 매번 망치가 효과적인 도구라는 보장도 없다. 통계 물리학자는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극히 일부를 물리학의 정량적인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사회 현상을 통계 물리학자가 연구한다고 해서 사회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통계 물리학자는 사회 현상에 대한 연구도 물리학자처럼 한다. 물리학의 방법을 이용해 사회 현상을 이해하려는 연구 분야가 바로 사회 물리학이다. ‘통계 물리학’과는 달리 ‘사회 물리학’에서 ‘사회’는 연구의 방법이 아닌 대상이다. 사회 물리학은 통계 물리학의 방법을 적용해 사회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에 붙여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사회 물리학이라는 분야가 아직 학문의 생태계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보니, 사회 물리학자라는 표현은 여전히 낯설게 들린다. 필자는 사회 현상에 관심을 가진 통계 물리학자다. 필자뿐이 아니다. 통계 물리학자 중 사회 현상 연구에 관심을 가진 이가 국내외에 상당히 많다.

모든 과학은 나름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지도 제작이라는 비유를 재밌게 들은 기억이 난다. 과학자는 세상을 묘사하는 지도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유명한 작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실비와 브루노’에 재밌는 대화가 등장한다. 외계 행성에서 온 사람이 자신들의 지도 제작 기술을 자랑한다. 처음에는 현실의 1마일을 6인치의 축척으로 줄인 지도를 제작하다가 다음에는 1마일을 6야드로, 그리고 이어서 1마일을 100야드의 축척으로 점점 자세한 지도를 만들어 나갔다고 한다. 이 외계 행성 사람들은 결국 놀라운 발상을 하게 된다. 바로, 현실의 1마일을 지도 위에 1마일로 표현한 지도다. 놀라운 지도 제작 기술 자랑을 들은 소설 속 화자가 지도의 유용성에 대해 묻자, 외계에서 온 사람은 그 지도를 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답한다. 지도를 펼치면 세상과 같은 크기가 되므로 펼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지도와 정확히 같은 현실을 그냥 지도로 이용하면 되니 그 지도를 쓸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현실과 정확히 같은 지도는 무용지물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 중 중요한 것만을 모아 지도를 만들 듯 모든 과학은 복잡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력이 좋지 않아 대충 보는 시선이다. 과학이 복잡해 어렵다고들 하지만, 현실은 과학보다 수천∼수만 배는 더 복잡하다. 복잡한 현실을 그나마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이 과학이다. 맛집 지도는 맛집을 찾을 때, 지하철 노선이 표시된 지도는 지하철을 이용할 때 쓴다. 같은 현실이라도 무엇을 이해하고자 하는지에 따라 과학의 여러 분야는 각각 나름의 지도를 그리는 셈이다. 맛집 지도와 지하철 지도처럼 서로 다른 지도를 놓고 옳고 그름을 하나의 잣대로 판단해 우열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하다. 통계 물리학도 현실 사회를 표현하는 나름의 독특한 지도를 그린다.

통계 물리학은 사회를 이루는 사람을 어떻게 기술할까? 전통적인 사회 과학 분야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을 극히 단순한 존재로 기술한다는 점이다. 구성 요소 하나를 현실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사람처럼 복잡하게 기술하면, 이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미시적인 요소가 달라도 전체의 통계적 패턴은 강건하게 유지되는 통계 물리학의 보편성(universality)이 구성 요소의 단순화에 대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나무 하나를 대충 보는 것이 여럿이 모인 숲을 거시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고전 경제학에서 그리는 사람은 무한한 지성을 가진 존재지만, 물리학자가 그리는 사람은 지성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주어진 정보를 이용해 다음 행동을 단순한 규칙으로 결정하는 존재지만, 행동의 결과에 맞춰 스스로의 단순한 행동을 다음에 적응적으로 변화시키도록 하는 방법을 이론 연구에서 많이 이용한다. 이렇게 단순한 존재로 기술되는 사람들이라도, 여럿이 모여 서로 관계를 맺고 상호 작용하면 전체는 놀랍고 흥미로운 거시적인 특성을 드러낼 때가 많다. 통계 물리학은 단순한 여러 개인이 복잡한 상호 작용을 통해 만들어 내는 전체의 패턴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드러나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과학의 최전선은 정말 넓고, 각각의 개별 과학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나누는 나름의 최전선에서 연구를 진행한다. 통계 물리학을 이용해 사회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도 물론 최전선이 있지만, 사회가 복잡하듯 최전선도 복잡해 연구자 다수가 지금 꼭 알아내고자 애쓰는 공통의 중심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사회 물리학 최전선의 대강의 모습을 소개하기 어려운 이유다. 물론, 당시의 사회 관심을 반영한 연구가 더 큰 주목을 받는다. 세계적 금융 위기 이후에는 연결망의 형태로 서로 연결된 경제 주체에서 어떻게 금융 위기가 파급되는지(시스템 위기라고 부른다)에 대한 연구가 관심을 끌었고, 올해에는 아니나 다를까 감염병의 확산을 연구하는 통계 물리학자가 많아졌다. 이런 연구로 앞으로 47일 뒤의 확진자 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산의 메커니즘을 적절한 이론 모형으로 규명할 수 있다면, 다양한 방역 방식의 효과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유용성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통계 물리학 분야의 사회 현상 연구 최전선을 넓게 조망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하기엔 어려운 필자가 그래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 들어 급격히 다량으로 생산돼 공개되고 있는 다양한 현실 데이터가 앞으로 사회 현상의 연구에 더 폭넓게 이용되리라는 전망이다. 기존 연구의 한계를 빅데이터에 기반한 연구를 통해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통계적인 예측은 데이터가 많아지면 점점 더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제거된 다양한 데이터에 기반해 현실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가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물리학으로 사회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의 대답은 ‘예, 아니요’ 둘 다다. 물리학은 앞으로 점점 더 사회 현상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물리학으로 사회 현상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사회를 이뤄 살아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숫자 하나의 정량적 방법으로 대변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물리학은 사회 현상에서 패턴을 찾고, 그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일 수 있지만, 통계적 패턴을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애정의 눈길로 보기 어려운, 극복할 수 없는 방법론적인 한계가 있다. 초등학생 한 반의 키를 모아 막대 그래프로 그리면 전체를 볼 수 있지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쳐다봐도 막대 그래프에서 결식아동을 찾을 수는 없다. 전체를 보는 거시적 시선인 통계 물리학은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 일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구체적 문제의 해결에는 애정 어린 미시적 시선과 함께할 필요가 있다.

김범준 성균관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용어설명

통계 물리학 : 상호 작용하는 많은 입자로 구성된 물리계의 거시적이고 통계적인 정보를 알아내는 물리학의 전통적인 연구 분야다. 19세기 말, 통계 역학적인 엔트로피를 제안해 기존 열역학의 엔트로피에 대한 미시적인 이론을 완성한 루트비히 볼츠만이 통계 역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20세기 말부터 많은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 시스템, 많은 경제주체로 구성된 경제 시스템 등이 통계 물리학의 연구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분야를 복잡계 과학이라고 한다. 물리학뿐 아니라, 경제학, 경영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복잡계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보편성 : 통계 물리학의 전통적인 연구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상전이와 임계 현상이다. 온도와 같은 조절 변수가 변하면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거시적인 물질의 특성에 급격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상전이가 일어나고 있을 때 관찰되는 여러 임계 현상은 물리계를 이루는 구성 요소의 세부적인 특성에 그다지 의존하지 않는 보편성을 보인다. 임계 현상의 보편성은 전체 사회가 보여주는 거시적인 특성이 이론 모형 안 구성 요소의 세부적인 차이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박수의 박자를 맞추는 청중 등 다양한 현상을 공통된 단순한 이론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통계 물리학의 보편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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