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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20년 11월 27일(金)
물신시대 歲寒 이기는 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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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문화부 선임기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일반에 공개하는 전시회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값을 매길 수 없다는 뜻의 ‘무가지보(無價之寶)’로 불리는 이 그림은 올해 국가 소유가 됐다. 소장가 손창근 씨가 기증했기 때문이다. 손 씨는 박물관과 대학 등에 이미 수차례 기부를 했다. 땅, 현금뿐만 아니라 희귀 유물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서 그가 기부한 액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그 소식을 듣고 궁금했다. 그의 자녀들은 기부에 흔쾌히 동의했을까. 그의 차남 손성근 연세대 교수에게 물었더니, “아버지 이름으로 남는다는 것이 한없이 기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손 교수 음성에선 정말 기쁨이 넘치는 듯했다. 아버지가 이왕 기부했으니 기뻐하는 게 영리한 처신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사회 재산가들이 느끼는 게 있었으면 한다”는 말에 이르면, 처신이라기보다 소신인 듯싶었다. 이 소신은 그의 집안 유산이다. 그 할아버지 손세기 선생도 생전에 고서화 300점을 대학에 희사했다.

지난 17일 타계한 최만린 조각가는 생전에 작품 126점을 성북구에 기증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아껴서 친지에게도 선물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지역 공동체에 기증한다고 했을 때, 아내와 자녀는 흔쾌히 동의했다. 손아래 동서인 최불암 배우도 “형님께 잘하셨다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최 조각가는 기부를 함으로써 미술관 앞에 붙는 이름으로 영원히 남게 됐다.

기부로 이름을 남긴 이 중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알프레드 노벨이 아닐까 싶다. 오늘(11월 27일)은 그가 1895년에 재산을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쓴 날이다. 그가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상금으로 주라며 남긴 유산은 3300만 크로나.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억 달러이다. 당시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제국주의로 치닫던 일본의 1년 국가 예산보다도 많았다.

노벨의 기부는 앤드루 카네기, 존 데이비슨 록펠러 등 거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자선 사업을 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기부 유전자가 타인에게 스민 셈이다.

물론 하루하루의 일상을 애옥살이로 버티는 보통 사람들에겐 이런 이야기는 먼 미담일 수 있다. 장수 시대를 살아가려면 돈을 더욱 움켜쥐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물신 사회가 아닌가. 훈민정음 해례본 소재를 빌미로 국가에 돈을 요구하고 있는 배 아무개 씨 모습은, 우리 시대 자화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럴수록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하다. 선대로부터 받은 것이 많거나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은 세상에 감사를 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방법의 하나는 기부 유전자를 퍼트리는 것이다. 기부를 하면 계층 불만을 누그러트려 사회를 안정시키고, 결과적으로 부와 권력 세습을 가능케 한다는 따위의 옥셈은 그만두라. 그저 온기를 지펴서 공동체 추위를 함께 이기자는 뜻만 보듬자.

세한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람의 온기이다. 그 온기가 공동체 전체에 퍼지는 경험을 우리는 해마다 사랑의 온도탑을 통해 누려왔다. 감염병 사태로 유독 힘겨웠던 해여서일까, 이번 겨울 사랑의 온도탑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기를 소망한다.
e-mail 장재선 기자 / 문화부 / 부장 장재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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