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인문학>⑫ 비대면 시대 - ‘놀이’하는 인간

  • 문화일보
  • 입력 2020-12-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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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백두리 작가


■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 - 새로운 일상의 탄생

팬데믹 상황이 강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고독과 존재론적 회의에서 구원해줄 놀이의 진화를 예상케해
남이 하는걸 관찰하는‘먹방’·콘택트 없이 타인과 교류하는 게임 각광
온기를 가져다주는 반려동물과 새로운 관계맺음도 놀이로 드러날 것


다수가 일자리를 잃거나 혹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일하거나 공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인류의 일상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시간이 수치상으로는 현격히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줄어든 일만큼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의 반대말이 놀이일진대, 인류는 더 많이 자고 더 많이 놀고 있을까.

주위를 관찰해 보면, 전자와 후자 모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팬데믹이 가져온 온라인미팅과 강의 폭증을 경험한 사람들은 누구나 겪었을 것인데, 관련 계층에서 노동의 강도는 확실하게 더 심해졌다. 온라인강의를 하는 교수들은 대면강의에 비해 학습이 질적으로 떨어질 것을 염려해 온라인강의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하고, 더 많은 과제를 내주는 경향이 있다. 감히 말하건대 아마도 올해 전 세계 대학생들의 학습량과 강도는 증가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수면의 양과 질이 늘어났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러한 일과 휴식의 상황 분석으로 현실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놀이에 대한 인간의 수요와 욕구가 월등히 증가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잘 놀아야 일도 잘할 수 있고 창의력도 높아진다는 인류학적 진리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잘 논다는 것은 재생(recreation)이 가능하게 논다는 것이고, 그것은 빼곡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빈 공간을 만드는 일이며(불어의 바캉스(vacance)가 바로 이처럼 비운다는 뜻이다), 그 공간을 일의 원칙, 즉 생산과 목표를 지니지 않은 활동으로 채우는 행위다.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는 규칙이 있고 즐거움 자체를 지향하는 목적지향적인 행위이며, 자발적으로 참여해 몰입을 가져오고 일상과 구분되는 의식(ritual)과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정의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놀이라고 부르는 행위와 그것의 문화적 결과를 포괄하는 정의다. 놀이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여럿이도 할 수 있는데, 팬데믹 상황이 강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인간의 사회적 욕구, 즉 고독과 존재론적 회의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위로찾기가 더욱 강화된 방향으로 놀이의 진화를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은 가족을 넘어선 지인 네트워크를 통해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는 문화가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는 나라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와 디지털 문화의 발전이 이러한 사회적 필요성과 만나 이미 ‘먹방’과 같은 독특한 놀이형식을 만들어냈다. 빠른 인터넷이 전국적으로 보급됐으며 스마트폰의 사용률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한국에서는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디지털로 혼자 놀기가 가능한 사회적·기술적 환경이 조성돼 있다. 이로부터 향후 발전할 팬데믹 시대의 놀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첫째, 콘택트 없이 함께하는 놀이가 더욱 발전할 것이다. 하루아침에 새로운 놀이가 발명된다기보다 기존의 놀이 중 일부가 더 강화되고 변형돼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 여러 온라인 게임들과 온라인 콘서트, 그리고 무엇보다 남이 하는 걸 관찰하는 먹방과 같은 대체(vicarious)경험 놀이가 여기에 속한다.

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이야말로 버추얼 공간에서 콘택트 없이 다른 인간과 교류하는 대표적인 놀이 형식이다. e스포츠로 발전한 이 분야는 인기가 높고 한국 선수들이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로 활동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팬데믹 기간에 MMORPG와 같은 집단경쟁게임이 아니라 ‘동물의 숲’과 같은 커뮤니티 게임이 인기가 높았다. ‘동물의 숲’ 속에서 플레이어는 동물들이 사는 숲으로 이사해 집을 만들고 장식하며, 채집하고 낚시해 살아가며 이웃과 소통한다. 인간의 과도한 환경 훼손이 초래한 팬데믹 상황에서 이처럼 자연친화적 삶을 대신 살아보는 놀이가 성행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온라인 콘서트 또한 콘택트 없이 함께하는 놀이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최근 몇 달 ‘비욘드 라이브’ 콘서트나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 나훈아 콘서트처럼 동시접속한 관객의 수나 이벤트성으로 매체에 크게 회자된 사건들 외에도 클래식과 국악 또한 온라인 콘서트가 활성화되고 있다. BTS의 세계적 성공과 더불어 다른 K-팝 그룹들도 전 세계에 큰 팬덤을 지니고 있고 세계적인 초국적 대중문화산업 성공의 사례로 각광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맞은 팬데믹은 K-팝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K-팝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가 K-팝 팬덤 커뮤니티 형성의 핵심 플랫폼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일차적으로 K-팝 팬덤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팬덤이 요구하는 스타와의 접촉과 소통의 생생함을 온라인 콘서트가 얼마나 잘 조직하고 연출해내는가는 장기화될 팬데믹 상황을 고려할 때 K-팝의 수월성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고, 향후 다양한 장치의 개발이 예상된다.

남이 무언가 하는 걸 보며 즐기는 놀이는 사실 오래된 형식이다. 핍쇼(Peep Show)처럼 훔쳐보기 욕망을 충족시키는 성인의 놀이에서부터 오늘날 스포츠경기 관람에 이르기까지 이 형식은 오랜 역사를 지녔다. 지금 새로운 것은, 보는 행위를 화면을 통해서 전국적, 전 세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과 이때의 대체경험이 중요한 놀이의 효과라는 점이다. 먹방이 이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먹는 모습을 방송하며 시청자와 실시간 대화를 나누는 먹방은 1인 가구 청년들의 하위문화로서 시작한 것이지만 이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한국어 먹방(Mukbang)이 영어사전에 새로운 용어로 등재될 정도로 일반화됐다.

둘째, 혼자서 상상하고 몽상하기를 가능케 하는 많은 온라인 콘텐츠 소비의 증가다. 인류는 이미 방송이나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많은 콘텐츠 서비스를 지녔지만 팬데믹이 기존의 서비스가 쉽게 식상할 상황을 만들었다. 전 세계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가입형 비디오 서비스(SVOD)가 이 분야에서 각광받게 됐고, 이 분야에서 넷플릭스의 발전이 가장 부각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세계 시장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중이고, 이와 더불어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원작을 제공하고 있는 웹툰도 각광받고 있다. 팬데믹이 영어권 대중문화에 식상한 세계의 문화소비자들에게 한국의 대중문화를 대안적 시청각물로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다. 한국의 시청자들도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SVOD를 통해 과거에 접하지 못했던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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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팬데믹으로 인해 인간끼리 거리를 두고 장기간 격리해야 하는 동시에 부부나 가족처럼 의무적으로 함께 사는 사람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심화됐다. 따라서 자신이 조절하는 거리두기가 가능한 상황하에서 만날 수 있는 소수 지인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드러나게 됐고, 혼자 또는 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집의 중요성도 새삼 깨닫게 됐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집에 온기를 가져다 주고 몸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반려동물에 더욱 열광하고 있다. 미래에 인공지능(AI)을 장착한 로봇이 반려동물보다 더 영리한 동반자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명체의 온기와 존재감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몸으로 하는 모든 집단적 놀이의 급격한 감소 때문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몸을 재발견하고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살찌는 몸, 온기와 반려가 필요한 우리의 몸. 우리는 몸을 가진 생명체이고, 반려동물은 나와 함께 작은 공간에 같이 살고 산책하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존재다. 나의 몸과 타자의 몸, 일상에 자연을 가져오는 동물의 몸에 대한 새로운 관계 맺음이 앞으로 어떤 놀이와 문화로 드러날지가 기대된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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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경/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류 현상에 대한 논문과 연구서를 발표해왔고, K-팝을 학문적이면서도 대중 친화적으로 다루는 글을 꾸준히 써왔다. 저서로 ‘세계화와 디지털 문화 시대의 한류’ ‘BTS 길 위에서’ 등이 있다.

[문화일보·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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