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god ‘길’
한 해를 보내며 과연 내가 한 해를 보내는 건지 한 해가 나를 보내는 건지 의문이 든다. 사람들은 세월을 보낸다고 착각하지만, 세월의 입장에서 보면 올해도 수많은 사람을 보낸 게 맞는 답일 것이다. 그러니 세월 잘 만난 사람도, 세월을 원망하는 사람도 너무 우쭐대거나 우울해하지 말지어다.
다섯 차례나 그래미상을 받은 컨트리가수 겸 기타리스트 글렌 캠벨(1936∼2017)의 노래 ‘타임(Time)’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누군가는 날 하찮게 여기고/ 누군가는 친절하게 대하지만/ 대부분 제 갈 길을 갈 뿐/ 내게 관심조차 없어.’(Some folks treat me mean/ Some treat me kind/ Most of them go their way/ And don’t pay me any mind).
세밑이면 음악다방에선 이별 노래가 많이 나왔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이동원 ‘이별노래’ 중). 그때는 세월도 친구처럼 다정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원곡 ‘올드 랭 사인’은 스코틀랜드어로 ‘오랜 옛날부터(old long since)’라는 뜻이다.
음악동네에 이별 노래가 많은 건 사랑의 절반이 이별인 까닭이다. 연이은 히트곡이 모두 이별 노래인 가수도 있다. ‘눈물을 닦아요/ 그리고 날 봐요/ 우는 마음 아프지만/ 내 마음도 아프다오’(홍민 ‘고별’ 중). ‘떠나는 이 마음도/ 보내는 그 마음도/ 서로가 하고 싶은 말/ 다할 수는 없겠지만’(홍민 ‘석별’ 중). 신기한 건 이별이건 작별이건 고별이건 석별이건 앞의 한 글자를 떼어버리면 모조리 별이 된다는 사실이다. ‘어두워지면/ 나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이동원 ‘이별 노래’ 중).
시곗바늘을 20년 전으로 되돌려본다. 서기 2000년에도 방송 3사는 생방송 연말가요제 일정을 겹치지 않게 조율했다. 12월 29일은 SBS가요대전, 30일은 KBS가요대상, 31일은 MBC10대가수가요제. 그중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KBS가요대상에서 마지막 ‘대상’을 발표한 직후 진행자 중 한 명인 김동건 아나운서가 이런 말을 했다. “god(사진)가 대상을 받았다는 이 현실을 여러분이 보셨을 겁니다.” 대본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요무대’ 진행자인 그분은 어떤 심정으로 이런 말을 던졌을까. god는 그해 184만 장이나 팔린 3집 수록곡 ‘거짓말’을 앙코르로 불렀다. 강력한 대상 후보였던 조성모의 팬들은 거짓말 같은 현실에 절규했고 god의 팬들은 ‘거짓말’을 합창했다.
현실의 거짓말은 앞과 뒤가 다르고 처음과 끝이 다르다. 반면에 노래 ‘거짓말’은 겉과 속이 다르다. 겉으론 ‘잘 가’ 하면서도 마음으론 ‘가지 마’라고 애원한다. 노래 한 곡엔 일상뿐 아니라 세상도 담겨 있다. 얼핏 들으면 god의 데뷔곡 ‘어머님께’(1999)는 가난이 싫었던 한 소년의 소소한 추억담에 불과하다. 거기에도 거짓말이 등장한다. 아들에게 짜장면을 먹이며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다. 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건 모성애뿐만이 아니다. 빈부의 격차,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현실의 풍경도 담겼다.
god의 ‘길’(2001)은 질문의 노래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길’은 시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공간이다. god의 질문이 이어진다.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세상 앞에서, 혹은 세월 뒤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시인의 노트를 펼쳐 보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중략)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윤동주 ‘길’ 중).
프로듀서·작가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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