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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M 인터뷰 게재 일자 : 2021년 02월 19일(金)
“‘한국은 빚진 것 없다, 자유위해 싸웠다’던 老兵 눈빛 못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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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라미 현이 서울 관악구 촬영 스튜디오에서 현지 촬영한 참전용사 사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 세계 돌며 참전용사 사진·영상 촬영… 라미 현 작가

美서 만난 90대 유엔참전용사
“너희가 얻은자유 北에 전하라”
그 한마디 말에 머리 멍해져

스튜디오·촬영장비 팔아가며
40개 도시 순례, 1400명 만나
인터뷰 영상도 찍고 액자전달
저마다 가슴벅찬 감동 스토리

6·25정전 70주년까지 프로젝트
다음 세대 위해 기록하는 것


“제가 만난 유엔 참전용사들은 저마다 다른 스토리가 있어요. 어느 한 분도 빠짐없이 가슴 벅차고, 감동적인 스토리입니다.”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짊어지고 미국·영국 등 유엔참전국 40여 개 도시를 순례하며 유엔 참전용사 1400여 명의 사진을 촬영하고 인터뷰를 영상으로 기록한 뒤, 사진 액자(개인·단체)를 전달해온 ‘군인 찍는 사진작가’ 라미 현(43·본명 현효제). 이달 초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고갯길 촬영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도전은 다소 무모해 보였다. 국가적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을 자신이 운영하던 스튜디오와 촬영장비까지 팔고 사비를 털어 헌신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미국에서 무거운 촬영장비를 들다가 허리디스크 파열상을 입고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는 2023년 한국전쟁 정전 70주년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한국전쟁) 유엔 참전용사를 웃게 만들고, 그들을 기억하게 만들자’라는 주제로 ‘프로젝트 솔저: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를 추진 중이다. 그는 “사진이란 게 돈 버는 수단도 되지만 현재의 것을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도구일 수도 있다”며 “프로젝트 솔저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록을 남기는 공동예술작업”이라고 소개했다.

―만나본 유엔 참전용사 중 가장 감명 깊고 기억에 남는 노병은 누구인가.

“윌리엄 빌 웨버(96) 예비역 미 육군 대령이다. 웨버 대령은 워싱턴 DC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 19명의 동상 중 판초를 입고 소총을 든 동상 모델로도 잘 알려진 미국 전쟁영웅이다.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재단 회장을 지내기도 한 분이다. 2019년 6월 웨버 대령의 메릴랜드 자택을 방문해 사진액자를 선물하자 웨버 대령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자신이 뭘 해주면 좋겠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이미 69년 전에 다 지불하셨습니다. 저는 다만 그 빚을 조금 갚는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참전용사는 이 말에 꼭 안아주거나 고맙다는 말을 꺼낸다. 그런데 웨버 대령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정색을 했다. 그러더니 ‘너희가 빚진 것 하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미국인이든 영국인이든 누구에게나 자유를 가진 사람들에겐 의무가 있다. 그 의무는 자유가 없거나, 자유를 잃게 된 사람들에게 그 자유를 되찾아주고 지키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건 그 자유를 지키고 전달하기 위한 것이고, 그건 우리 의무다. 다만 우리가 너희에게 자유를 얻게 했으니 너희도 의무가 생겼다. 북녘 동포들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것. 그것이 너희들의 의무다. 그 의무를 다했으면 한다’고 했다.”

현 작가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 전쟁 중 부상으로 팔·다리 2중 수족을 차고 현역 복무한 첫 군인인 웨버 대령은 “내 한쪽 팔과 다리가 없는 것보다 한반도가 분단돼 있는 것이 더 가슴 아프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한국 사랑은 각별했다.

―웨버 대령이 한국에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 계기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으로부터 조선인 노예(강제징용자)들을 해방하라는 명령을 직접 하달받은 그는 일본 군수기지 등을 찾아 700여 명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면서 우리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당시 전투에서 느꼈던 아픔과 상황을 듣고 싶다고 했더니, 그가 씩 웃으며 ‘나 그때 오른팔이 없어졌는데, 아프지 않았어’라고 대답하기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물었다. 그는 ‘사실 소변도 보는 도중 얼어버리는 강추위였기에 팔이 절단됐을 때 그 절단면이 바로 얼어버렸고, 그 바람에 혈액 손실이 거의 없었다’고 대답했다. 내가 만난 노병 중 가장 의지가 강한 분이었다.”

▲  라미 현 작가(왼쪽)가 지난 2016년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자신이 개최한 육군 군복사진전을 관람하러 온 미 해병대 참전노병 살 스칼라토(오른쪽)를 촬영하는 모습. 라미 현 제공

―맨 처음 만난 유엔 참전용사는 누구였나.

“2016년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육군 군복사진전을 관람하던 미국인이었는데 그에게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그는 미 해병대 참전용사로 뉴욕주한국전쟁참전협회장을 지낸 ‘살 스칼라토’로 ‘제 첫 번째 유엔군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그의 사진을 찍고 난 뒤 ‘왜 저분은 자기 나라 전쟁도 아닌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에 저렇게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나는 한국전 참전용사’라고 말할 때 그의 눈에서는 광채가 났는데 그런 눈빛은 처음 봤다. 그 후로 그를 4번 더 만났다.”

현 작가는 한국에서 찍은 사진 액자를 전달하러 뉴욕주 롱아일랜드 그의 자택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가 대뜸 “이거 팔러 온 건가? 얼마면 사겠냐고?”라며 차가운 반응을 보여 무척 당황했다. 스칼라토는 현 작가의 진심을 알고 난 뒤 정중히 사과하며, 몇 년 전 미 동부 쪽에서 한 비디오그래퍼가 70∼80여 명의 참전용사 인터뷰를 DVD로 만든 뒤 500달러씩 받고 판매하는 사기행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패션 광고 사진작가에서 군인 찍는 사진작가로 전업한 계기는.

“2013년 육군 1사단에서 부대 소개 영화 제작 요청이 왔다. 당시 제가 만든 서울대병원 외과 홍보 동영상 사진 영상을 본 육군 1사단 측이 부대 소개 영상을 부탁했다. 처음으로 군인이 직접 참여하는 영상을 만들기로 하고 계급별로 80명을 인터뷰하던 중 성우경 원사를 만나 충격을 받았다. 성 원사는 3년간 전방 일반전초(GOP)에서 근무했는데 1000일 동안 집에 간 날이 200일밖에 안 된다고 했다.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2년 뒤면 30년 만기 전역인데 처음으로 가족여행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군인들을 ‘군바리’라고 불렀던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속죄하는 심정으로 군인들을 기록하기로 작정했다.”

―지금까지 참전용사 촬영을 위해 방문한 지역은.

“참전용사 숫자 1, 2위인 미국·영국을 40여 번, 40여 개 도시를 방문했다. 원래는 2년간 캠핑카를 대여해 미국 전역을 한 달에 2개 주씩 44개 주를 한 바퀴 돌면서 2만 명 정도 촬영할 계획을 세웠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차질이 생겼다. 이 프로젝트는 2023년까지 22개국 참전용사 사진·영상 스토리를 기록해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놓자, 이번 세대가 관심 없으면 다음 세대가 보게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유엔 참전용사들의 현재 상황은? 몇 분이나 생존해 있나.

“미국 참전용사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사망했다. 2차세계대전은 13∼45세의 다양한 연령층이 참전했지만, 한국전쟁은 세계대전이 끝나고 5년 뒤에 발발해 세계대전 참전 병사들 중 약 90%가 제대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참전병의 약 90%가 17∼20세 소년병이었다고 한다. 생존 노병들 평균 연령이 88세 정도다. 미국참전전우회 SNS를 통해 지난해 4∼6월 매일 한두 명씩 쓸쓸히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앞으로 계획은.

“미국은 참전용사들에게 이번 달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사진 촬영 요청도 많이 오는 편이다. 특히 MBC 유퀴즈 온더블록 방영 후 참전용사와 각국 대사관에서 내년에라도 촬영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졌다. 올해 4월까진 국군 참전용사 촬영에 집중하고 코로나19 감염자가 줄거나 백신 접종 상태 등을 봐가며 유엔 참전국을 순방할 계획이다.”

―국군 참전용사는 몇 분이나 촬영했나.

“300명 이상 찍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촬영 요청이 온다. 그동안 현 정부에서 평화를 얘기하는데 왜 잊어진 전쟁 얘기를 꺼내느냐는 분들이 많았다. 이곳저곳 방송과 언론을 타면서 10대, 20대들에서 유엔 참전용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건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인다.”

정충신 선임기자, 김유진 기자
e-mail 정충신 기자 / 정치부 / 부장 정충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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