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정치가 법치 짓밟는 수사지휘권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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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추미애 전 법무장관에 이어서 박범계 장관도 한명숙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를 한 이후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9일 대검 부장들과 고검장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전과 같이 무혐의 결론이 나면서 박 장관의 무리한 수사지휘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한명숙 사건은 총리 재직 시의 뇌물수수에 관한 것이다. 고 한만호 한신건영 전 대표가 발행한 1억 원짜리 수표를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전세자금으로 사용한 사실, 그리고 한 전 총리가 비서를 통해 한 전 대표에게 2억 원을 되돌려준 점은 사실로 확인됐다. 그런데 한 전 대표가 검찰 조사 때 한 전 총리에게 모두 9억 원을 줬다고 진술했지만, 1심 재판 과정에 말을 뒤집은 게 문제가 됐다.

1심은 한 전 대표의 진술 번복으로 진술의 신뢰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는 진술 번복에도 불구하고 수표 사용 등의 명확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진술의 신뢰성 전체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제 검찰의 압력에 의해 거짓 진술을 했다는 한 전 대표의 주장에 근거해 당시 검찰이 한 전 총리에 대한 불법적인 모해위증(謀害僞證)을 교사했다는 점에 대한 수사지휘가 반복되면서 검찰을 뒤흔든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이 유죄판결을 받고, 전직 대법원장까지 재판받는 상황에서 전직 총리 문제가 특별한 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3가지 점에서 한명숙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주요 증인의 진술 번복이 문제 되는 여러 사건 중에서 왜 한명숙 사건에 대해서만 법무장관이 수사지휘까지 하면서 이를 재조사하게 하는가? 법의 이념은 정의이며, 정의의 첫 단추는 법 앞의 평등이다. 그 때문에 특정인에 대해서, 또는 특정 사건에 대해서 달리 취급하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한명숙 사건이 특별하게 취급되는 이유를 국민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충분한 해명이 없다면 정의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둘째, 한명숙 사건에 대한 거듭된 수사지휘가 추 전 장관과 박 장관 본인의 생각인가, 아니면 여당의 뜻인가? 최근 박 장관은 자신이 법무장관이기 이전에 여당 국회의원이라고 했는데, 이런 자세로 법무장관 직을 수행하는 건 문제가 있다. 그러잖아도 정치가 법치를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계속되는데, 법무장관이 법적 기준을 무시하고 정치적 판단에 따라 무리한 수사지휘를 계속한다면, 그 폐해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셋째, 수사지휘는 과연 한 전 총리의 복권을 위한 것이었나? 아니면, 검찰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정당화하고, 윤석열 총장이 없는 검찰을 와해시키려는 것이었나? 어쩌면 두 가지 다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역효과가 더 크다. 한명숙 구하기가 오히려 두 번 죽이기가 됐고, 검수완박에 대한 비판은 더 거세지고 있다. 수사지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 커진 것이다.

결국, 한명숙 사건에 대한 박 장관의 수사지휘는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내려진 사건에 대해 집권 여당이, 더욱이 한 차례 수사지휘를 통한 재조사로 이미 무혐의로 확인된 사건을 뒤집으려 했다는 점에서 공정과 정의를 또 한 번 무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