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병종,기타 치는 여인, 35x27㎝, 혼합재료에 먹과 채색, 2013.
(76) 문학의 나라 아일랜드
잉글랜드와의 힘겨루기 속에서도
펜은 칼보다 세다 믿음으로 견뎌
18세기 세운 트리니티大 도서관
오크나무 터널 속 초대형 롱룸엔
철학자들의 책, 가죽 장정본 보관
문인들 쓰던 필기구·잡동사니도
아일랜드선 선사 유물처럼 다뤄
작은 나라서 노벨문학상 쏟아져
쉽사리 얕볼 수 없는 ‘문화 강국’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트리니티 대학 도서관.
드디어 아일랜드에 왔다.
나는 왜 그토록 이 땅에 오고 싶었던 것일까. 나 역시 그 땅의 위대한 정신들과 접촉하고 싶은 갈망 때문이었을까.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객들은 한결같이 예수의 옷깃을 만지는 심정으로 그 땅을 밟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아일랜드, 특히 더블린은 문학의 성지라 할만하다. 도처에 널린 문학, 혹은 문학과 관련된 장소들을 비켜 갈 수가 없다. 문학이 이렇게 성시(盛時)를 이루는 곳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문약(文弱)이라는 말은 아일랜드에 오면 “문학은 힘이 세다”로 바뀜직하다. 문인들이 썼던 필기구며 잡동사니 같은 것들도 이곳에서는 선사시대의 유물·유적만큼이나 소중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예컨대 문학을 만들어내는 수공업적 도구들이 그대로 전시물이 되고 있는 것. 막강한 잉글랜드와의 오랜 힘겨루기 갈등에도 불구하고 펜이 칼만큼 아니 칼보다 힘이 세다는 확신을 붙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더구나 시내 한가운데에는 18세기에 지어진 장엄하고 유서 깊은 트리니티 대학 올드 라이브러리가 있다. 오크나무로 만들어진 터널 형태의 롱룸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라도 그 규모에 압도되고 만다. 위대한 작가, 철학자, 신학자들의 저서가 가죽 장정 안에 고스란히 그들의 숨결처럼 보관돼 있다. 서가 앞으로는 조너선 스위프트를 비롯한 작가들의 흉상과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의 흉상이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 동상.
오랜 세월을 수난의 땅에 ‘무기 박물관’ 대신 외세와 싸운 ‘책 박물관’이 세워진 것이다.
얼마 전 특별한 안복(眼福)을 누리는 기회를 가졌다. 우리나라의 옛 문인 사대부들이 쓰던 벼루였다. 재물을 탐하는 것은 부끄러움이나 벼루 호사만은 자랑해도 된다는 것이 선비 문화의 맥락 속에 있다. 이근배 시인(예술원 회장)이 이 분야의 최고수로 알려져 있는 분. 그이가 평생 모은 1000여 점의 벼루 가운데에는 정조대왕의 단계연까지 있다고 소문이 나 있다. 예컨대 문인 사대부들의 것부터 내사계(왕실)에서 쓰던 진기한 것들까지 한 개인의 평생 소장품으로는 놀랄 만한 양과 질이었다. 그런데 석공들이 조각한 부조 그림 중에는 역시 일평생 조선 민화를 모아 수십 권의 책으로 묶어낸 이영수 화백의 소장 화집에 나오는 그림 소재들이 태반 그대로 등장하고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전 일본의 한 유명 출판사에서는 ‘이조의 민화(李朝の 民畵 上·下)’라는 화집 형태의 책을 묶어 미술 분야의 세계적 스테디셀러를 만든 바 있고 역시 ‘이조의 연(李朝の硯)’이라는 책을 묶어낸 바 있다. 일본으로 넘어간 우리 민화만도 수십만 점이라는 설이 있는데 우리 벼루 또한 남포석을 비롯해 엄청난 양이 일본으로 가게 됐을 거라는 것이 정설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란 중 나포해간 도공·석공들 또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들은 왜 그토록 서화와 도기 문방류에 집착했을까. 일본은 본디 칼과 무사의 나라였다. 히데요시가 다이묘들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했다고는 하나 그 역시 언제 다시 칼에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있었다. 무리하게 조선 침략을 시도한 것도 무력의 방향을 외부로 향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이로 인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일방 그는 이름난 서화 골동의 수장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칼이 아닌 문(文)의 시대라는 것을 천명하고 싶은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뛰어난 조선 예술품들을 자국 문화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국의 무강(武强)시대에 아일랜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작은 나라에서 많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물론 타 분야 수상자도 나왔지만) 그 정신적·문화적 저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쉽사리 넘볼 수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바야흐로 문화가 힘이고 경쟁력인 시대에 접어들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그렇다. 말과 글은 이제 힘의 수단이다.
더블린에 와서 절절하게 깨닫게 된 일이다.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자연, 문학, 음악의 땅 아일랜드
대문호 기념관 즐비… 펍·버스킹도 유명
유라시아 대륙 북서쪽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는 세계 문학의 중심이자 태곳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허 절벽 등 웅장한 자연을 거느리고 있다. 특히 더블린은 율리시스의 대작을 쓴 제임스 조이스를 비롯, 기라성같은 작가들의 기념관과 작가 박물관들이 집결돼 있어 문학 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10분의 1인 400만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일랜드가 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는 것만 봐도 그곳이 세계 문학의 중심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데다가 미국 음악의 한 뿌리를 이루고 있는 아일랜드 음악은 독특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데 펍과 길거리 공연 버스킹(Busking)을 통해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그 밖에 연극, 댄스,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예술활동들이 펼쳐지고 있어서 세계로부터 수많은 젊은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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