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클래식>콧노래 부르며 파격적 속주로 녹음… 사상최다 판매 앨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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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골드베르크 변주곡’녹음할때
여름인데 겨울 차림새로 등장
60~70분 짜리 38분만에 마쳐
평론가 “미친 연주” 비난 일색
‘라이브보다 녹음이 완벽’ 신념
32세 전성기에 무대 공연 은퇴

1955년 6월 미국 뉴욕, 굴지의 음반사인 컬럼비아 레코드는 스튜디오에서 그해 1월 뉴욕에서 갓 데뷔한 한 신예 피아니스트의 녹음 준비에 한창이었다. 피아니스트가 도착하자, 스태프는 일제히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날의 주인공인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1982·사진)의 괴상한 차림새 때문이었다. 날씨는 이미 한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이 23세의 청년은 긴 코트에 베레모, 거기에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까지 낀 한겨울철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이 청년은 연주 전에 경건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두 손을 더운물에 20분간이나 담그고 난 뒤 그제야 직접 준비해온 높이 14인치 정도의 낮은 전용 의자를 챙겨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의자 다리는 고무를 덧대어 특수 제작돼 있었다.

녹음 작품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그는 음악에 몸을 실은 듯 온몸을 전후좌우로 비틀어 가며 작품에 몰입했고, 녹음 중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거친 숨소리와 함께 라인을 허밍(콧노래)으로 크게 따라 부르며 황홀경에 다다른 모습으로 연주를 이어 나갔다. 당시 컬럼비아 레코드의 모든 관계자는 완전히 실패한 녹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음반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기인(畸人) 굴드는 일약 천재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랐다.

굴드가 녹음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상식을 뛰어넘은 곡 해석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주자는 60∼70분 정도로 연주한 반면, 굴드는 빠른 속주로 겨우 38분 만에 연주를 마쳤다. 특히 엄격하게 연주되는 바로크 음악, 그것도 바흐의 작품에서 자신의 해석에 따라 악보에 있는 도돌이표도 무시하고 넘어가기까지 했다.

당시 일부 비평가는 ‘미친 연주’라며 거칠게 비난하기도 했지만 그의 파격은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기준이 돼가고 있었다. 지루하게만 여겨졌던 바흐의 협주곡은 1955년 굴드의 파격적인 녹음으로 인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고, 이 레코딩은 클래식 음반 사상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독주 앨범으로 기록되며 마스터피스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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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32세로 피아니스트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1964년 3월, 무대 공연 은퇴라는 가장 큰 기행을 벌인다. 공연장에서 수천 명의 관중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박수는 그를 연주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한 긴장감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무대에서 은퇴한 굴드는 대신 녹음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연주자와 청자에게 모두 가장 편안한 상태의, 모든 긴장이 제거된 가장 완벽한 음악은 라이브 공연이 아닌 녹음을 통한 음반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81년 ‘한 번 녹음한 곡은 다시 녹음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다시 한 번 레코딩함으로써 또 하나의 명작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2년, 쉰 살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바흐의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 중 가장 스케일이 큰 작품이자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변주곡으로 평가받는 작품. 아름답고 장중한 아리아(주제)와 아리아를 통한 30개의 변주, 그리고 다시 최초의 아리아가 반복되는 총 32곡의 구성. 바흐의 모든 건반 테크닉이 집대성돼 있는 작품으로 수학적 구조와 건축적 형식, 선율의 아름다움과 유머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는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