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동유럽 스트롱맨 3人… 팬데믹 대응실패 ‘인기없는 포퓰리스트’ 전락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송재우 기자

■ 헝가리·폴란드·슬로베니아 극우파 ‘최대 위기’

헝가리 4선 총리 등극한 오르반
강력규제에도 코로나 통제 실패
與 지지율 ,야당연합세력에 뒤져
내년 대선서 다선신화 깨질 위기

폴란드 실질적 지도자 카친스키
1년새 당 지지율 급락 코너몰려
좌클릭 정책 시도…이례적 대응
슬로베니아도 집권당 지지율 뚝

약 8개월 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미국 대선이 끝나고 유행처럼 떠돌았던 말이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우리가 원래 알던 미국이 돌아왔다는 안도감은 잠시,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는 가도 ‘트럼피즘’(미국 우선주의와 열렬한 팬덤을 기반으로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 기조)은 남는다”며 그가 남긴 분열과 혐오의 유산에 주목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세운 반(反)엘리트주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 곳곳에서 보수 성향의 포퓰리스트들이 속속 집권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들의 기세를 꺾은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퇴장이 아니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었다. 하나같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에 실패한 이들은 ‘인기가 없는(unpopular) 포퓰리스트(populist)’로 전락했다.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의 연식이 짧은 동유럽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소련 붕괴 이후 불안한 민주화를 이어오고 있던 이곳에서 반개혁 정서를 파고들어 득세한 포퓰리즘 세력은 팬데믹 대재앙이라는 최대의 적을 만나 맥을 못 추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중에서도 헝가리와 폴란드, 슬로베니아에 주목했다. 이 세 국가는 세계적인 석학 슬라보이 지제크가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나라들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망률 최악…오르반 총리에게 드리운 5선 실패 그림자=헝가리는 1인당 코로나19 사망률이 페루 다음으로 높은 나라다. 빅토르 오르반 정부는 야간 통금을 동반한 국가비상사태와 봉쇄 등 강력한 규제로 대응해 왔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이에 1998년 35세의 나이로 유럽 최연소 총리가 된 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유럽 내 유일한 ‘4선 총리’에 등극한 오르반의 다선 신화가 당장 내년에 깨질 위험에 처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헝가리 싱크탱크 리퍼블리콘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르반 총리가 속한 집권 여당 피데스의 지지율은 32%로 집계돼 33%를 얻은 야당 연합에 못 미쳤다. 오르반 정부 퇴진을 목표로 지난해 8월 단일화를 선언한 6개 야당이 피데스를 제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헝가리에선 피데스가 지지 세력을 의식해 교내 동성애·성전환 관련 콘텐츠 배포 금지, 동성 커플의 입양 금지 등 성 소수자 배척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킨 것을 두고 반발 시위가 거세다. 이에 오르반 총리는 최근 국내적으로 큰 반발을 낳은 중국 푸단(復旦)대 캠퍼스 건립 계획을 유보하는 등 민심 다지기에 나섰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대규모 세금 환급, 25세 이하 성인 대상 소득세 납부 의무 면제 등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면서 부동층 공략에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장기 집권 기간 내내 과감한 편 가르기 전략을 펼치며 성공한 포퓰리스트로서의 자신감을 보여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이전에 오르반 총리의 ‘헝가리 퍼스트’가 있었고, 난민을 “독”이라고 칭했던 그는 2018년 총선에서 강경한 반난민 정책을 앞세워 압승을 거뒀다. 또 민주주의를 택하되 개인적 자유는 제한할 수 있다는, ‘제한적 민주주의’ 개념을 태동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팬데믹 대응 실패로 인한 현재의 위기는 그에게 더욱 뼈아프다. 범유럽 극우 세력을 결집해 외부에서 동력을 얻으려 했던 최근의 시도도 무위로 돌아갔다. 그는 지난 4월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한 유럽의 르네상스’를 주창하면서 부다페스트에 극우 세력 지도자들을 초청했는데, 이 자리에는 이탈리아 극우 정당 ‘동맹’(Lega)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와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 단 2명만이 참석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모두 실권에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헝가리 연구 단체 폴리티컬 캐피털의 페테르 크레코 국장은 “일명 ‘부다페스트 콘클라베’(새 교황을 선출하는 모임)는 극우 세력의 쇠퇴를 감추기 위한 필사적 움직임이었다”고 평가했다.

◇폴란드·슬로베니아서도 극우 집권당 지지율 하락에 몸살…“종말론적 포퓰리즘”=헝가리와 폴란드의 극우 세력은 서로의 선거 전략을 ‘수입’하고 ‘수출’하면서 동유럽 민주주의의 퇴행을 선도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폴란드의 실질적 지도자로 알려진 집권당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대표는 지난해 치러진 대선에서 안제이 두다를 후보로 내세워 신승을 거뒀다. 그런데도 집권 법과정의당(PiS)의 지지율은 지난해 여름 55%에서 지난달 30%까지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4일 제슈프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선 야당 연합 소속 후보가 PiS 소속 후보보다 2배 많은 지지율을 얻으며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PiS는 이번 선거 결과를 우파 연립정부 내 분열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PiS는 주택 구매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고소득층 세금 인상 계획을 발표하며 과감한 ‘좌클릭’ 정책을 시도하는 등 이례적인 대응에 나섰다.

헝가리와 함께 내년 총선이 예정돼 있는 슬로베니아에서도 집권 세력이 지지율 위기를 겪고 있다. 야네스 얀샤 총리가 이끄는 슬로베니아민주당(SDS)은 지난 2018년 총선에서 최다 득표를 기록한 후 지난해까지 65%라는 높은 지지율을 구가했으나, 올해 들어 이 수치가 26%까지 떨어졌다. 얀샤 총리를 지지하는 거대 방송국이 운영하는 TV 채널은 시청률이 1%도 나오지 않아 공식 집계 대상에도 오르지 못하는 상황이다. 200만 인구의 소국인 슬로베니아에선 매일같이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방식을 규탄하며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소재 인문과학 연구기관의 동유럽 전문가인 이반 크라스테프는 “얀샤, 오르반과 같은 지도자들의 한때 ‘자신만만했던 포퓰리즘’은 이제 더 위험한 ‘종말론적 포퓰리즘’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