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경제 대전환 비전 갖춘 후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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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종 산업부장

국제 경쟁 낙오로 혹독한 고통
잇단 정책 실패 경제대국 무색
부동산 폭등과 親勞 득세 혼란

방역 좌초 성장 전망도 불투명
대선 포퓰리즘에 재정도 훼손
경제·산업 통찰할 리더십 절실

고종이 1883년 조·미 수호통상조약의 체결과 미국 공사 파견에 대한 답례로 미국에 보낸 외교사절단인 보빙사(報聘使). 태평양을 건너 뉴욕에서 제21대 대통령이던 체스터 A 아서(1829∼1886)를 만난 사절단은 청 황제를 알현하듯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미국 언론은 당황한 아서와 사절단을 삽화로 그려 대서특필했다. 당시 외바퀴 수레 초헌을 타고 달구지를 끌던 조선과 달리 미국의 교통·산업 인프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저서 ‘패권의 비밀’에서 1860년대에 미국은 4만8000㎞의 철도망을 갖추고 있었다고 했다. 세계 철도의 절반인데, 1880년대엔 14만9000㎞로 늘었다.

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철도는 미국의 방대한 영토를 단일한 시장으로 통합하는 기술 발전이었다.(중략) 근대 대기업의 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해 제조업 기업들의 창업을 자극하고 시장경쟁을 부추겨 기업의 설비투자와 생산, 유통 조직의 개편을 유도했다.” 철도가 곧 근대화, 산업화, 자본 축적과 팽창의 역사였던 셈이다. 13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란 간난신고를 겪고 10대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활력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비이성적으로 치솟으면서 서민·중산층의 희망을 앗아가고 있는 부동산값이다. 이어 잇속 챙기기에만 혈안이 된 귀족노조들의 파업 깃발, 공정·평등을 전면에 내세운 민첩하고 날랜 구호다. 물가 제어조차 못 하는 무능한 당국도 반성과 겸허보다는 뻔뻔함만 넘치니 빼놓을 수 없다. K-방역·백신 실패의 처참한 민낯도 연장선에 있다. 바이러스가 골목 경제·자영업·내수경기의 숨통을 옥죄는 데도 낙관론에 매몰돼 있다. 전문가들은 “예방접종 완료율이 70%에 달하는 11, 12월까지 사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경제의 본격 회복 시기를 하반기, 성장률은 3∼4%로 예상했다. 이를 긍정적으로 뒷받침할 변수의 하나가 코로나19 영향 탈피였음을 떠올리면, 반등이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 새 가계는 부동산, 주식 등으로 거침없이 쌓아 올린 거대한 부채를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다.

앞으로 더 큰 문제는 정치적 리스크, 대선정국의 진입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 극복 수단으로 정부 지출에 속도가 붙어 재정을 압박하고 있는데 중장년, 약자의 표심만을 자극하려는 포퓰리즘적 공약이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경제를 분배와 징벌의 대가로만 간주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겪게 된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목도했다. 사회주의 독재를 예견했던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계획, 정책으로 바꾸려는 것은 ‘인간의 치명적 자만’으로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고용이든 정년이든 늘리는 데는 모두 재정이 수반되고 거꾸로 기업경쟁력을 훼손하거나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20∼30대 청년 채용 문호를 넓히라고 고용 당국이 나서 30대 기업을 압박한 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빚 갚을 돈으로 수십조 원의 선심성 퍼주기에 골몰하고 돈줄을 조이겠다는 중앙은행과 재정 당국이 맞서 엇박자를 내는 형국이다. 당장 정권 창출이 급하니 흉물인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보다도 더 강도 높은 규제 만능에 빠져 반시장적 대책을 강구하는 몰상식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누가 대선 후보가 되든 가장 중요한 국가 운영 능력을 필두로, 집값 안정과 주택 공급의 안정을 실현하고 미래 비전과 사회통합 능력을 제시하는 것은 백일몽일 테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는 미·중 갈등, 4차 산업혁명, 정보기술(IT) 융합 등으로 빠르게 또한 예측불허의 단계로 이행할 것이다. 경제와 산업 환경의 대격변을 통찰하고 진지한 논의와 풍성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냉철하고도 강단 있는 비전, 철학을 제시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런 진영과 후보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지 않는 한 대선은 후진적으로 퇴행하는 또 다른 5년을 기약하는 플랫폼에 그치게 된다. 보빙사 시절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도약할 것인지는 순전히 우리의 ‘혜안’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