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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Leadership 게재 일자 : 2021년 11월 22일(月)
“죽는날까지 국민에게 봉사”… 69년간 영국 지킨 ‘섬김·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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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지난 7월 8일 영국 맨체스터의 세트장에서 진행 중인 장수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촬영 현장을 참관하면서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 Leadership 클래스

- 건강이상설 불거진 英 여왕 엘리자베스 2세

26세 즉위 95세 현재까지 통치
2차 대전땐 수송 현역병 활약
‘봉사하는 王’ 국민에게 감동줘

왕실 개혁 앞장선 필립공 영향
변화 적극 수용하는 군주로
다이애나빈 죽음때 최대 위기
관례깨고 왕실장… 여론 달래

코로나·필립공 별세 이후 흔들
공무 방문 취소후 병원 입원도
최근 지팡이 없이 공식 석상에


“나는 길든 짧든 우리 위대한 영국을 섬기며 봉사하는 데에 내 평생을 바칠 것을 여러분 앞에 선언합니다.”

1947년 4월 21일 21번째 생일을 맞은 영국 왕실 계승 서열 1위 엘리자베스 공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영연방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선포했다. 이후 약속을 실천해야 할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1952년 봄, 엘리자베스는 남편 필립공과 케냐 나이로비의 나무 위에 만들어진 트리톱스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아버지 조지 6세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조지 6세가 57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겨우 26세였던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 나무 위로 올라갈 때는 ‘사랑스러운 릴리벳’(애칭)이었던 엘리자베스가 내려올 땐 ‘왕관의 무게를 짊어진 여왕’이 된 셈이다. 이후 엘리자베스 2세는 21세 때 했던 약속을 지금까지 69년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올 들어 영국 역사상 최장기 재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건강에 적색등이 켜졌다는 신호가 잇따라 감지되고 있다. 95세 고령인 데다, 올해 4월 백년해로한 남편 필립공 사망으로 정신적 지주를 잃으면서 건강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는 것. 실제로 여왕은 지난 10월 북아일랜드 공무 방문을 취소하고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의료진 권고로 이달 초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여왕의 건강 이상설을 계기로 지난 69년간 이어지고 있는 ‘로열 리더십’의 명암을 돌아봤다.

◇전쟁 참전·90대에도 공무 헌신… 세계 최장 재임 군주의 힘 = 여왕은 2010년 7월 6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본인의 리더십에 대해 “리더십이란 사람들의 노력, 재능, 통찰력, 열정 및 영감을 결합해 함께 일하도록 장려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실제로 여왕은 세계대전부터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통합의 메시지’를 던져왔다. 세계 2차대전으로 세상이 혼란스럽던 1945년, 당시 공주였던 엘리자베스는 “조국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영국 여자 국방군에 입대해 구호품 전달 서비스 부서에 배치돼 참전했다. 전쟁터에서 군용 트럭을 몰고 탄약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평생 궂은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던 공주가 흙바닥에 앉아 타이어를 갈고, 보닛을 열어 엔진을 수리하는 모습은 신선했다. 무엇보다 왕실이 국가의 어려운 일에 앞장서는 모습은 수많은 영국인에게 자긍심과 존경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여왕이 심어놓은 ‘서번트 리더십’(봉사의 리더십)은 영국 왕실의 전통이 됐고, 찰스 왕세자·윌리엄 왕세손 등도 군에 입대해 구조헬기 조종사로 일하는 등 국난 극복에 앞장섰다. 또 여왕은 지금도 600개가 넘는 자선 및 공익 단체를 후원하고, 30∼40대 당시와 비슷한 강도로 공무를 수행하고 있다. 여왕은 ‘영국 국민에게 헌신하겠다’고 한 자신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며 공무를 줄이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필립공 주도로 시대 변화 수용…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 여왕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필립공이다. “내 남편은 늘 나의 힘이 돼 주었고, 영국은 필립공에게 큰 빚을 졌다”고 말할 정도. 여왕은 남편 필립공과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른 뒤 74여 년을 함께했다. 몰락한 그리스 왕실의 후계자였던 필립공은 영국 여왕이 된 아내의 한발 뒤에서 늘 충실한 참모의 역할을 해왔다. 영국 왕실의 변화와 개혁을 이끄는 데에도 앞장섰다. 시작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이었다. 필립공은 아내가 왕이 되는 장면을 TV로 생중계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영국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열패감이 가득하고 경제적인 어려움 속 군주제에 대한 회의론이 크던 상황. 필립공은 국민이 여왕의 탄생을 두 눈으로 지켜보게 해 왕실의 존재 이유를 상기시켰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필립공의 DNA는 영국 왕실에 깊이 스며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97년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의 교통사고 사망이라는 왕실 최대 위기도 이를 통해 극복했다. 당시 여왕이 다이애나 빈의 죽음과 거리를 두고자 휴가를 강행하자 여론이 반(反) 왕실로 돌아서며 왕실폐지론이 들끓었는데, 이에 여왕이 관례를 깨고 다이애나 빈의 장례식을 왕실장으로 치르겠다고 발표한 것. 다이애나 빈의 죽음을 추모하는 특별연설도 했다. 남편 필립공은 “장례식 때 아이들이 (다이애나 빈의 관을 따라) 걷겠다면 나도 따라 걷겠다”며 윌리엄·해리 왕자의 버팀목이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이는 영국 왕실 폐지론을 잠재우는 계기가 됐다.

◇아들은 코로나 걸리고 남편 세상 떠나… 올해는 여왕의 투혼도 ‘휘청’ = “우리는 여러 도전에 직면해왔지만 코로나19는 다릅니다. 과학의 위대한 발전과 치유를 위한 본능적인 연민을 통해 전 세계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여왕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상심한 영국 국민의 마음을 이처럼 달랬다. 하지만 정작 왕실은 코로나19로 휘청거렸다. 왕위계승 서열 1·2위인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이 연달아 코로나19에 감염된 것. 코로나19 고위험군인 90대의 여왕도 윈저성에 격리됐지만 ‘국민 신뢰를 얻으려면 모습을 내비쳐야 한다’는 철학대로 SNS와 전화를 통해 공무를 계속 봤다.

다음 위기는 해리 왕자 부부의 폭로 인터뷰. 지난 3월 왕실을 떠난 해리 왕자 부부가 미국으로 이주한 뒤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왕실 사람들이 아들 아치의 피부색이 얼마나 검을지 얘기하는 등 인종차별을 일삼았다”고 주장한 것. 이에 여왕이 “가족들은 해리 부부와 아치를 늘 사랑한다”고 밝히며 사태를 수습하자 포용력 있는 ‘할머니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해리 왕자 부부는 6월 태어난 딸의 이름을 ‘릴리벳’으로 명명하는 등 여왕에게 존경을 표하면서 가족 불화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올해 여왕에게 가장 아팠던 순간은 바로 4월 남편 필립공 별세였다. 장례식장에 홀로 앉아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남편의 관을 바라보는 여왕의 모습은 영국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이후 여왕의 건강에도 이상 신호가 잇따랐다.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등 외교활동을 재개했지만 공무에 지팡이를 짚고 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달 20일에는 병원에 입원했고, 자국에서 열렸던 COP26 회의에도 불참했다. 많은 국민이 ‘이제 여왕의 시대는 저무나’라며 우려를 표하는 상황에서 여왕은 지난 17일 한 달 만에 지팡이 없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죽는 날까지 의무(Duty)를 다하겠다’는 맹세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 ‘신이시여 여왕을 지키소서(God save the Queen)’라는 영국 국가 가사처럼 최장수 재임하면서 영국인들의 애정과 존경을 받고 있는 여왕을 신은 언제까지 지켜줄까.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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