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의 적에 발목잡힌 ‘BBB 예산법안’ … 벼랑끝 ‘바이든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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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포커스 - 내달 취임 1주년…잇단 악재속 지지율 바닥

‘워싱턴 2인자’ 떠오른 보수파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의 반란
바이든 핵심정책 집약돼 있는
‘BBB 법안’에 거부 의사 밝혀
양당 50대 50…단독처리 불가

사상 최대규모 2022년 예산안
반도체 지원 법안도 처리 난항
악재 잇따라 조기 레임덕 우려

민주당 하원 급진파 의원들과
공화당 트럼프 키즈도 장애물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미국 동부시간으로 일요일이었던 지난 19일 오후 백악관은 급히 젠 사키 대변인 명의로 712개 단어 분량의 예정에 없던 성명을 내놓았다. 같은 날 오전 조 맨친(민주) 상원의원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반박하는 글이었다. 맨친 상원의원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어젠다를 담은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BBB)’ 예산법안에 대해 “나는 더 나아갈 수 없다. 노(No)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후 성명을 통해 2조 달러(약 2385조 원)에 달하는 법안비용과 재정적자에 미칠 영향, 기후 대응 관련 조항, 인플레이션 우려 등을 반대 이유로 꼽았다. 이에 대해 사키 대변인은 “맨친 상원의원의 발언은 이번 주 대통령이나 백악관과 협의해온 내용과 다르다. 협의를 끝내는 것이라면 갑작스럽고 설명할 수 없는 입장 번복”이라고 맹비난했다.

다음 달 취임 1주년을 맞는 바이든 대통령이 쏟아지는 악재 속에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갈길 바쁜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장악한 공화당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당내 중도파와 진보파 간 갈등 등 이른바 ‘내부의 적’이 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성급한 코로나19 독립 선언, 매끄럽지 못한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 행정부의 잇따른 실책까지 더해져 지지율을 바닥까지 곤두박질치게 했다. 현 상황이 내년 11월 중간선거까지 이어지면 2024년 재선 도전은커녕 조기 레임덕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국면전환을 위해 자신의 핵심 공약을 담은 BBB 법안 등의 입법을 하루빨리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다.

◇의회에서 내·외부 적에 가로막힌 ‘바이드노믹스’ 법안들 = 23일(현지시간) 미 언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로 꼽는 것은 BBB 법안 처리다. 이 법안에는 정부의 적극 개입으로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경제 체질을 바꾸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정책이 집약됐다. 기후변화 대응 5550억 달러, 보육·유치원 4000억 달러, 홈케어 1500억 달러, 주택보급 1500억 달러 등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 법안이 통과돼야 사회안전망 구축, 기후변화 대응, 산업경쟁력 강화 등 바이든 표 정책들이 현실화할 수 있다. 백악관이 이 법안을 BBB 법안으로 명명한 것 역시 그 중요성과 처리 의지를 반영한다는 평가다.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최고 어젠다를 현실화할 BBB 법안 처리가 민주당 내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백악관은 3조5000억 달러 규모로 법안을 마련했지만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 중도파 의원들마저 부채 증가, 과다 증세 등을 우려하며 반대하자 규모를 절반인 1조7500억 달러로 줄여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주당 내 진보세력의 반발에 발목이 잡혔다. 3개월여를 허송세월한 끝에 2조 달러 규모로 하원을 통과했지만 다시 맨친 의원은 1조5000억 달러를 넘길 수 없다며 법안을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백악관은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맨친 의원을 비판했지만 법안 처리를 위해서는 재협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BBB 법안 외에 2022년 회계연도 예산안 처리 역시 시급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당초 6조 달러가 넘는 2차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예산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극심한 여야 대치로 2021회계연도가 끝나는 9월 30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했다. 연방정부 셧다운이 임박하자 12월 3일까지 적용되는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기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결국 또다시 임시 예산안을 편성해 내년 2월 18일로 처리시한을 미뤘다. 반도체 공급난 속에 바이든 행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공급망 복원을 위한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 법안(CHIPS Act) 역시 하원에 계류 중인 상태다. 백악관과 상무부 등은 물론 포드 등 주요 기업들까지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크리스마스 이전에 반드시 의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압박했지만 여야 합의가 지연되면서 법안 처리가 내년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미 중산층·서민 가정에 큰 부담을 주는 인슐린 등 주요 약값 인하 입법을 추진 중이지만 제약업계의 반발과 공화당의 반대 등으로 통과 가능성이 크지 않다.

◇민주당 내부 분열과 외곽 때리는 트럼프 공화당, 멀어지는 재선 꿈 = 바이든 대통령의 역점사업을 연거푸 좌절시킨 주인공으로는 민주당 내 또 한 명의 ‘조’인 맨친 상원의원이 첫손에 꼽힌다. 2000년 이후 6차례 대선에서 모두 공화당 후보가 승리했을 정도로 보수 성향이 강한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유일한 민주당 소속 연방의원인 그는 당내 가장 보수적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양당 상원의석수가 50대 50으로 한 명만 반대해도 민주당 단독 처리가 불가능한 구도에서 최고의 스윙보터로 등극해 ‘워싱턴의 2인자’로도 불리는 그는 기후변화 의제는 물론 법인세 28% 인상,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 인상 등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번번이 반대했다. 공화당 중진 존 코닌 상원의원이 21일 공화당 입당을 제안했을 정도지만 맨친 의원은 민주당 당적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맨친 상원의원과 대척점에 있는 프리밀라 자야팔·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민주당 하원 급진파 의원들도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장애물이다. 이들은 타협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 지원으로 양당 상원의원들이 지난 8월 초당적으로 통과시킨 1조2000억 달러 규모 인프라 예산법안에 대해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이 빠졌다며 3개월 가까이 하원 표결을 저지했다. 11월 초 가까스로 이뤄진 표결에서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등 6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공화당 역시 초당적 합의를 중시했던 미국 정치 전통에서 이탈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른바 ‘트럼프 키즈’ 의원들을 중심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정책 대다수에 무조건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야당은 물론 당내에서조차 진영 간 이념 간극을 좁히지 못해 법안처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었다. 19일 CNN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256명 중 66%는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찌감치 2024년 재선 도전을 선언했지만 현 상황에서 극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내년 중간선거 패배가 기정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바닥을 기는 지지율 탓에 대통령 취임 후 채 1년이 되지 않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과 함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까지 차기 대선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