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동백나무를 다른 종과 교잡시켜 육종한 품종인 윌리엄스동백나무 ‘나이트 라이더’.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 박원순의 지식카페 - ⑫ 동백꽃
꽃과 꽃받침 단단히 붙어 있어 ‘헌신’ 상징… 연인들 은밀한 메시지 전달하는 ‘플라워 랭귀지’로도 자주 등장
코코 샤넬이 가장 좋아했던 꽃, 샤넬의 대표이미지로 디자인… 오메가·비타민E 풍부해 어혈 제거·피부병 치료에 효과
동백꽃은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여러 감정을 일깨우는 오묘한 꽃이다. 장미처럼 그저 화려하기만 하지도 않고 진달래처럼 마냥 소박하지도 않다. 어느 흘러간 노래 제목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동백꽃은 아시아의 정서를 가장 순수하게 담고 있는 듯하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과 일본이 원산지로 2000년에 이르는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선홍빛 꽃은 예닐곱 장의 꽃잎이 겹겹이 곱게 포개져 있고 그 밑부분을 꽃받침이 보호하며 단단히 감싸고 있다. 가운데 돌출된 노란색 수술 다발은 매우 인상적이어서 어두운 진녹색의 상록 잎과 대비를 이뤄 다른 꽃에서 쉬이 볼 수 없는 고귀한 매력을 선사한다. 꽃이 떨어질 때는 툭 하고 송이째 떨어지는데 꽃받침이 끝까지 함께 붙어 있어 꽃잎이 낱낱이 흩어지지 않는다. 꽃들이 땅에 떨어져 있을 때조차도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다. 이렇게 꽃과 꽃받침이 단단히 붙어 있어 동백꽃은 영원한 사랑과 헌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에도 푸른 나무라는 뜻의 동백(冬柏)으로 불려왔는데, 중국에서는 산에서 자라는 차나무라는 뜻의 산다(山茶)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는 봄을 알리는 나무라는 뜻의 쓰바키(椿)로 불린다.
카멜리아(Camellia)라고 불리는 동백나무속에는 250여 종이 있다. 대부분 동양에 분포하는데, 한·중·일 삼국을 포함해 인도 북부, 히말라야에서부터 베트남, 인도네시아, 자바, 수마트라에까지 이른다. 물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음료인 차의 잎을 제공하는 차나무(Camellia sinensis)도 여기 포함돼 있다. 우리가 주로 꽃을 감상하는 카멜리아는 동백나무(C. japonica)와 애기동백나무(C. sasanqua)인데, 이외에도 살루에넨시스동백나무(C. saluenensis), 레티쿨라타동백나무(C. reticulata), 노란색 꽃이 피는 크리산타동백나무(C. chrysantha) 등 관상 가치가 높은 종류가 많다. 그리고 이들 간의 교잡을 통해 지금까지 3000종이 넘는 품종이 개발됐다.
동백나무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17세기였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수석 외과의사였던 독일 출신 엥겔베르트 켐퍼(Engelbert Kaempfer, 1651∼1716)가 1692년 일본으로부터 30품종을 들여왔다. 영국에서는 에식스에 위치한 페트르 경(Lord Petre)의 저택이었던 손던 홀(Thorndon Hall) 온실에 도입돼 귀하게 자라다가 1739년 최초로 꽃을 피웠다.
1753년에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에 의해 카멜리아 자포니카(Camellia japonica)라는 학명이 정식으로 부여됐다. 속명인 카멜리아는 체코 태생의 식물학자이자 약재상이었던 게오르크 요제프 카멜(Georg Joseph Kamel, 1661∼1706)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실 그는 동백나무와는 밀접한 관련이 없었지만, 필리핀에서 20년 넘게 아시아 식물을 연구하며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한 공로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동백나무속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아로새기는 영예를 얻었다. 종명인 자포니카는 일본 원산을 뜻한다. 원래 중국과 한국에도 자라는 이 나무에 일본을 뜻하는 종명이 붙은 이유는 엥겔베르트 켐퍼가 일본에 있는 동안 처음으로 이 식물에 대해 기술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한국에서 동백나무를 처음 봤다면 코레아나(koreana)라는 종명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1792년엔 존 코너(John Corner) 선장이 이끄는 동인도 무역선 카르나틱(Carnatic)호에 겹꽃의 흰색 품종(C. japonica ‘Alba Plena’)과 붉은색에 흰 무늬가 들어간 품종(C. japonica ‘Variegata’)이 실려 왔다. 이 동백나무들은 1820년대 치즈윅 하우스(Chiswick House)에 식재됐는데, 원래 있던 귀한 과일 나무들을 대체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매년 동백꽃이 필 때면 이국적인 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특히 꽃이 귀한 시기에 피는 동백꽃은 매우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더 많은 품종이 계속해서 도입됐다. 3∼5월 사이 장밋빛으로 꽃피는 레티쿨라타동백나무도 중국 남서부 윈난(雲南) 지방으로부터 영국에 처음으로 들어왔다. 리처드 로스(Richard Rawes) 선장이 동인도 무역선 워런 헤이스팅스(Warren Hastings)호에 싣고 와서 ‘캡틴 로스(Captain Rawes)’라는 품종명을 갖게 됐다. 윈난성은 명나라 때부터 이 동백꽃으로 유명했는데, 1000년이 넘도록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昆明)시를 상징해 온 이 동백꽃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많은 재배 품종의 모본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동백꽃은 사랑과 아름다움의 대명사가 됐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사교 모임에 참석할 때 동백꽃을 손에 들거나 옷깃에 달고, 여인들은 종종 머리에 꽂기도 했다. 동백꽃은 서로에게 은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플라워 랭귀지’로도 자주 등장했다. 가령 붉은색 동백꽃은 사랑과 열정, 흰색 동백꽃은 진정한 탁월함과 순수한 믿음, 분홍색 동백꽃은 진심 어린 그리움을 뜻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1824∼1895)의 소설 ‘동백꽃 여인(La Dame aux camelias)’(1848)이 출간됐다. 뒤마는 19세기 프랑스의 급변하는 사회상을 반영해 부르주아 사회의 편견과 인습을 고발하면서 신분 차이로 이뤄지지 못한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1853년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라는 제목의 오페라로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하면서 더욱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극 중에서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순수한 정절과 그리움을 간직하고자 늘 가까이했던 동백꽃은 당시 사교계에서 이 꽃이 어떤 의미와 상징으로 사람들의 문화 속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말 동백꽃의 인기는 잠시 시들했다가 20세기 초 프랑스 남서부 소뮈르 출신 코코 샤넬에 의해 아주 세련된 이미지로 다시 태어났다. 수녀원에 딸린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샤넬은 그곳에 핀 동백꽃을 아주 좋아했다. 훗날 그녀는 동백꽃을 샤넬의 대표 이미지로 디자인해 드레스와 모자, 가방뿐 아니라, 목걸이와 귀걸이 같은 주얼리에도 동백꽃 장식을 사용했다. 검은색 포장 상자를 두른 리본에 달린 한 송이 흰색 동백꽃은 확실한 시그니처가 됐다. 샤넬에게 동백꽃은 겨울에 피어 다른 꽃들보다 계절을 앞서가고 늘 푸른 잎을 가지고 있어 어떤 나이에도 매혹적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한편 1930년대에는 콘월의 존 윌리엄스(J C Williams)가 유럽 최초로 동백나무 신품종 육종에 성공했는데, 살루에넨시스동백나무와 교잡을 통해 윌리엄스동백나무(Camellia x williamsii)를 탄생시켰다. 이로부터 수많은 동백 품종이 쏟아져 나왔다.
한편 동백나무가 처음 미국으로 건너간 시기는 18세기 후반이었다. 프랑스인 앙드레 미쇼(Andre Michaux, 1746∼1803)가 루이 16세의 명을 받아 1785년 왕실 식물학자로 북아메리카에 파견됐는데, 그에 의해 사우스캐롤라이나 미들턴 플레이스(Middleton Place)에 동백 컬렉션이 최초로 도입됐다. 1848년에는 동백나무 수집가들이 뉴욕 브루클린과 롱아일랜드에 동백나무 온실을 짓기 시작했고, 이후 펜실베이니아주 롱우드가든 온실에도 동백나무들이 도입돼 빼어난 전시와 함께 내한성 품종 육종 연구에 활용됐다. 월동 걱정이 없는 남부 지방에는 온실이 아닌 바깥 정원에 동백나무가 인기리에 식재됐다. 1930년대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의 메이콤이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인종 차별 이슈를 다룬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1960)에도 동백꽃이 등장하는데 이 시기에 이미 동백꽃이 많이 대중화됐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 동백꽃은 인종 차별이라는 뿌리 깊은 갈등의 현장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등장했다가 결국엔 극적인 화해와 신의의 상징이 됐다. 동양을 대표하는 꽃이 격동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한복판에서 그들의 삶과 문화 속에 중요한 의미를 전하는 꽃으로 깃들게 된 것이다. 동백꽃은 1959년 앨라배마주를 상징하는 꽃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메릴랜드주 애슈턴의 윌리엄 애커먼(William Ackerman) 박사에 의해 내한성이 강한 품종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주 클리퍼드 파크스(Clifford Parks) 박사에 의해 늦봄 개화하는 품종이 대거 육종됐다. 그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붉은색 홑꽃과 눈에 띄는 금빛 수술을 가지고 3∼5월에 개화하는 ‘코리안 파이어(Korean-Fire)’라는 품종도 있다. 오늘날 전 세계 정원에서 만나볼 수 있는 새로운 동백 품종 중에는 이 시기 미국에서 육종된 것이 많다. 특히 겨울 추위에 강한 품종들은 동백을 사랑한 많은 사람의 로망이자 숙원 사업과도 같은 것이었다. 워낙 많은 품종이 개발돼 있다 보니 오늘날엔 꽃의 모양에 따라 여섯 가지 그룹으로 동백을 분류하는데, 홑꽃을 비롯해 장미 모양의 겹꽃, 수술이 감춰진 작약 모양, 아네모네 모양, 반겹꽃, 완전 겹꽃으로 나뉜다. 색깔도 빨강, 하양, 분홍, 노랑부터 줄무늬 혹은 점무늬, 그러데이션이 들어가 있는 품종들로 다채롭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
동백꽃을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새들이다. 특히 동박새는 동백꽃과 천생연분이다. 노란색과 연두색이 섞여 아주 예쁜 이 새는 동백꽃 속에 들어 있는 꿀을 먹고 이마에 노란 꽃가루를 묻혀 다른 꽃으로 옮겨 준다. 동백나무는 새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매우 좋다. 예로부터 씨앗에서 짜낸 기름은 머리카락이 엉키지 않도록 하는 머릿기름으로 귀하게 쓰였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1936)에서 말하는 동백꽃은 동백나무의 꽃이 아니라 생강나무 꽃인데, 머릿기름으로 최고인 동백기름을 구하기 어려운 강원도 지방에서 생강나무 열매 기름을 내어 대신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재질이 균일하고 단단한 동백 목재는 악기나 다식판, 가구를 만드는 데 유용하게 사용됐다. 어린잎에는 루페올, 스콸렌 같은 항염증, 항산화 물질이 많이 들어 있어 찻잎 대용도 가능하고, 꽃은 오메가와 비타민 E가 풍부해 어혈 제거와 피부병에 좋다. 겨울에도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지역은 다양한 동백나무 품종으로 정원을 가꿀 수 있으니 큰 축복이다. 반그늘에서 유기질이 풍부하며 적당히 습하면서도 배수가 잘되는 약산성 토양을 좋아하는 만병초나 비비추, 양치식물 종류를 함께 심으면 더 아름다운 정원이 완성된다. 동백나무는 자리를 옮기는 것을 싫어한다. 추운 겨울에도 진한 초록 잎을 간직하고 눈 속에서도 붉디붉은 꽃을 피우며 질 때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지조와 절개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동백나무를 옮겨 심을 땐 구덩이를 넓게 파고 분을 최대한 크게 떠야 한다. 화분에 기를 때도 기온이나 수분 등 갑작스럽게 환경이 바뀌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한 꽃망울들이 모두 떨어져 버릴 수도 있다.
오랜 역사에 걸쳐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모진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동백꽃은 지금도 단아하면서도 애틋한 모습으로 우리 마음에 울림을 주고 있다. 그래서 동백꽃이 피면 마음은 벌써 고창 선운사나 여수 오동도, 해남 대흥사나 완도 보길도의 동백숲에 가 있게 마련이다. 오륙도가 바라다보이는 부산의 동백섬도 좋다. 이해인 수녀의 아름다운 시 ‘동백꽃이 질 때’에 그려진 모습처럼 추운 계절에도 언제나 기쁨의 불을 밝혀주는 동백꽃은 우리 곁 늘 가까이에 존재하며 진정한 사랑과 헌신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
차나뭇과에 속하는 상록 소교목 또는 교목으로 우리나라, 중국, 일본, 대만에서 자란다. 보통 2∼6m 가까이 자라며 때때로 10m까지 자란다. 겨울과 봄에 걸쳐 개화하는데 홑꽃으로 6∼7장의 꽃잎이 달린다. 꽃은 일반적으로 붉은색이지만 분홍색과 흰색도 있다. 동박새 같은 새가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조매화이다. 9∼10월에 둥근 모양의 붉은 삭과로 익는 열매는 3실로 나뉘어 있으며 각 실에 1∼2개의 씨앗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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