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댁의 자녀도 ‘사서 고생’ 시키나요?

최근 방송가에서 또다시 ‘열정페이’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낭만닥터 김사부’ 등으로 유명한 강은경 작가가 이끌고 드라마 ‘부부의 세계’ ‘미스티’와 영화 ‘극한직업’ 등을 집필한 작가들이 속한 창작 집단 글라인은 얼마 전 보조작가를 구하는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 내로라하는 작가가 대거 속한 곳이니 작가 지망생들의 관심이 높았는데요. 그 관심만큼 원성 또한 컸습니다. 채용 조건 때문이었죠.

급여는 150만~200만 원, 근무 조건은 ‘추후 협의’였습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외에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모티브로 한 20장 내외의 단막극 대본을 내야 했죠. 2022년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9160원,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월급 191만4440원입니다. 글라인 측은 언론을 통해 “파트타임 근무 형태이고, 최저임금 기준을 준수한다”고 해명했지만, 모집 공고에 이런 내용은 없었죠. 이에 대해 한 작가는 “채용 후 최저임금에 걸맞은 노동과 권리를 요구하면 수습 기간 만료 전 잘릴 것”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는데요. 결국은 유명 작가들이 있는 곳에서 일하면 정식 데뷔의 기회도 많아지고, 좋은 이력이 될 테니 열정페이를 감수하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문득 열정페이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지난 2014년 연말, 채용시장의 신조어로 본격 소개되기 시작했더군요. ‘돈의 크기에 얽매이지 말고 열정을 갖고 일하라’는 허울 좋은 수사일 뿐이죠. 그러다가 2015년 초 한 유명한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디자인실이 야근수당을 포함해 견습 10만 원, 인턴 30만 원, 정직원 110만 원의 급여를 준다는 주장이 나오며 열정페이라는 표현이 보다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는데요. 이 디자이너는 “논란이 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지만 이후 곳곳에서 열정페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 후 7년,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헐값으로 청년들의 귀한 열정을 이용하려는 행태는 여전합니다.

“고생을 왜 돈 주고 사요?” 한 CF에서 여성 래퍼 영지는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라는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답하죠. 케이블채널 Mnet ‘고등래퍼’에서 뚜렷한 주관과 소신으로 주목받았던 영지가 참여한 이 CF는 팬들 사이에서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사이다’로 통하는데요. 최저 시급은 매년 오르지만, 청년의 노동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최소한의 교양은 제자리걸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