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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22년 02월 28일(月)
무협판타지 주인공 된 歌王… “세월아 맞짱 한번 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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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나훈아 ‘맞짱’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노래방에서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1972)를 불러본 세대라면 몇몇 장면이 되살아날 것이다. 당시 뮤직비디오엔 소리와 영상이 자상할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돌담길 나오면 돌담길, 징검다리 나오면 징검다리, 물레방아 나오면 물레방아, 이런 식이었다.

동일한 가수가 50년 후에 새 음반뿐 아니라 뮤직비디오까지 발표했다니 경하할 일이다. 특이하게도 영상구성이 게임 같은 무협판타지다. 지난 화요일(22일) 공개된 나훈아의 뮤직비디오는 한국판 ‘반지의 제왕’을 방불케 한다. 전주가 1분 45초나 되는 ‘맞짱’에서 갑옷을 입고 직접 출연(출전)한 55년 차 가수와 겨룰 맞수는 인간이 아니라 시간(시마왕)이다. ‘세월을 이길 장사 어디 있겠소/ 어느 누가 세월을 막을 수 있겠소/ 눈 한번 깜빡이면 벌써 이만큼/ 돌아보면 벌써 저만큼’ 휘몰아치는 기세로 보면 ‘아아 슬프다 인생아’로 마감할 줄 알았는데 ‘아아 웃프다 인생아’로 한 글자 바꿈으로써 세대의 공감과 정서의 균형을 알맞게 이뤄냈다.

‘세월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누구라도 천년을 사려고 않겠소’(‘맞짱’ 중) 어릴 적에 귀가 닳도록 들은 말 중 하나가 ‘시간은 돈’(Time is money)이라는 격언이다. 100달러 지폐 속 인물인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 한 말로 배웠는데 이 분은 비 오는 벌판에서 연을 날려가며 피뢰침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억지로 엮으려 한다고 나무랄 수도 있지만 돈과 피뢰침의 교훈은 분명히 존재한다. 돈벼락 한번 맞아보는 게 소원이라면 천둥벼락 맞은 사람의 표정도 한 번쯤 떠올려보라는 거다.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음악동네엔 ‘세월이 가면’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두 곡 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때는 1956년 이른 봄, 예술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명동 어느 주점에서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1926∼1956)이 시를 쓰고 언론인 겸 작가인 이진섭(1922∼1983)이 곡을 붙여 그 자리에 있던 가수 나애심(1930∼2017)에게 불러 달라 청했다. 영화 같은 얘기지만 노래의 탄생은 팩트고, 스토리는 세월의 편집으로 완성되는 법이다. 이 노래가 대중에게 알려진 건 20년 후 통기타가수 박인희(1945∼)가 취입(1976)하고 나서다.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쓴 뒤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앞에 인용한 노랫말은 그의 비석에 그대로 새겨졌다.

또 하나의 ‘세월이 가면’은 3형제의 합작이다. ‘그대 나를 위해 웃음을 보여도/ 허탈한 표정 감출 수 없어’ 첫째(최명섭)가 작사, 둘째(최호섭)가 노래, 막내(최귀섭)가 작곡을 맡았다. 노래방에서 가창력이 미흡해도 호소력 있게 전달하기 딱 좋은 노래다.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 줘요’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형제들의 아버지는 한국창작뮤지컬의 선구자 최창권(1934∼2008)이다. 이 분이 작곡한 ‘로보트 태권 V’의 주제가는 지금도 중장년층에게 동심을 선물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런 말도 했다. “삶이 비극인 것은 우리가 너무 일찍 늙고 너무 늦게 철이 든다는 점이다.” 55년을 노래한 가수는 ‘맞짱’이 아니라 맞장구를 친다. “짧지 않은 세월이건만 나는 여태 길 끝에서 음악을 만지고 있다.” 그러면서 노래의 칼을 빼 든다. ‘아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아 청춘도 아직은 시퍼런데/ 아아아 세월아 맞짱 한번 뜨고 싶다’.

인생의 희곡에서 즐거움은 1막, 깨달음은 2막에 주로 등장한다.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본 후에 인생의 맛을 논할 수 있을 터다. 쓴맛, 신맛, 짠맛, 단맛을 다 느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혀다. 미각의 지도가 그러하니 눈물의 바다에도 희망의 배 한 척은 띄울 수 있지 않을까.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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