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연주하고 편안히 들을 수 있게…‘바이올린의 왕’

■ 이 남자의 클래식 - 프리츠 크라이슬러

19세기 오스트리아 대표 음악가
초절기교로 연주 테크닉 뽐내던
18세기 伊 파가니니와 대조적

30대중반 바이올린 거장 반열에
사상 첫 베토벤 소나타 전곡연주

18세기 이탈리아엔 ‘악마의 바이올린’이라 불리는 비르투오소(거장 명연주자)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월등한 테크닉을 뽐내기 위해 초절기교로 이뤄진 ‘라 캄파넬라’를 작곡했고 오늘날까지 모든 바이올린 연주자가 넘어야 하는 산으로 우뚝 서 있다. 이어 19세기 오스트리아엔 ‘바이올리니스트의 왕’이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 또한 바이올린 작품을 작곡했지만, 파가니니와는 달랐다. 그는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감상하고 또 쉽게 연주할 수 있기를 바랐고, 그 작품은 오늘날까지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바로 ‘사랑의 기쁨’을 작곡한 프리츠 크라이슬러(1875∼1962)다.

크라이슬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내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4세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드러낸 크라이슬러는 7세가 되던 해, 빈 음악원에 입학해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헬메스베르거 2세에게서 바이올린을 사사하게 된다. 비르투오소적 재능을 보인 크라이슬러는 겨우 12세의 나이로 신인 음악가의 등용문인 로마대상을 수상한다. 그 이듬해인 1888년 크라이슬러는 피아니스트 모리츠 로젠탈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과 보스턴 등지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그러나 6개월간의 연주여행을 이어갈 때쯤 크라이슬러는 돌연 오스트리아로 귀국해 김나지움(대학 진학을 위한 중·고등 과정 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의대에 진학한다. 학업은 2년간 이어졌으나 졸업하지는 않았고 이후 로마와 파리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다시 바이올린을 잡은 크라이슬러는 빈 궁정악단(지금의 빈 필하모닉) 단원이 되기 위해 오디션에 참가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의 연주엔 비브라토(소리를 떨리게 하는 기교)가 너무 많아 빈 필의 음색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1898년 23세의 크라이슬러는 단원이 아닌 독주자로서 당당히 빈 필과 협연하게 된다. 이후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 첼리스트 장 제라디와 함께 앙상블을 결성해 트리오로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라흐마니노프나 슈나벨 같은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과 협연하게 된다. 그리고 1910년 런던에서의 ‘엘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성공적으로 초연한 그는 드디어 ‘바이올리니스트의 왕’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30대 중반 나이로 거장 반열에 오른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 사이 그는 런던과 베를린을 오가며 베토벤, 브람스, 브루흐 등 수많은 협주곡의 리코딩 작업을 했는데, 전속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루프와 함께 남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녹음은 역사상 최초의 것으로 남고 있다. 65세가 되던 1940년 나치 독일의 영향력이 점점 거세지자 유대인이었던 그는 미국으로 이주한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50여 년간 최정점의 자리를 지켰던 그는 72세가 되던 1947년 11월 1일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1962년 87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사랑의 기쁨(Liebesfreude)’

크라이슬러의 대표작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바이올린 소곡으로, 그가 ‘바이올리니스트의 왕’이란 명성을 얻는 시기인 1910년 작곡됐다.

크라이슬러 모음곡 ‘3개의 빈의 옛 춤곡들’에 수록돼 있으며 ‘사랑의 슬픔’과 함께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다.

오스트리아의 민속적 춤곡양식인 렌틀러(Landler)를 바탕으로 한 3분 남짓의 짧은 왈츠 곡으로, 우아하고 서정적이며 활기로 가득 찬 작품이다.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의 시그널 음악으로도 익숙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