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폰 잡은 작가들… 필력만큼 잘 찍었을까

  • 문화일보
  • 입력 2022-03-2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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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전 김승옥 작가가‘첫 사례’
1990년대 유하·이창동 등 데뷔
천명관의‘뜨거운 피’23일 개봉

문단서 인정받는 스타 작가라도
영화문법 전혀 달라 성공 미지수
천 감독 첫 영화 흥행여부 ‘주목’


“신인 감독으로 데뷔, 인생 참 재미있네요.”

천명관 감독은 59세 나이에 ‘신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첫 연출작 ‘뜨거운 피’를 소개하게 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고래’ ‘고령화 가족’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등 히트작을 낸 유명 작가의 새 출발에 충무로뿐만 아니라 문단의 시선도 쏠리고 있다. 앞서 이창동, 유하, 손원평 등 문인 출신 감독들의 성공 배턴을 이어갈 수 있을지, 천 감독에 대한 기대치 역시 커지는 모양새다.

문인 출신 감독이 영화 메가폰을 잡은 첫 사례는 5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진기행’으로 유명한 김승옥 작가가 1969년 김동인 작가의 단편 ‘감자’를 영화로 옮기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각본과 각색 작업에만 주로 참여해 그가 연출한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남았다.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을 비롯해 한국 문단에서 영화화된 소설을 가장 많이 쓴 최인호 작가 역시 1976년 ‘걷지말고 뛰어라’를 연출했지만, 이 역시 그가 감독으로서 선보인 유일한 작품이다.

1990년대 들어 작가 출신 감독들의 데뷔는 더 활발해졌다. 유하와 이창동 감독이 대표적이다. 유 감독은 1991년 발표한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제목을 가져와 1993년 동명의 데뷔 장편영화를 선보였다. 이후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 등 작품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작품을 내놓으며 ‘작가’보다 ‘감독’이라는 수식어에 부쩍 가까워졌다.

이창동 감독 역시 비슷한 시기 충무로로 뛰어들었다.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의 각본가이자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1997년 ‘초록 물고기’라는 걸출한 데뷔작을 내놨다. 이후 발표한 ‘박하사탕’(1999)과 ‘오아시스’(2002)로 거장의 탄생을 알렸고, ‘밀양’(2007)과 ‘시’(2010)로는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올랐다.

충무로로 발을 들인 작가들은 대다수 영화의 각색이나 각본을 맡는 등 단계를 밟아가다 메가폰을 잡는다. 2020년 영화 ‘침입자’로 감독 데뷔한 손원평 작가 역시 “그동안 대중에게 소설로 먼저 인사를 드렸는데 사실 오랫동안 영화인으로 준비를 해왔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작가들은 모두 문단에서 이미 ‘스타’라 불리는 이들이다. 하지만 소설의 성공이 영화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소설과 영화의 문법과 작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천명관 감독은 문화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영화는 러닝타임이 ‘2시간’으로 정해진 장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면서 “전 소설을 쓰면 길게 쓰는 편이라, 과거나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뜨거운 피’ 최종 편집본의 러닝타임이 3시간 30분이나 나왔고, 이걸 2시간으로 편집하는 지난한 작업을 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작가는 창작자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감독의 영역은 다소 다르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경우가 많지만, 영화로서 소개할 만한 타인의 시나리오를 고르고 영화적 문법에 맞게 다듬는다. 보다 유연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예로 유하 감독의 출세작인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이만교 작가의 소설이었고, 이창동 감독의 최근작인 ‘버닝’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같은 맥락으로 숱하게 영화화된 소설을 쓴 천 감독 역시 정작 후배인 김언수 작가의 소설 ‘뜨거운 피’를 감독 데뷔작으로 삼았다.

원작자인 김언수 작가로부터 직접 “연출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는 천 감독은 “제가 다른 사람의 원작으로 영화화할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세상일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너무 재미있어서, 제가 만들면 근사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연출이 넘어가면 아까울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의 작은 항구를 배경으로 밑바닥 세계의 이야기를 다룬 누아르 ‘뜨거운 피’는 23일 개봉된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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