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영웅담 아닌 시대정신 담은 ‘사실주의 오페라’ 새장 열다

■ 이 남자의 클래식 - 루지에로 레온카발로

현실적인 오페라 작곡 결심
음악 포함 대본까지 직접 완성
35살때 명작 ‘팔리아치’초연
토스카니니 지휘 대성공 거둬

‘오페라’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치렁치렁한 의상을 걸친 귀족, 화려한 의상과 조명 또 아름다운 발레같이 고상하고 화려한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까닭에 오페라를 두고 ‘지구상에서 펼쳐지는 가장 사치스러운 유희’라고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선 이런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오페라 사조가 태동하기 시작한다. 진짜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베로(Vero)’에 어원을 둔 ‘베리스모(Verismo·사실주의) 오페라’다. 당시의 사실주의 오페라 작곡가들은 더 이상 달콤한 사랑 이야기나 영웅담을 노래하길 거부했다.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고통과 슬픔으로 신음하는 세상 속에서 그들은 시대정신을 담은 진짜 이야기를 노래하고 싶어 했다. 일각에선 ‘사실주의는 정보를 나열하는 것일 뿐이고 예술성이 결여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세월을 감내해오며 오늘날까지 매년 시즌마다 무대에 오르는 걸작 오페라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루지에로 레온카발로(1857∼1919)의 베리스모 오페라 ‘팔리아치(Pagliacci)’다.

레온카발로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폴리의 산 피에트로 마젤라 음악원에서 작곡과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변변찮은 살롱 음악들을 작곡하거나 피아노를 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당시 몇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작품들을 내놓지는 못했다. 33살이 되던 1890년의 어느 날, 레온카발로는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보게 되는데, 이때 베리스모 오페라의 작품성과 흥행성에 크게 경도된다. 그리고 자신도 이에 필적할 만한 현실적인 내용의 오페라를 작곡하리라 결심하고 당장 작업에 착수한다.

그는 오페라에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음악은 물론 오페라의 대본까지 손수 완성했고, 이를 손초뇨(Sonzogno)출판사가 주최하는 단막 오페라 공모전에 출품하기까지 불과 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막상 그가 받은 결과는 실격이었다. 왜냐하면 출품의 조건이 ‘단막 오페라여야 할 것’이었는데 어이없게도 그가 출품한 작품은 2막짜리 오페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본과 악보만으로도 그의 오페라에 크게 감동한 출판사 사장은 레온카발로를 만나 격려했고, 비록 그의 작품이 실격했더라도 반드시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주선해 줄 것을 약속한다. 그가 35살이 되던 해인 1892년, 마침내 그의 오페라 ‘팔리아치’는 밀라노의 달 베르메 극장에서 당대 명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지휘 아래 최고의 캐스팅으로 초연됐고 대성공을 거둔다. 레온카발로는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팔리아치’는 전 세계의 무대 위로 퍼져나갔다.

그는 이후 오페라 ‘자자’ ‘베를린의 롤란트’ 등 몇 편의 오페라를 더 작곡했지만 더 이상 오페라 ‘팔리아치’만큼의 주목과 평가는 얻지 못했다. 지병인 신장염을 앓아오던 레온카발로는 1919년 8월 9일 몬테카티니에서 숨을 거뒀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

‘팔리아치’ 중 1막에 등장하는 아리아로 모든 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테너 아리아 중 하나이며,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녹음해 레코드 역사상 최초로 밀리언셀러(100만 장의 판매량)를 기록한 아리아로도 잘 알려져 있다. ‘팔리아치’는 유랑극단의 단장이자 광대인 카니오가 아내 넷다에게 질투심을 느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의상을 입어라’는 넷다의 외도를 목격한 카니오가 부르는 독백형식의 노래로,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찬 상황이지만 광대의 처지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남편으로서의 비참함을 담은 내용이다.